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 신곡이 블루스란 장르를 타고 나왔는데요.
한때 우리 동네 시라프넬이라는 닉네임으로 또 저니맨이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한 사람의 글을 퍼왔습니다.
처음에 들었을 땐 블루스 치곤 좀 덜 진득하단 느낌이었어요.
음악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얕고 넓게 많이 듣긴 했는데 깊게는 모르지만 암튼...
제가 좋아하는 블루스 뮤지션들은 대부분 20세기 초반에 모던 블루스를 창조해낸 사람들, 또는 60~70년대의 Rock 르네상스 기에 활동했던 Rocker들이라서요. ^^
따라서 제가 생각하는 블루스라는 건 진득한 오버드라이브(그냥 아무런 이펙터 없이 기타와 앰프를 직결하고 나서 볼륨만 높였을 때 전기적 신호의 왜곡으로 인해 나오는 자연스런 디스토션 사운드) 톤의 일렉트릭 기타에 읊조리듯 노래하는 그런 음악이었던 거죠...
(제가 참 좋아하는 Rory Gallagher나 Roy Buchanan이 딱! 그런 류라고나 할까나...^^)
그런데 밑에 NEZO님 글을 읽고 나니, 그리고 인스트루먼틀을 듣고 나니 확실히 알겠네요.
저도 처음 들었을 때 갸우뚱 했던 것이...그냥 '블루스'라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닌 듯 해서요.
블루스와 R&B(우리나라에선 소몰이 보컬로 알려져 있지만 원랜 Rock의 프로토타입 장르 중 하나였죠...), 쏘울, 거기에 찡기직 콩딱~거리는(ㅎㅎ) 훵크(funk)까지...
흑인 음악의 모든 요소들이 적절히 녹아 있는 데다 어쿠스틱 기타에는 컨츄리 블루스의 터치도 살짝 들어가 있다는 거...
이렇게 써 놓고 보면 일반인(?)들은 도저히 접근도 못할, 오로지 골수 흑인 음악 & Classic Rock 마니아들을 위한 음악인 것 같지만
놀라운 건 이게 바로 대한민국에서 아주 평이한 '대중적 대량 소비'의 대상인 여성 아이돌 그룹,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이고 영향력 있는 메인스트림 걸그룹 중 하나인 KARA의 신곡에 대한 얘기라는 겁니다.
진정 놀랍네요.
80년대 유러피언 뉴웨이브/로맨틱 팝에 대한 걸출한 오마쥬 STEP을 들었을 때도 그랬고,
스윗튠의 전매특허라 할 세련된 멜로디에 테크노의 다양한 서브장르들을 담아낸 PANDORA를 접했을 때도 그랬지만...
(수록곡 '그리운 날에'는 심지어 1920년대 미국 태생인, 모든 재즈의 시 발점 '스윙'을 시도하고 있었죠...)
스윗튠이 워낙 팝을 기반으로 80년대 이후의 다종다양한 팝/락/뉴웨이브/테크노/펑크락 등등을 두루두루 섭렵한 덕분에
위 열거한 장르들에 대해 이토록 성공적인 오마쥬를 만들어 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런 장르들을 2000 하고도 10년대의 한국의 대중/아이돌 음악계에 별다른 위화감 없이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은
오직 스윗튠과 KARA의 찰떡궁합스런 역량이 어우러진 결과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을 겁니다.
모던 토킹과 런던 보이즈, 듀런듀런, 컬쳐클럽을 들으며 80년대를 롤러장에서 보낸 '그때 그 음악'을 아는 세대 뿐 아니라,
80년대를 직접 겪지 않은 10대 20대를 모두 아우르는 대중성을 갖는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KARA와 스윗튠이라는 최강 콤비가 가진 파괴력의 핵심인 것이죠.
사실 뮤직뱅크, 음악중심, 인기가요, 엠!카운트다운 등등 음악방송을 보다 보면 누가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로 비슷한 의상, 비슷한 장르, 비슷한 멜로디, 비슷한 창법의 그룹들이 그냥 나왔다가 들어가는 그림이 무한 반복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똑같은 발굴, 교육, 양성 시스템을 통해 길러지고,
몇 안되는 인기 작곡가들의 곡을 나눠 갖거나, 아니면 그 인기 작곡가들의 곡을 답습한 곡들을 부르는
비슷한 안무, 비슷한 컨셉의 아이돌 그룹들이 우후죽순처럼 지금도 데뷔해 대고 있으니,
정말 지금이야말로 아이돌 위주 케이팝의 끝물이 아니냐는 위기의식이 불거지다 못해 터져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말이죠. (이마저도 2~3년전부터 흘러나오던 얘기였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으나,
모두가 지금으로선, 그리고 자기들로선 별다른 대안이 없다며 무한 반복, 도돌이표를 찍을 수 밖에 없는,
매우 재미 없어진,
위기에 빠진 케이팝 아이돌 씬에,
데뷔 7년차,
이제 우스개 소리처럼 아이돌 계의 원로(?) 대접을 받으며
적당히 편안하게 그 동안 쌓아놓은 인지도라는 원금에서 이자나 연금만 받아챙겨도 충분할 것 같은 카라는
떡 하니 이렇게 또 다시 눈이 번쩍 띄는 새로운 장르, 감칠맛 나는 음악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카라가 특별한 게 아니라,
내가 카라를 특별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고,
카라의 특별함은 내 주관적인 느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내 눈은 어쩔 수 없이 카라 쪽으로 굽는 팔이 아닌가 의심할 때가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카라가 음악적이든, 그애들이 걸어온 삶의 역정 면에서든 여러가지 측면에서 매우 특별한 걸그룹이라는 건
그냥 "카라의 팬인 나만의 생각이 아닌가" 싶다는 거죠, 가끔은.
그런데 이제사 확신이 생깁니다.
이제 안심하고 믿으셔도 됩니다. 카라는 진짭니다.
우연찮게도 제가 좋아하게 된 걸그룹이,
대한민국 아이돌 계에서 가장 독특한 음악을 하는, 그리고 모든 면에서 다른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개성을 가진 멋진 그룹이었던 겁니다.
아무 걸그룹이나 하나 딱 찍어서 봐도 섹시 코드, 귀염 코드, 선머슴애 배드걸/힙합걸 코드 요 세가지로 다 설명되는 진부함 속에서,
남장을 하고 블루스/쏘울/컨츄리/훵크가 혼합된 정체불명의 장르를 노래하는 다섯 요정이라...
참 재밌단 생각이 듭니다. ^^
단언컨대, 카라는 진짭니다.
그리고 재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