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어느날이었습니다.
퇴근하면서 무슨 소식 없나 하고 일본 트윗 타임라인을 살펴보는데
이런 글이 보이는 겁니다.
'twice 신곡에 한국 작곡가가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잠깐 있었다 리트윗 없이 삭제된 글입니다만,
호기심이 발동되어 네이버 번역기를 통해 대화를 걸어봤고,
업계 관계자라고 해주신 그분으로부터 이런 저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분과의 대화 내용과 일본쪽 모니터링 결과를 토대로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1. 한국이 보는 캔디팝, 일본이 보는 캔디팝
일본 뮤비가 나오고 나서 위에서 설명한 일본분을 포함한 현지인 몇 분이 물어보시더군요.
한국 사람들이 뮤비를 어떻게 받아드리는지 궁금하다구요.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과거에 일본문화를 접한 경험은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편견을 가지지 않기 위해 나름 노력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뮤비만 보면 진입장벽이 꽤나 높은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음원만 놓고 보면 상당한 흡입력이 있다고 보여지고,
이쪽 분야 공부를 좀 더 하고 사운드도 더 뜯어보고 하면서 뮤비 시청도 재도전할 계획이다.'
'반면에 팬이 아닌 사람들은
일본 현지화가 과도한 수준으로 진행되어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꽤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현지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부 의아해 했습니다.
'과도한 현지화라는 말은 상당한 충격이다. 자기들은 기존의 관례를 깬 도발적인 실험으로 본다.'
자기들도 처음에는 그런 방향의 컨셉을 예상했었는데,
애니 요소가 일부 차용된 것을 뺀다면 현지화(또는 재패니즈 프렌들리로 해석)랑은
대척점에 있어 오히려 놀랐다고 합니다.
2. 현역 아이돌의 애니 뮤비 타이틀
우선 애니 뮤비 부터 물었습니다.
일본은 애니와 친숙한 나라이고, 아이돌도 애니가 익숙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아니라고 합니다.
과거 AKB가 애니메이션을 낸 적이 있지만 뮤비가 아닌 별도 스팟성 영상 시리즈였고,
카라도 애니를 한 번 낸적이 있었는데 역시 뮤비랑은 관련이 없었으며,
심지어 애니도 기획부터 제작까지 전부 한국 회사가 담당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전 트와이스 외에 여자 아이돌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입니다..)
지역 단위 아이돌이 아닌 메이저판에서는 공식 뮤비를 애니로 낸 다는 건
자기들 입장에서도 선례가 거의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럼, 뮤비에서의 애니 채용과 스팟성 애니 방영이 뭐가 다르길래?
뮤비에서 애니를 쓴다는 건 이 케릭터를 적어도 활동기 동안은 온전하게 안고 간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스팟성 영상물이랑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일단, 오늘 공개된 굿즈 목록 1번이
캔디팝 세계관을 이야기 해주는 스토리 코믹북이었고,
애니 케릭터 굿즈도 멤버별로 출시되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세계가 줄줄이 대기중에 있는 겁니다.
이렇게 돈이 된다면 왜 선례가 없고, 왜 일본인들도 신기하다고 하는 걸까요.
3. 실사팬과 애니팬의 공존 실험
통상적으로 애니팬과 아이돌팬은 겸덕의 비중이 낮고 웹 상에서 사이도 좋지 않은 편이라고 합니다.
러브라이브팬은 성우콘서트는 가지만 아이돌 콘서트는 가지 않고,
아이돌팬은 실체가 없는 애니 콘서트에 가지 않는 식입니다.
콘텐츠를 즐기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청해들었습니다만 이해가 되질 않아서 이 부분은 일단 패스하겠습니다.
몇 년 전에 AKB가 AKB0048이라는 애니 시리즈 물을 돌리는 실험을 했었다고 하는데요,
초반에는 흥행이 괜찮았으나 후속 시리즈부터는 실적이 좋지 않아 단기성으로 끝난 듯 합니다.
(국내 나무위키에도 제가 들은 것과 거의 유사한 기록이 있습니다.)
https://namu.wiki/w/AKB0048
그런데 트와이스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애니와 실사를 한 뮤비에서 결합해 버린 것입니다!
금단의 결계를 아주 가볍계 넘어가 버린 것이지요.
일본에서도 전대물 매니아가 아니라면,
이를테면 러브라이브 애니에 성우 실사가 함께 출연하는 일 같은건 상상할 수 없다고 합니다.
멀쩡한 팬층이 두 개로 쪼개질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홍백가합전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연양이
인터뷰 스테이지에서 50년 홍백의 암묵적 룰을 깨버리고
테이블에 있던 귤을 마구 챙겨간 나름의 사건이 있었는데요,
이 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황당하면서도
귤을 챙겨가며 천진난만하게 카메라에 브이포즈를 해주던 나연양의 표정을 보면서
문제제기는 감히 하지 못하고 다들 한바탕 웃어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이 이야기가 상당한 화제거리 였다고 하네요.)
이번 실사-애니 결합도 '이런건 트와이스라서 가능한 도전이다' 라고 합니다.
4. 애니송이라기엔 너무 복잡하고 불친절한 음악
일본분들이 던져준 화두를 토대로 음악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일본인들이 보통 애니라고 하면 상상하는 음악 스타일이 있습니다.
플랫하고 튀지 않는 백그라운드에 가벼운 곡조로 시작해서 클라이막스 때
고저가 뚜렷한 멜로디로 팍 터트리고 다시 조용하게 마감하는 식입니다.
정해진 공식이나 악법 내에서 애니송이 나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노래에 집중하도록 사운드가 너무 힘을 주면 화면과 스토리가 안보이기 때문입니다.
메인 코러스가 애니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고 나머지 부분은 그 이미지를
기억속에 저장시키는 도우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캔디팝으로 넘어가 볼까요?
저를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비슷한 감정이셨을 겁니다.
뮤비를 집중해서 풀로 감상했는데 노래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와....
뮤비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건 맞는데 그것 말고도 이유가 있습니다.
노래가 정말 복잡하기 떄문입니다.
일단 비트가 귀를 거슬리지 않는 일반 8비트가 아니라
마디 중간에 스네어가 튀어나왔다가 마디가 끝나기 전에 들어가 버립니다.
또한 모든 벌스에서 사운드 복붙이 없습니다. 조금씩이지만 다 다릅니다.
백그라운드 보컬도 사비마다 전부 다릅니다.
악곡 구성도 a-b-벌스-사비-a'-벌스-사비의 통상적인 형식에서 한참 벗어나 있습니다.
추측컨데 작곡가인 이우민/마유 와키사카 이 두분이 캔디팝 사운드 만드는데 몇 달은 걸렸을 것입니다.
사운드가 가장 복잡했던 라이키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과도 큰 차이가 없었을 꺼라 예상합니다.
정말이지 트와이스 스러운 노래입니다.
한 두번 듣고 이게 무슨 노래냐 하는 반응이 많이 나오는 그런 류의 곡에 가까운 겁니다.
케이팝에서도 자주 나오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트와이스에게는 낯설지 않은,
제이팝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그런 스타일의 곡입니다.
애니 타이틀로서는 최악의 상극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일본인들이 말하는 '불친절'의 가장 큰 요소가 여기에 있습니다.
트와이스라는 브랜드의 화력 중 하나인 비주얼을 희생시키면서, 애니와 실사를 합치면서도
노래마저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휙 하고 날라가버릴 그런 요소들을 패키지로 안겨준 것이니까요.
일본 대중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쇼크를 한방에 받은 겁니다.
5. 안전한 길을 놔두고 왜 이런 실험을?
사실 첫번째 싱글인 원몰타임은 상당부분 예측가능 범위 내에 있던 악곡과 컨셉과 활동이었다고 합니다.
1주일 뒤에 본국 활동이 내정되어 있었기에
짧은 기간 중 최단기에 어필을 할 수 있도록 곡이 정해졌을 확률이 높다고 추정하더군요.
원몰타임은 3분00초짜리 곡에 코러스에 모든 힘을 쏟아 부운, 위에서 말한 목적에 아주 부합하는 곡입니다.
뮤비에서의 스포츠 컨셉도 일본 여돌은 1~2년을 주기로 한번씩 할만큼 아주 스탠다드한 것이었구요.
확장보다는 알리기에 목적이 있었던 그런 활동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2주 동안의 온전한 사전 프로모션 기간이 있습니다. (전국 쇼케 투어)
이번에는 엠스테 등 일본 방송 매체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평창올림픽에 대한 관심을 동경올림픽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음방 외 방송의 수요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방송이 아니더라도 필요에 따라 2월 활동을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발매후 열흘 동안 모든 이벤트를 압축시킨 원몰타임과 달리
각종 이벤트 스케줄이 2월~3월초까지 흩뿌려져 있습니다.
뭔가 이것저것 해보려면 이번이 적기다 라는 얘기인데
들어보니 그럴듯 해보이기도 합니다.
그럼 케이팝 + 제이팝의 중간 지대에 있는 곡조와
적당히 일본 현지와 타협한 컨셉으로 무난한 히트 공식을 왜 거부하고
어떻게 보면 리스크 높은 실험을 강행했느냐에 대한
현지 의견 몇 개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1) 트와이스 팬덤의 목표 경계 획정
제가 오늘 본 일본인의 뮤비 감상 후기 트윗 중에 굉장히 인상깊은 말이 있었습니다.
' 이질적인 요소들이 더 이질적인 매개체를 통해 용광로처럼 융합이 되면 더 이상 이질적이지 않게 된다.'
지극히 일본 스러운 말이지만 재미있는 표현이었습니다.
지금의 트와이스 일본 팬덤은 그간에 한번도 없었던 형태의 팬덤입니다.
라인이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를 다시 한번 가져오겠습니다.
작년 7월을 기준으로 트와이스는 여성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여아이돌로,
10~20대가 팬층의 주력인 '유일한' 여자 아이돌입니다.
트와이스는 적어도 팬 구성에 있어 참고할 만한 선례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또 오프라인 하이터치회 회장을 가면
일본 내수 걸그룹 주된 수요자인 30대 이상 남성들도 많이 등장을 합니다.
워너뮤직에서는 첫 하이터치회때 10대 여성 취향의 굿즈들만 산더미처럼 준비했다가
남성들이 너무 많이 와서 이들의 굿즈 수요를 전부 놓쳐버린 경험도 있습니다.
이 팬덤의 실체는 아직도 상당부분 안갯속에 있다는 겁니다.
아예 케이팝 팬덤이면 대응이 쉬운데 그게 아니니 대응 전략을 짜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기존 케이팝 팬덤에서는 안티 활동도 상당합니다.
일본인 멤버 이름으로 실시간 검색을 하면 항상 '공주병'이라는 낯선 수식어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트와이스 프로필 사진이 걸린 평범한 트윗 계정을 가보면
플스 게임과 해외 축구 썰만 풀다가 간간히 트와이스와 노기자카의 뮤비 또는 멤버 몇몇의 사진을 올립니다.
그 외 케이팝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습니다. 이건 전형적인 케이스입니다.
업계 관계자라는 분은 이렇게 추측을 합니다.
사무소에서 지금 제일 시급한 건 트와이스 팬덤의 결계를 획정하는 것이다! 라고 합니다.
이것도 일본식 표현이지요 ㅎㅎ
목표로 하는 타겟층을 공략하기 위한 타겟 바운더리를 설정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보면 여러 가지 요소가 용광로처럼 섞여있는 캔디팝 컨셉이 살짝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10대 초반 어린이만 모을 생각이냐! 라고 비토했던 뮤비인데
스토리북을 보면 20대 이상이 즐길 만한 세계관이 심어져 있고,
노래 안에 깔리는 비트는 힙합 베이스에 자켓 의상에는 걸크러시한 요소도 들어있습니다.
만들어 놓은 댄스버전 뮤비가 아직 공개가 되진 않았는데,
아마 시그널 처럼 상당히 파워를 요하는 댄스도 부분부분 섞여 있을 것으로 추정들을 합니다.
관계자 분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러가지 장치를 심어놓고 요소요소별 반응을 확인할 꺼라구요.
우선 워너뮤직은 최고의 '관찰 무대'인 2주 간의 쇼케이스를 최대한 활용할 겁니다.
실제로 쇼케 투어 공지를 보면 요일별로 굿즈 리스트가 계속 바뀝니다.
셋리스트도 '관찰' 목적에 따라 조금씩 유동적이 될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들이 처음에 비토했던 애니부분 뮤비는 굉장히 작은 요소가 됩니다.
(2) 가족단위 공연 수요는 가수의 생명과 직결!
현재 트와이스 팬덤은 10~20대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가 탄탄하지만
다른 일본 걸그룹과 비교시에는 지지층 대비 오프 화력이 가장 약하기도 합니다.
이건 지갑이 얇은 10대~20대 초반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어쩔수 없습니다.
다른 케이팝 남아이돌 같이 무한충성할 수 있는 강력한 수요자층이 없는 대중형 걸그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열이면 열 다 가족단위 팬층이라고 대답을 한다고 합니다.
위에서 소개된 라인 조사를 봐도 40~50대의 현지 아이돌 지지도가 높게 나오는게
이러한 공연 관람 문화와도 긴밀히 연결된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애니 채용을 이런 측면에서 보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일본에서는 40~50대도 애니를 보면서 자란 세대이기 때문에,
화려하고 돈자랑 하는 듯한 자뻑형 케이팝 뮤비는 못봐도 애니 뮤비는 거부감이 덜하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지하철에서는 사람들 손찌검 무서워 캔디팝 뮤비를 당당하게 볼 생각 하기가 어려운데
일본은 상황이 정반대라는 거지요.
여하튼 가족단위의 공연 수요가 대중형 가수의 티켓파워의 핵심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기 때문에
복잡한 각종 장치들을 고려하지 않는 다면 충분히 이해 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6. 맺음말
마지막으로 지금 시점에서 나오는 일본 웹 반응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들 하시네요.
케이팝 코어팬중 트와이스 팬을 겸하는 팬층들은 상당한 반발을 할 수도 있고,
급상승 순위 때문에 유투브 맨 위에 걸려있기 관계로 우익들도 많이 유입되어 있을 거라고 합니다.
새로운 실험의 대상이 되는 잠재적 지지층은 아직 의사 표명을 하지 않았을 꺼구요,
마음으로 응원하면서 조금 더 지켜보면 될 것 같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워너뮤직은 장기 플랜 하에서 바둑돌을 하나하나 움직이고 있는 중이고,
하반기 쯤 되면 타겟으로 하는 팬층이나 스케일 등을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리고 트와이스에 관심은 있는데 캔디팝 뮤비 한번 보다가 중간에 꺼버리고 마신 분이 계시다면
유부브에 음원만 나오는 버전이 있으니 한번만 더 들어봐 주십사 요청드리고 싶네요.
처음 봤을때랑 느낌이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원스의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수긍하는 면도 있어서 퍼왔습니다.
여러가지 분석들이 존재하겠지만, 이런 분석도 있다는 점 생각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