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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2-21 05:54
태권도 전사(前史)로서의 택견과 발차기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825  

아래의 글은 필자 본인이 지난 해(2020) 7월 경, 이창후 박사의 태권도문화연대 유튜브 채널의 한 영상에 댓글로 적은 글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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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은 민속무예이자 놀이로서 중국의 문이나 일본의 관의 경우처럼 도제 계승의 폐쇄성을 띠고 전승된 것이 아니어서 현대 태권도 조성기이자 태권도 초기 조성주체들의 성장기에 해당하는 1920~1940년대에는 황기, 이원국, 최홍희 등 대표적인 현대 태권도 조성주체들이 분명히 증언한 바와 같이 누구나 한 번쯤은 택견을 하는 것을 봤고, 또 누구나 한번쯤은 직접 해봤을 투기적 몸짓이었습니다

택견 측에서 '임호 - 송덕기 - 신한승'의 계보만을 정통으로 삼아 대내외적으로 강조하여 주장하면 할수록 그 택견은 우리 겨레가 최한한 근세와 근대의 시기에 그 민중이 보편적으로 향유하여 나눈, 즉 '민족'이라는 말로써 수식할 수 있는 택견이 아니라 그저 송덕기와 신한승 특유의 택견, 또는 몸짓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즉 지금의 택견만 택견이고, 태권도는 택견과 전혀 무관하다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말의 덫에 빠지는 어리석은 짓인데 택견인들은 그렇게 하여 왔고, 또 하고 있죠. 

송덕기 선생의 첫 제자는 신한승 선생이 아니라 태권도인 박철희 사범이었고,  이것이 이미 1960년대의 일이며, 박철희 사범의 택견 수련과 학습, 송덕기 선생에게서 얻은 여러 정보를 전한 바가 오히려 오늘날에 와서는 택견의 성격과 역사를 규정하고 정립하는 데에 큰 바탕 구실을 한 사실은 택견과 태권도의 무관성을 주장하는 택견인들 스스로의 위선과 모순을 가리킨다 하겠습니다.

저 1940년대 해방공간에서 비록 당수도라는 이름으로 수련됐음에도 이미 가라테와 견주어 다소 다르거나 전혀 이질적인 발차기를 하였다는 사실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하고 택견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태권도 원로들 모두가 발차기는 택견에서 왔다고 증언하여 왔습니다. 또한 택견에 대한 이 시대 사람들의 인식은 족기(足技), 즉 말그대로 발기술, 또는 발차기 몸짓이었습니다. 가라데 발차기 기술, 가라데 발차기 원리와 다르고, 또한 현대 태권도 원로들이 "태권도의 발차기는 택견에서 왔다"한 무수한 증언을 근거하면 의심의 여지 없이 현대 태권도가 택견을 계승하였음을 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송덕기 선생의 말 한 마디는 금쪽 같이 여겨 사료로서 삼고 또한 복원의 씨앗으로 삼으면서 태권도 원로들의 무수한 말은 아예 대놓고 무시하면서 "태권도는 택견과 전혀 무관하다"하는 말만 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은데 택견인들은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현대 태권도 형성기의 7에서 8할의 인적 지분을 지녔던 무덕관의 황기 선생이 1970년에 발간한 <수박도대감>에는 비록 황기 선생의 발언이나 당시 태권도 원로들의 택견과 태권도의 상관성에 대한 인식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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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말엽에는 순족기(純足技)만으로 되 어 있는 태껸이라는 것이 실존하여 현재 생존한 고령자 중에는 실제로 습득한 사람도 있고, 실기를 본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 태껸은 의의있는 도 (道)나 무예로 취급받은 일이 없고 받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태껸은) 현재 우리들의 사도(斯道)의 기술면에 있어서 특히, 족기(足技)에 있어서 다대한 교훈을 받았고 또 모체가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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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사도(斯道)라 함은 수박도를 가리킬 것이나 당시에는 수박도와 무덕관 태권도, 나아가 태권도의 전반적 차이점이 없었으므로 태권도를 가리킨다고 해석해도 무방합니다. 보인 바와 같이, 황기 선생은 발차기 자체가 택견에서 왔다고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더 과거로 올라가 보면,

황기 선생이 1949년에 발간한 화수도(花手道) 교본에는 순우리말 이름으로 된, 가라테 발차기와 분명히 다를뿐만 아니라 가지 수도 많은 발차기들이 제시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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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차기, 옆차기, 돌여차기, 두발차기(두발쌍당), 쌍발차기, 옆뻐더차기, 뒤차기, 찟밝기, 무릎치기, 뛰여차기, 거퍼차기, 앞으로 발들기, 옆으로 발올리기, 뒤로 발들기, 발로 막기, 발로 밀기, 앞으로 발올여 나가기, 옆으로 발올여 나가기, 뒤로 발들여 나가기, 옆뻐더 나가기, 옆차 나가기, 발로 막아 나가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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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차기뿐만 아니라 지금은 사장돼 가는 저 팔구십 년대 경기태권도에서의 이른 바 '커트발' 기술 형태도 엿보이고, 또한 택견의 딴죽과 유사한 형태도 엿보입니다.

이들 발차기는 분명 가라테의 발차기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태권도가 경기화되기 이미 수십 년 전에 존재한 발차기입니다. 게다가 황기 선생은 가라데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발차기는 대체 어디에서 왔겠습니까?

중국 무술은 이른 바 남권이든 북권이든 발차기라 할 만한 것이 없고 그 기법과 공방의 수련 내용 자체도 신체단련, 수기공수, 유술이 중심입니다. 중국 무술은 태권도나 가라데, 무에타이 등과 견주어 발차기라 할만 한 것은 앞차기 정도로 어느 사람들은 돌려차기, 옆차기는 있었다 하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상대의 운신의 진행을 막기 위한 것으로 태권도의 커트발과 유사한 형태일 뿐입니다.

설사 중국 무술에 앞차기, 돌려차기, 옆차기 등 이 세 가지의 발차기가 있었다 수긍한다 하여도 중국 무술의 발차기는 허리를 곧게 펴서 다리를 올리거나 뻗거나 차는 것을 원칙으로 하므로 역시 그 성질과 원리가 다릅니다.

황기 선생이 1950년대에 연구하고, 1960년 경에 창안하여 제시한 수박도의 자료가 된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은 이제 무술대중들에게 비교적 알려진 바와 같이 명나라 군대에서 창술과 검술을 수련하기 위한 신체운용 기초 훈련법이었던 송 태조 장권 32세를 바탕한 것으로서, 

그 무예도보통지 권법 편의 서두에 기술된 바와 같이 무기술을 익히기에 앞서 신체운용의 유연성과 활달성, 잠재성을 획득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으며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발차기라 할만 한 것은 앞차기가 유일합니다.

황기는 이 권법보에 돌려차기, 뒤돌려차기(뒤후리기) 등을 추가하여 본인의 방식으로 창조적 해석을 하여 복원해 수박도라 이름한 것이며 이는 우선 하나의 형(품새)일뿐으로서, 그의 무술을 수박도라 명명했다 하여도 그 수련 내용자체는 이왕의 당시 태권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의 제자들 가운데에 미합중국에 '당수도 가라데'라는 이름으로 1970년대 이후에 진출하여 지금까지 비교적 명성을 얻어 유지하는 이른 바 무덕관 당수도의 수련 내용과 그 형태를 보면 품새는 초기 가라데의 가타 일색이고 발차기와 대련시 무게중심의 운용은 태권도 그대로의 이상한 모습을 띠고 있는데 이 모습은 오히려 저 해방공간에서 현대 태권도 조성기에 이르는 시기 당시의 우리 대한의 태권도 도장의 내용적 모습에 가깝지 않나 추측됩니다.

무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게중심과 거리, 이 두 가지입니다.

태권도는 가라데의 형질을 받아들이고 실전무술을 지향하면서 택견의 거리를 버렸으며 택견의 무게중심을 바탕하면서 가라데의 무게중심과 이질동거를 한 동시에 또한 가라데의 거리 또한 버렸습니다. 이로써 스스로 떠안은 태권도의 모순성은 시급히, 그리고 반드시 해소해야 할 과제입니다.

본인은 이곳 채널의 주인이신 이창후 박사님의 견해와 달리 현대 태권도는 오키나와 무술인 가라데와 우리 무술인 택견의, 서로 다른 형질의 두 무술의 정반합적 구축과 조화 과정에서 중국무술의 형질 일부의 간섭, 그리고 해방공간(반일, 반공)의 시대정서와의 교감이 작용하여 창조적, 대안적 합일로서 탄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자료는 본인이 임신자 외의 해당 논문에서 처음 캡처하여 인터넷 상에 공유한 것으로, 만약의 책임소재는 본인에게 있음을 밝힌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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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임 21-02-21 05:58
   
택견은 70~80년도엔 거의 뉴스나 언론에도 나오지 않았음...
(신문에서는 1~2번 본적이 있기는 함...)
90년대 후반이나 되어서야 조금씩 소개되기 시작함...
     
감방친구 21-02-21 06:01
   
제가 택견을 처음 안 것은 1980년 대 후반입니다
제가 다니던 태권도장에 새로 전학 온 학생이 알려줘서 그 때에 처음 알았습니다
          
뱃살마왕 21-02-21 06:59
   
저도 80년도에 전해들었죠
잘봤습니다  참고로 70년도에 무덕관 수련생입니다
joonie 21-02-21 07:04
   
애초에 메커니즘 자체가 다르지 않나요.. 택견과 태권도는.
제가 택견을 겉핥기 식으로라도 배웠을 때, 두 무술은 박자 자체가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초창기 태수도나 그 이전에 당수도, 공수도(!!)라고도 불리던 일제 치하 시절에 택견 등의
민족무술이 탄압받으면서 택견을 하던 사람들이 가라데를 새로 배웠고, 따라서 택견의 요소가
당연히 해방 후에 가라데로부터 차별화하려던 태수도 혹은 태권도에 의도적으로라도 반영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태권도가 택견을 직접 계승한 것은 아니지요. 가라데를 베이스로 하여 택견의 발차기
요소가 반영되었고, 거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독자적 발전이 되어나갔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사커좀비 21-02-21 09:06
   
태권도가 태껸의 발차기를 계승했다... 이렇게 주장하면 사기이고 역사 왜곡이 됩니다..
그러나, 태권도가 태껸의 발차기를 차용했다... 받아들여서 발전시켰다 하면 용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나래차기나 540도 돌려차기는 현대에 발전된 기술들이니까요...

쿵후나 공수도의 발차기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그러나 택껸은 백기신통비각술이라 할 만큼 발기술이 화려하고 다양했으며, 조선 후기에는 상대의 상투를
차는 것을 최고 기량으로 인정했다죠?

태껸이 미디어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중반입니다..
84년? 85년? KBS의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했던 교양예능프로에서 처음 소개된 후....
간간히 라디오, 방송에서 보여지기 시작했고요...
1986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의 홍보영상에도 짤막하게 소개될 만큼 알려지기 시작했고...
당시 군부정권에 대항하던 대학가에서는 전통문화를 계승, 보존, 복원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려서...
각 대학별로 전통문화 동아리가 무수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갑자기 80년대에 전통무예들이 미디어에 소개되기 시작했어요...
태껸부터 시작해서 본국검법, 해동검도, 선무도, 수벽치기, 수박도, 24반 무예 등등...
심지어 24반 무예는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투옥되신 분이 옥살이중 무예도보통지를 연구하여 복원한 건
아주 유명하지요...

제가 볼때 태권도가 삼국시대부터 어쩌고 한 건 너무 심했어요...
그냥 일본에서 배워 온 공수도에 더해 이 땅에서 발달했던 족기들을 접목했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물론, 초창기 태권도 성립기에 품세를 만들고 호국정신을 담고 한 것은 높이 평가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