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제목은 폴 발레리의 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에서 따왔다.
아득한 기억 저편을 자극하는, 애잔함과 경쾌함을 실은 선율이 도입부 스크린 위로 흐르면,
이 시의 문구가 그대로 중앙에 박힌다.
영화는 1920∼30년대 비행기 설계사를 꿈꿨던 실존인물 호리코시 지로의 삶을 다뤘다.
토마스 만과 헤르만 헤세, 슈베르트를 좋아한 순수 청년이자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어한,
희망을 굳게 믿은 남자가 지로다.
하지만 그는 일본 침략전쟁이 극으로 치닫던 불우한 시대 한복판에서 별다른 의지는 발휘하지 못한,
나약했던 인간이기도 하다. 그의 옆엔 운명처럼 만난 여인 나호코가 있었다.
영화는 지로의 꿈과 사랑, 두 축을 따라간다.
이전까지 자연과 환경, 동심의 세계를 주제로 삼았던 감독의 전작과 비교하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대 예민한 소재가 분명하다.
지로가 완성시킨 꿈의 비행기 '제로센'은 가미카제 특공대의 무기로 사용되고,
원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전쟁의 부역 인물이 됐다는 점에서 사실 논란은 피해갈 수 없다.
영화는 광기어린 그 시대까지 미화하진 않는다.
감독은 제국주의 일본의 필연적인 파멸과 저주받은 비행기에 대한 안타까움을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표현해낸다.
하지만 붉은 빛 일장기를 단 비행기의 출전 장면,
이웃나라를 짓밟는 전쟁무기 개발자의 아름다운 이야기에 아시아 관객들이 감수해야 할 불편은 있다.
그는
"히노마루(빨간 원·일장기)를 이렇게 많이 그려본 게 처음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히노마루는 서서히 다 떨어져 나간다.관객들이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