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구)잡담게시판
HOME > 커뮤니티 > 잡담 게시판
 
작성일 : 21-07-15 18:44
난 솔직히 미국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함
 글쓴이 : 성기사
조회 : 631  

지금 미국같은 나라없었으면 바로 중국 한국공격하고 합병시키고도
남았습니다. 프랑스 영국 독일이 도와줄것같죠? 성명만 내고 가만있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1. 명나라 사대는 서양의 신성로마제국 개념으로 설명해주면된다. 당시 명나라는 조선 입장에서는 국교인 유교의 총본산 개념이다. 2. 소수민족이 곧 자기문화라는 중국인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자. 미국에도 소수민족인 중국민족이 있으니 쿵푸 등이 다 미국문화라고 설명하자 3. 조선의 한자 사용에 대해 서양의 라틴어를 예시로 설명하자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적당히해라 21-07-15 18:48
   
미국 없었으면 진작에 핵무장햇겠죠
     
문삼이 21-07-15 18:50
   
이게 정답.....
     
나우문학 21-07-15 18:52
   
정답은 미국없으면 한국은 존재조차 X
일본이랑 전쟁도 못하고 먹힌 나라가 무슨 핵무장 ㅋㅋ
          
하늘나비야 21-07-15 18:54
   
미국이 없었으면 일본도 없었고 그랬다면 한국은 분단 되지도 않았으니  이미 일본 지배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중국 쪽에 들어간 간도땅도 안 빼앗겼을 것이고요
               
나우문학 21-07-15 19:02
   
1600년대부터 일본 생산량이 조선의 10배 이상인데요?
                    
굿잡스 21-07-15 19:04
   
??ㅋㅋ

나우>

열배?? 풉

근거는?
                         
나우문학 21-07-15 19:09
   
에도시대 일본인구가 조선의 3배 이상이었고 ㅋㅋ
전세계 은생산량 1/10이 일본에서 생산됐는데? ㅋㅋ
                         
굿잡스 21-07-15 19:18
   
??ㅋ


Jap이 미개한 훈도시 차림인 이유.

100여년 전의 사진에서 보는 일본의 서민의 생활은 참혹했습니다만 일본인들은 에도시대의 서민은 염색된 화려한 옷을 입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에도시대의 서민의 삶 중에서 무엇을 입고 무엇을 덮고 살았을까요?

https://m.blog.naver.com/marich77/40200630476


에도시대 농노제 하에서의 쌀생산

https://m.blog.naver.com/marich77/40200001447


메이지 시대에도 여전히 움집(땅파고 들어앉은 거주지)과 빈약한 판자집을 벗어나지 못했던 Jap.


(Jap)농민의 의복에 관해서는, 삼・무명으로 한정되어 노동에 적절한 염색되지 않은 筒袖・잠방이가 사용. 농민의 주거에 관해서는, 더 비참해서, 가건물기둥에, 토방을 강제. 마루는 불경제로 여겨져 토방 위에 멍석이나 짚을 깔고 잤습니다. 땀으로 부드러워진 멍석이나 짚은, 논의 비료로 사용. <농민의 식사에 관해서는, 엄격하게 규제되어 보리나 조가 주식이었습니다. 작은 새의 먹이입니다. 부식이나 간식도 금지.> 오락도, 연중 행사 이외는 금지         

http://blog.naver.com/marich77/40201615696����


12세기 Jap 헤이안 시대 고증이 너무 잘되어
지들 내부에서 도리어 까였던 사극 ㅋ(재확인)

https://m.cafe.daum.net/truepicture/Qt7/1143223?listURI=%2Ftruepicture%2FQt7


마비키 まびき [間引き]   

1930년대 홋카이도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아이의 목을 눌러 살해하는 '마비키'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일용할 양식을 축내는 새 식구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장, 자장, 잘자거라 자지 않으면 강에  버린다 자장, 자장, 잘자거라 자지 않으면 묻어 버린다'   

이 자장가 중「강에 버린다」,「묻어 버린다」는 마비키의 은어라고 한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06486���


'出羽奥州와 奥州(현재의 동북지방)에서 
매년 1만 6, 7천명, 上総(현재의 지바현)에서는 
3~4만명의 갓난아기가 솎아냄(마비키) 되고 있다' 


ㅡ에도시대 농학자 사토 노부히로


에도시대ㅡ 성장점 최저점시대.
                         
굿잡스 21-07-15 19:19
   
미개한 Jap의 오랜 노상방뇨변 문화.

과거 왜국에서는 나라(奈良,710∼794)시대나 헤이안(平安,794∼1192)시대까지만 해도 수도(首都)나 도시라고 해봐야 농촌과 별 차이 없이 공지(空地)가 많았기 때문에 특별히 변소를 이용하는 일 없이 집 주위에서 방분, 방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문명국이었던 중국, 한국과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이들 나라의 풍습이 전해지기 시작했고 이때 중국의 호자(虎子),한국의 요강(尿岡)등이 들어와 일부 왜국 귀족들 사이에서 사용되었다.


순소로(糞小路)와 노방변소

19세기 근세에 이르기까지 일본인들은 노상에서 방뇨를 하는 버릇이 있었다.

당시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노상에서 방뇨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인형으로 만들어 자기 나라에 보내기도 하였다.
또한 당시 교토(京都)에는 '분소로(糞小路)'라는 거리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이 거리가 바로 화장실처럼 누구나 가서 대. 소변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거리에는 언제나 오줌, 똥이 쌓여 있어서 누구든 이 거리로 들어갈 때에는 신고 갔던 신발을 벗고 입구에 놓여 있는 굽 높은 나막신으로 바꾸어 신고들어가야 했다고 한다. 그후 왜왕이 우연히 이 거리를 지나다 그 내력을 듣고 거리 이름을 바꾸도록 지시해서 오늘날의 금소로(錦小路)가 되었다.

메이지(明治)3년(1870) 일본 정부는 '방뇨 취제의 포고'를 내렸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요코하마 시내에는 83개소의 노방(路傍)변소가 만들어졌다.

이 노방변소는 일본 최초의 공중변소였는데 큰 변조를 땅에 묻고 그 주위를 판자로 막은 어설픈 것이었다. 

일본 정부의 노력에도 불고하고 노상방뇨의 
풍습은 쉽게 근절(根絶)되지 않았다.

.

서서 오줌 누는 일본 여성

에도(江戶,1596∼1686)시대 일본 교토(京都)의 여자들은 길가의 소변통에 허리를 구부리고 서서 예사롭게 소변을 보았다고 하는데 이러한 풍습은 메이지 시대 말기까지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

여염집 아가씨. 하인을 거느린 상류층 부인들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도로변 벽을 향해 엉덩이를 내놓고 선 채로
오줌을 누면서도 부끄러워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두고 비웃는 사람도 없었다.


https://m.ilbe.com/view/11188092966


“한해 쌀 수확량 12% 접대비로 사용”
옥스퍼드대 루이스 교수 논문

“일본이 조선통신사의 한 차례 방문에 쓴 접대비용은 (일본의) 한 해 쌀 수확량의 12%를 넘었다.”

루이스 교수는 “막부정권은 문명국인 조선과의 교류를 통해 피지배층에 대한 권위를 강화하고 수준 높은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조선통신사를 지속하길 원했지만 19세기에 이르러 접대비용이 ‘파괴적인 수준’이 되자 이를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나우문학 21-07-15 19:22
   
근데 왜 이런 미개한 일본한테 서울이 수시로 점령당함?
우리가 언제 도쿄를 점령한적이나 있음?
큐슈는 커녕 대마도도 점령 못했는데
                         
굿잡스 21-07-15 19:26
   
저기 북방의 야만족들도  싸움은 잘함.ㅋ

Jap은 인명경시에 인권도 미개하다보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국민까지 인신매매로 팔아 무기 수입 전비 마련이 당연시 되었던 미개 정치 사회가 전통적 역사.



《수십만 여성들에게 성노예 착취가 이미 당연시 되었던 Jap의 뿌리 깊은 미개 정치 사회상》   

조총과 화약 무기를 수입하기 위해 자국 백성을 노예로 팔아 치우던 막장 Jap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dg00010&logNo=221300104544&proxyReferer=https%3A%2F%2Fm.search.daum.net%2Fsearch%3Fnil_profile%3Dbtn%26w%3Dtot%26DA%3DSBC%26q%3D%25EC%259D%25BC%25EB%25B3%25B8%2B%25EC%259E%2590%25EA%25B5%25AD%25EB%25AF%25BC%2B%25EC%259D%25B8%25EC%258B%25A0%25EB%25A7%25A4%25EB%25A7%25A4%2B%25EC%2588%2598%25EC%25B6%259C����������������������

このように??時代も明治大正時代も大勢の日本女性が?春婦として?り飛ばされたのですが、現代の日本人としては認めたくない事?なのだろう(「明治から大正にかけて、30万人もの日本の若い女性が海外に?られていった」)         

이와 같이 전국시대도 메이지 타이쇼 시대도 많은 일본 여성이 매춘부로서 팔아 치워졌습니다만, 현대의 일본인으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일 것이다. (「메이지부터 타이쇼에 들이고, 30만명의 일본의 젊은 여성이 해외에 팔리고 갔다」)         

러일 청일 전쟁을 위해 30만명의 여성을 매춘부로 수출       

露日戦争と 日清戦争 ために 30万名の女性を売春婦で輸出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t4NB&articleno=1466


"일본 정부는 인신매매와 노예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마리아 루즈 호가 쿨리들과 맺은 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 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창녀의 인신매매는 무엇입니까? 그녀들은 어릴 때 돈으로 팔려서 가혹한 조건 아래 홍등가에 매여 있지 않습니까? 일본인 창녀의 매매가 합법이라면, 페루인 선장의 행위도 합법적인 것이 되지 않습니까." 

디킨스의 표적은 일본에서 합법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예·창기약정(芸·娼妓約定)>도 노예계약이라는 거였죠. 디킨스는 이런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실제 유녀의 연한계약증서 사본과 요코하마 병원의 치유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실제 일본 내에서 인신매매가 행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이러한 변론을 받자 오오에로서도 당장 논리가 궁해질 수밖에 없었죠. 급거 휴정에 들어간 재판정은 한참 후에야 재개장되었고, 고심 끝에 내려진 최종판결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http://m.egloos.zum.com/nestofpnix/v/4214900
                    
라크로스 21-07-15 19:05
   
ㅋㅋㅋㅋㅋ 우나기
          
굿잡스 21-07-15 18:54
   
미국의 흑선이 없었으면 Jap은 여전히 미개 폐쇄국.
               
나우문학 21-07-15 19:03
   
한국은 미국이 교역하자고해도 청나라 사대해야된다고 청나라한테 물어보라고
쇄국했잖아 ㅋㅋㅋㅋ
                    
적당히해라 21-07-15 19:04
   
애잔하다 왜구 새뀌 ..핵이야기 나오니까 ㅂㄷㅂㄷ하네 ㅋㅋ
                         
나우문학 21-07-15 19:11
   
조선은 청나라 번속국이다 - 이홍장
          
미우 21-07-15 18:59
   
세상을바꿔 21-07-15 18:48
   
글쎄요, 역사에 if란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천안문 민주화운동이 성공해서 미국보다 더 성공한 민주국가가 됐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거나

북침이 북한의 패배와 중국및 소련의 불참으로  한국이 세계최강부국, 민주주의의 선도적인 국가가 되어서

세계지도국이 됐을 수도...

한가지 확실한 건 세계나 자연이나 어떻게든 스스로의 질서를 찾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기사 21-07-15 18:51
   
IF란게 없지만 하지만 우린 무엇을 판단할때 역사와 성향을 봅니다. 중국이 민주화요 절대 그런일없습니다.  중국은 역사성향으로 볼때 민주화가 될수가 없습니다. 일본도 민주화가 어려운 이유도 그것과 마찬가지이고요 한국이민주화가 된 이유도 역사적이유가 있습니다.
네팔렘 21-07-15 18:50
   
미국이 없었으면 중일전쟁 때 일본이 중국을 먹어서 중국이 없을 수도 있겠죠.
     
성기사 21-07-15 18:52
   
일본이 중국을 어떻게 먹나요? 중국과 러시아는 먹을수있는 나라가 아니에요.. 중국에 이민족들이 와서 자기나라들 세우고 결국 동화된 이유모르세요?  일본은 중국먹을생각도 애초없었고 만주국을 세울 생각을한것죠 하지만 만주국세웠다고해도 그걸 그병력과 인구로 어떻게 버팁니까?
          
하늘나비야 21-07-15 18:55
   
동화 된건 청나라 후반 정도 아닌가요? 원나라도 망해서 몽골로 되돌아간거고요
               
성기사 21-07-15 19:04
   
중국의 지도가 진시황때부터 어떻게 영토가 변화햇는지 보시면 압니다
          
네팔렘 21-07-15 19:02
   
중일전쟁으로 일본이 남경까지 쳐들어가서 학살을 저지른 것은 아실테고...

그 후에도 일본은 중국 점령을 넓혀가니, 미국이 일본에 대한 원유공급을 끊어버린 것이고,

이것이 원인이 되서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한 것이고요...

2차세계대전사를 조금만 공부하시면 아실만한 내용입니다.
               
성기사 21-07-15 19:06
   
남경까지 쳐들어간게 아니고 지나가는 길이었고요 일본은 만주국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냥 이건 역사적 사실이에요 중국영토가 어마어마한테 그걸 어떻게 정복합니까? 중국황실을 잡아서요.? 그럼 중국애들이 그밑으로 말듣나요?  일본병력으로는 도저히 커버가 안됩니다.당시 만주쪾이 버려지다시피해서 그쪽 만주국을 세우려고한것이고 그게 부의입니다.
                    
네팔렘 21-07-15 19:12
   
어딜 지나가나요?

그 때 이미 일본은 만주뿐만 아니라 남경, 상해, 홍콩등 다 점령했어요.
                    
네팔렘 21-07-15 19:27
   
만주국은 1932년에 이미 설립되었고요,
일본의 남경 대학살은 1937년12월 부터 시작되었어요.
               
모니터회원 21-07-15 19:13
   
일본은 원래 청일전쟁 이후 확전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걸 접경지역에서 꼬투리 잡아 싸움붙인게 '무다구치 렌야'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21-07-15 18:52
   
미국없었으면 추축국이 2차대전 승리했고
지금의 중국은 없었겠죠.
     
모니터회원 21-07-15 18:56
   
미국이 없었어도 추축국이 이기기는 힘들어요.
독일도 한계까지 짜낸 물량 소련과의 전쟁으로 다 소모한 상황이고,
일본도 물량이 딸려 숟가락 밥그릇까지 징발할 수준이었음.
전쟁이 길어지고, 장기전으로 갔겠지만 추축국은 보급도 힘들고,
자원이 바닥나서 그 이상 유지도 힘든 상황이었어요.
          
솔직히 21-07-15 18:58
   
미안하지만, 그 보급 힘들게 한 게 미국입니다.
               
모니터회원 21-07-15 19:02
   
물량 자체가 없었다니까요.
독일이 후반에 티거 생산한것만 봐도 답은 나오죠.

일본이 진주만 때린게 동남아 자원 확보하려고 미국과 협상할 생각으로 벌인것이구요.
이미 전선이 너무 커져서 커버하기 벅차하던 상황이었습니다.
미국의 개입이 없었을때도 중국의 남부 해안가만 겨우 점령했을 정도에요.
                    
솔직히 21-07-15 19:03
   
미국의 참전이 없었다가 아니라 아예 없다는 걸 가정한 거 아닌가요?
                         
모니터회원 21-07-15 19:06
   
아예 없던 상황에서도 일본은 생산력이 떨어져서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었구요.

일본의 기술력 자체가 미국에게서 전수받은 것이라 아예 없었으면
메이지 유신부터 다 다시 따져야 해요.
우리나라에 신미양요도 없었을 것이구요.
즉, 동아시아 역사가 어떻게 돌아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되는거죠.
                         
솔직히 21-07-15 19:17
   
그런 식으로 따지면 18세기 이후 세계사가 다 바뀌니, 본문의 중국에 끼친 영향만 보자구요.추축국의 승리여부는 더 토론하기로 하고, 일단

1. 2차대전은 최소 장기화가 되었을 것이다에 동의하심?
2. 2차대전이 장기화되었을 경우 중국이 현재의 중국영토를 확보할 수 있을 거라 보심?
                         
솔직히 21-07-15 19:33
   
답이 없으시네. 그럼 뭐 더 반론 없는 걸 알겠습니다.
          
참다랑어 21-07-15 19:05
   
소련이 보급 걱정 안 하고 사람 갈아 넣을 수 있던 배경이 무기대여법입니다. 미국 없었으면 설사 독일이 소련을 멸망은 못 시켜도 소련 또한 그냥 몰락 확정이죠. 모스크바 전투까지는 거의 소련의 역량으로 막았다지만 딱 거기까지. 미국 도움 없었으면 역공 불가능. 영국 살린 것도 미국이고요.
               
모니터회원 21-07-15 19:08
   
스탈린이 경험많은 장교들 숙청해서 그렇죠.
하지만 소련의 영토와 인구를 생각하면 독일도 그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든건 마찮가지 입니다.
독일의 초반 승리도 우연이 겹쳐 얻은 부분이 있어서 그 이후 뚜렸한 대책도 없던 상황이었어요.
                    
참다랑어 21-07-15 19:11
   
그니까 독일이 소련을 멸망은 못 시켜도 소련의 몰락은 확정이라는 소리입니다. 역공을 가해서 독일을 몰아내야 스탈린도 권력을 유지하고 내부적으로 결속도 되는 거예요. 가장 중요한 도시인 모스크바 인근까지 모조리 독일이 차지했는데 여기서 미국의 도움이 아예 없었으면 거기서 계속 대치하다가 소련 내부에서 문제 일어났겠죠. 그리고 미국이 아니라면 유럽 전역을 차지한 나치 독일을 무너뜨리고 해방할 힘을 가진 나라가 전무했고요.
                         
모니터회원 21-07-15 19:15
   
미국이 소련에 물량지원을 한것은 '모스크바 공방전' 이후입니다.

https://namu.wiki/w/%EB%AC%B4%EA%B8%B0%EB%8C%80%EC%97%AC%EB%B2%95
[소련은 이미 지원물자가 효력을 발휘하기 전인 1942년 1월에 모스크바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1차적으로 독일의 공세를 꺾고 패퇴시켰다. 영국발 물자는 1941년 9월부터 연말까지 1,400대의 트럭과 600대 가량의 전차, 800대 가량의 항공기, 수만톤의 물자 등을 보급됐다.]
그 이전에 지원한 것은 영국이었죠.
                         
참다랑어 21-07-15 19:16
   
댓글 안 읽었죠? 위에서 이미 언급했는데요. 모스크바 전투까지는 소련의 역량으로 막은 거라고. 그래서 미국이 없으면 이후에 소련이 독일에 어떻게 역공을 가합니까?
                         
참다랑어 21-07-15 19:19
   
그리고 그 영국이 미국이 아니라면 소련에 지원할 여력이 없습니다.
                         
솔직히 21-07-15 19:25
   
본인이 하신 링크에서 영국항목을 읽어보세요. 영국이 어떤 상황이었는 지.
홀로장군 21-07-15 18:56
   
미국 없었어도 그렇게 하기 어렵죠
수천년 동안 그런 역사도 없고
우호적?이라 할 수 있는 북한 조차도 점령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대한민국보단 대부분의 동남아 부터 잡아 먹겠죠
자원과 노동력이 훨씬 많으니
실상은 삐리해 보이는 동남아 국가조차 중국이 쉽게 먹지 못합니다
     
성기사 21-07-15 19:07
   
북한을 왜 점령하나요 자기 똘마니가 알아서 잘 통치하고 잇느데요 그리고 제가 말한 내용은 경제적으로 점령한다는게 아닙니다.무력으로 점령한다는것이죠.
          
홀로장군 21-07-15 19:22
   
한국을 점령 하려는 이유가 뭐죠? 그리고 시점이 언제죠?
베트남과의 전쟁 조차 진?  과거는 아닐 거고
한국이 말을 안듣는다고?

중국이 군사적으로 강해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북한을 거치지 않고 중국이 대한민국을 치는 게 가능할지?


그러니까
현재 시점으로 육지를 거치지 않고 서해를 가운데 두고 중국과 전쟁이라면
중국도 최소 팔 다리 하나씩은 내놓아야  할 겁니다
솔직히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중국이 이기란 보장도 없죠

근데 미국이 없다고 한국을 친다구요?

그리고
해방직후나 6.25직후 시점 혹은 베트남조차 깨지 못한  80년대 이전 시점이라면
전혀 의미가 없지 않나요?

또, 제가 수천년 동안 그런 역사가 없다고 한건
중국이 한반도를 점령 하려 침략 한 적이 없다는 게 아니고
그럴때 마다 중국이 오히려 크게 당해서  한반도를 점령한 적이 없단 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