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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5-25 18:07
한사군 문제의 이해를 돕고자 글을 씁니다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412  

저는 고대 강역사 연구자입니다

한사군 문제의 핵심 열쇠는 고고물질문화상에 있습니다.

전국연/진/전한계 물질문화가 한반도뿐만 아니라 현 요녕성 천산산맥 동쪽에서 뚜렷이 나타나지 않고 다만 후한~위/진 계통의 물질문화가 서북한 일부 지역에서 토착문화가 수용한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한사군 문제의 핵심 열쇠입니다.

다만 현 요동반도 남부 단동시 서쪽의 대양하 근처의, 장하시에서 전국연, 또는 진 계통으로 보이는 토성 하나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근거로 하여 사학계에서는 현 요녕성 개주시와 이곳 장하시를 이어서 이른 바 만번한 경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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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화와 세력권의 이해


이 정보는 한국고대사학회, 동북아역사재단 등의 논문, 한민족문화백과 등의 백과사전 기술정보를 토대로 하였습니다.

특히 조진선, 오강원, 이후석 등의 연구자 논문이 중심 바탕이 되었습니다.


1) BC 10세기 이후 물질문화



보라색 표시가 돼 있는 지역은 사학계에서 고조선의 영역으로 설정한 지역입니다. 사학계 주류설에서는 정가와자 유형을 고조선으로 보고 BC 6세기 경을 고조선의 시작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십이대영자는 동호, 또는 맥으로 봤습니다. 그러나 이후 최근의 경향은 십이대영자를 고조선 주체로 보고서 고조선의 시작을 BC 10세기 전후로 보고 있습니다.

비파형 동검의 시작지를 십이대영자유형 지역으로 보는 설과 정가와자유형 지역으로 보는 설이 양립해 있습니다.

BC 10세 전후로 보자면,
이미 지도상에 보라색으로 표시된 지역뿐만 아니라 길림성, 흑룡강성, 연해주, 한반도 전 지역이 비파형동검 문화권입니다.

연나라는 BC 10세기를 전후하여 현 북경시 방산구 유리하 지역에 상-주 계통의 물질문화 유적을 남기고 있는데 이 지역은 지도상에서 맨 좌측에 표시된 강인 영정하의 남쪽 인근 지역입니다. 그러나 이후로는 이 지역에서의 물질문화가 나타나지 않고 현 하북성 보정시 일대에서 BC 4세기 전까지 연나라 물질문화가 제한돼 나타납니다.

옥황묘 문화는 산융의 문화입니다.

고죽의 경우 사서를 살펴보면 분명 중국계 세력이 아님에도 중국적 물질문화의 특색을 띤 독특한 문화입니다.

2) BC 4세기 경 물질문화



지도에 표시된 '철영자/정구자문화'는 문화가 아니라 '유형'입니다. 제가 잘못 표기한 것으로서, '철영자/정구자유형'으로 바로잡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세형동검이 서북한의 청천강 이남, 평안남도와 황해도 일원에 국한돼 나타나다가 이것이 점차 남한 지역으로 퍼졌다고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세형동검은 말그대로 비파형동검이 세형화돼 나타난 것입니다. 비파형 동검의 칼날의 둥근 부분이 약화되고 날렵한 형태를 띠게 된 것이 세형동검으로 이것이 나타나는 것은 BC 6세기 경의 정가와자유형입니다. 세형동검 계통은 하가점상층 지역의 말기, 현 요서와 요동지역뿐만 아니라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에서 넓게 나타납니다. 다만 그것의 결합방식이나 장식의 형태, 다른 유물과 출토된 형태 등에 따라서 지역과 유형을 구분할 뿐입니다.

전국연계 물질문화는 BC 4세기가 돼서야 비로소 영정하를 건너 현 북경시와 당산시, 승덕시 일대에서 나타납니다.

저는 이것을 토대로 제 환공이 7세기 중엽에 산융과 고죽을 정벌했다 하는 사서의 기록들이 사실이 아닌, 후대의 일을 제 환공을 높이고자 올려기술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3) BC 3세기 이후 물질문화



저는 칠로도산 동쪽과 천산산맥 서쪽에서 나타나는 전국연계 물질문화의 속성이
연나라의 진개가 고조선의 서쪽을 침범하여 장악한 결과가 아니라 연나라에서 유이민이 급격히 유입된 결과라고 봅니다.

연나라 진개가 고조선을 침입한 시기는 BC 3세기 초, 연 소왕 시대로서, 이 때가 연나라의 최전성기이나 이 최전성의 시기는 짧았고 곧 이어 약화돼 멸망하였습니다. 연나라가 현 요심 지역까지 고조선의 영역을 빼앗아 통치하였다 하더라도 그 기간은 이삼십 년 안쪽이며, 진나라가 들어섰다 곧이어 망하고 한나라가 들어서는 등 이 지역에 대한 장악력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위만조선의 위만조차 연나라에서 도망쳐 온 사람으로서, 위만이 고조선의 서쪽 변경을 지키고 있을 때에 이미 그 지역에는 연과 제 등지에서 이주한 이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즉 이들이 남긴 물질문화가 천산산맥을 동한계선으로 하여 나타난 것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4) BC 3세기 이후 칠로도산 서쪽-천산산맥 동쪽 지역의 물질문화 잠식





5) BC 1 세기 ~ AD 4세기 물질문화의 한 단면

5-0) 진한과 변한의 물질문화

BC 2세기부터 나타나는 현 경상도 지역 및 전라남도 일부 지역의, 즉 진한과 변한의 물질문화는 현 요동지역과 동일한 것으로서,

사학계에서는 위만조선 계통, 또는 고조선 계통으로 설명하며 이들 문화의 소유자들이 이 지역에서 이주하였음을 증거합니다.

5-1) 철기문화

기존 학설에서는 전국연이 BC 3세기에 한반도 북부에 진출하면서, 또는 전한이 BC 2세기에 한사군을 설치해 한반도에 진출하면서 BC 2세기 경에 비로소 한반도에 철기문화가 전해졌다고 하였으나

최근까지의 지속적 연구(고고발굴 및 분석) 성과에 따르면 이미 BC 4세기에 한반도 남부까지 중국계통과 다른 독자적 철기문화가 자리잡았으며

이 계통은 동해안 루트를 따라서 임시적으로 옥저문화권으로 명칭하는 현 남연해주 지역에서 전래되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남연해주지역의 철기문화는 소극적 해석 시 BC 8세기, 적극적 해석 시 BC 10~15세기까지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초원과의 계통적 유사성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0525231

5-2) 적석총과 한반도



백제 적석총이라 함은 고구려계 적석총으로 점차 백제적 특성을 띠게 된 것을 이릅니다. 즉 초기 고구려적 특성을 지닌 것까지를 일러 백제 적석총이라 합니다.

백제는 이미 3세기(서기 200년대)에 이르러서 경기도, 강원도 일부,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일부까지 그 문화상이 나타납니다.

사실 고구려계 적석총은 서북한과 경기도, 강원도 일원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납니다. 낙랑군과 대방군이 한반도의 서북한과 경기도 북부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하는 그 시기에 말입니다.

마한은 전라남북도에,
진한과 변한은 한 범주로서 경상도, 낙동강 중하류의 동서에 그 문화상이 나타납니다.

▶ 백제 적석총 관련 정보 : 한민족문화대백과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6133

▶ 평양에서 발굴된 3세기 고구려 벽화고분 관련 정보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421&aid=000295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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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내용은 대체로 다음의 글에서 발췌하여 취합한 것입니다.

□ 진한의 출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 1

http://www.gasengi.co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88042&sca=&sfl=mb_id%2C1&stx=cellmate&page=10

□ 진한의 출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 2

http://www.gasengi.co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88050&sca=&sfl=mb_id%2C1&stx=cellmate&page=10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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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이 21-05-25 18:09
   
     
감방친구 21-05-25 18:10
   
아 이럴 수가
첫 댓글이 중요한데 ㅠㅠ;;
     
막둥이 21-05-25 18:11
   
헐..이게 되는군...
     
오늘비와 21-05-25 18:13
   
뱃살마왕 21-05-25 18:13
   
역시 젖문가 믿음이 갑니다
개개미S2 21-05-25 18:17
   
잘 봤습니다 재미있네요 ^^
지누짱 21-05-25 18:38
   
반론이 있습니다.
BC23세기 문화유적이 현 요하 동쪽에 발굴된지 이미 40년이 지났습니다
자세한 것은 동아게에 올릴게요.
     
감방친구 21-05-25 18:46
   
이 글의 의도는 주류 사학계의 재료로 사학계 통설을 반박하는 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