인지할 수 있는 것과 인지할 수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인생불학 여명명야행'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배우지 않으면 삶이 어둡고 어두운 밤을 가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배움이 세상을 지각(경험)하고 이를 인지하여 내면화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경험적 세계가 인간을 세계와 공존하게 하며 안정하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인류사에서 문자의 발명은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라는 데에는 이견을 가질 사람이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생물학적 연구에 따르면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시점부터 뇌용량이 줄어들었다는 발표가 있습니다.
비경험적 기록이 경험세계를 압도하게 됐다고 볼 수 있겠네요.
최근 젊은 계층을 중심으로 삶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서울대 학생이 말하는 청년 빈곤과 극단적 선택에 대한 이야기가 이슈가 되고 있는 측면에서 약간은 다른 시각으로 이 문제를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과거 가난하고 배가 곯던 시절에 어찌 보면 절망적 상황에 처한 때에도 치열하게, 끈질기게 살아 남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치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는데 왜 그때의 그분들은 극단적 선택보다 삶을 선택했을까요?
물론 상대적인 것이고 사회의 관심이 달라 그 때에도 어쩌면 삶이 힘들어 극단적 선택을 하신 분이 많았을 수도 있습니다.
통계도 불명확한 상황에서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다는 것도 맞다고 봅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과거에는 지금보다 풍족치 못했음에도 끈질기게 삶을 추구한 사람이 많았다는 통념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인지 세계, 즉 한 개체로서의 인간이 오감을 토대로 세계를 지각하고 지각한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 속에서 삶을 이어 나가는 것이 인간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지식이나 경험일 수 있을 것입니다.
뭘 먹으면 안 되고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은 해서는 안 된다는 아주 간단한 원리의 경험 세계를 인지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세계를 공간적으로 지각하고 공간적이고 물리적인 세계를 물리적으로 살아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불과 반세기 전의 사람들은 자연 환경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집을 지어야 했고 집을 보수해야 했으며 또 옷도 스스로 지어 입고 식량도 농사를 지어 직접 재배하고 수확하고 가공하여 조리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생존에 대한 경험을 하면서 물리적으로 세상을 지각하고 본인의 역량을 물리적으로 지각해 삶을 이어가는 최소한의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경험적인 지각의 세계를 파악하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든 것이 구축되어 있고 편리를 위해 문명의 이기를 이용함으로써 더이상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학습해야 하는 것들이 적어지고 세상을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세상이 아닌 비 정형적이며 추상적인 개념으로 세상을 관념화하여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숱한 지식이 쏟아지고 매체에서는 늘 새로운 내용들이 흘러 나오는데 디지털로 접하는 세상에는 벼를 심고 모를 내고 가뭄과 태풍을 이겨내고 논에 물이 들어 가고 나가고로 쌀알이 영그는 느리고 매우 물리적이며 공간적인 세계는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한 줌의 볏단을 얼마나 잡을 수 있고 또 벨 수 있어서 얼마치의 식량을 본인이 만들었는지 모르는 세상을 사는 우리 대부분은 세상에 불가능한 일도 없고 안 되라는 법은 없다는 생각으로 현실을 보내기도 합니다.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에 대한 탐구나 이해보다는 '세상이 나를 위해 어디까지 해 줄 수 있을까?'를 생각 하니 욕심은 끝이 없고 목표는 본인의 현실을 아주 일찌감치 뛰어 넘습니다.
세상은 오로지 돈으로 측량되고 돈이 가치 자체가 되어 돈으로 세상을 지각하고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고는 이미 태생적으로 갖추게 돼 이른바 물질 만능주의의 옳고 그름도 판단하기 전에 이미 체화돼 버린 것입니다.
이러니 세상의 공간적 지각이 없고 삶의 육체적 깨달음이 없는 사람들은 허상을 꿈꾸며 허영을 좇고 마치 인셉션의 꿈 속 세계처럼 현실을 다시 로그인 할 수 있는 곳으로 착각하고 인생 2회 차니, 다음 생에는 이루자느니의 말을 서슴 없이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지극히 현실주의자들이고 종교를 믿지 않음에도 현실에 대한 지각 자체가 잘못 돼 이런 발상을 하는 것이죠.
결국 삶이 어렵고 힘들어서 이 번 생에는 틀린 것 같아서 극단적인 선택도 하게 되는 지금은 너무나 사회가 발전해서 대부분의 인간이 물리적으로 세상을 인지하지 않아도 삶이 영위되는 세상이라 그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스스로가 일종의 자가 되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공간적으로 물리적으로 지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생명을 유지해야 하고 생존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원초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지금의 그런 부정적인 현상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