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힘든 과정을 거쳐 데뷔했으니 이제 꽃길일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요.
“데뷔하고도 수입이 없었어요. 5년 만에 처음으로 정산(손익분기점을 넘을 때 이뤄지는 수익 분배)을 받았죠. 데뷔 4년째인 2016년 첫 정산을 받았다고 알려지기도 했는데, 그건 엄밀히 말해 제대로 된 정산이 아니었어요. 게다가 찬미는 데뷔하고 3년쯤 됐을 때 우울증을 심하게 앓기도 했죠.”
-마음이 많이 아프셨겠어요.
“어느 날 오후 4시쯤 찬미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찬미가 아침부터 없어졌다고요. 그때 회사에서 못쓰게 해서 찬미가 휴대폰도 없었거든요. 아이패드로 이메일만 주고 받았어요. 이메일을 넣으니 답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미용실 일을 황급히 정리하고 기차로 서울에 올라가서 다시 이메일을 보냈죠. 만나서 밥 먹었냐고 물으니 안 먹었대요. 데리고 식당에 가는데 한 숟가락도 안 먹더라고요. 같이 모텔 가서 자고 다음 날 한강에 가서 있었어요. 그때까지 아무 것도 물어보지 않았죠. 사흘째 찬미가 그러더라고요. 아무리 노력해도 올라갈 수 없고, 이제는 내려가는 것 밖에는 안 보인다고요. 회사를 나오고 싶다고. 그런데 위약금이 투자 금액의 3배였어요. 수십억 원이죠. 당장 이것 저것 다 끌어 모아도 2,000만원뿐이더라고요. 그래도 찬미한테 죽을 만큼 싫으면 나오라고 했어요. 어떻게든 엄마가 책임지겠다고. 그랬더니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지’ 하면서 다시 들어간다더군요.”
-그 뒤로는 어떻게 됐나요.
“제가 너무 불안하고 무섭더라고요. 숙소가 아파트 9층이었는데 뛰어내리면 어쩌나 너무 걱정이 됐어요. 그래서 매일 서울로 제가 기차로 올라갔어요. 일 마치면 밤 기차 네 시간 타고 올라가서 찬미 보고 아침 기차로 내려와서 미용실을 열었죠. 찬미가 두 달간 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도 하지 않더라고요. 보통 새벽 4시나 6시에 숙소를 나서는데,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나갔죠. 두 달을 매일 서울로 그렇게 다니니까 제가 살이 36㎏까지 빠졌어요. 인플루엔자에 걸려서 어느 날 쌍코피가 터지더라고요. 그걸 보더니 둘째가 ‘엄마, 나 이제 괜찮아’ 하더라고요.”
-그때 어떠셨어요.
“‘아, 이제 찬미가 살겠구나. 다행이다’ 싶었어요. 찬미가 나중에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때는 몰랐다고. 그런데 어느 날 눈을 떠보니까 자기 앞에서 엄마가 죽겠더래요. 그제야 보이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