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오쿠보에 위치한 한 한ㆍ일문화센터. 지난해만 해도 한국어 강좌에 중장년층 수강생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최근 한ㆍ일 간 외교 대립이 격화되면서 수강생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있다. 이제는 강좌를 그만둬야 할지 고민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한동안 일본을 휩쓸던 한류 붐에 불길한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쿄 코리아타운인 신오쿠보 거리는 여전히 인파로 북적이지만 실제 한류의 현장에서는 "이러다가 한류 붐이 조기에 식어버리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도 5일 'K팝 싫증났나?'라는 기사를 통해 "K팝 붐에 그늘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실제 올해 새로 데뷔한 K팝 아이돌그룹은 9월 초까지 8개 그룹으로 지난해 전체 15개에 비해 위축된 분위기다. 이들 그룹 데뷔 작품의 첫주 음반 판매량은 평균 1만8000개로 지난해 3만7000개에 비해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K팝 공연도 6월 고베 공연 외에 올해 들어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예정됐던 2개의 공연 등 다수가 티켓판매 저조 등으로 준비단계에서 좌초됐다.
아사히신문이 지난달 중순 자사 온라인회원 316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K팝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대답이 18%로, '높아졌다'(9%)의 2배에 달했다. 관심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71%가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특히 K팝이 싫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비슷한 가수가 많아 다 똑같아 보인다'(39%)가 가장 많았고, '한국에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32%)가 뒤를 이었다.
신문은 "요즘 한ㆍ일 관계 때문에 관심이 식었다"는 50대 주부의 답변을 인용해 최근 양국 간 극한 대립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음을 시사했다. 한국어 공부에 대한 열기도 식었다. 신오쿠보의 한 대형 한국어학원 원장은 "작년의 경우 한 달에 100명 정도 신입생이 왔지만 올해는 50명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 음식에 대한 선호도도 빠르게 퇴색되고 있다. aT센터 도쿄지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국 농수산식품류의 대일 수출은 물량 기준으로 45만9565t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 감소했다.
지난해 상반기는 한국 식품류는 원전 방사능 누출사고로 인해 일본산 식품류에 대한 기피 현상이 확산되면서 반사이익을 톡톡히 봤다. 특히 한류스타를 CF모델로 기용하는 등 한류 붐과 맥을 같이하는 가공식품류는 23.9% 감소세를 보였다. 한국산 막걸리와 라면 수출은 각각 22%와 28%씩 감소했다.
한국산 가공식품이 부진한 데는 일본 기업의 역공도 한 원인이 되고 있다. 구관모 CJ재팬 대표는 "한국산 식품이 인기를 끌면 곧바로 일본 식품회사가 만든 유사 한국식품이 뒤쫓아와 유통망을 장악해 버린다"고 설명했다.
실제 연 700억엔(약 1조원) 규모인 김치시장은 83%가 일본산에 장악됐다. 간장으로 유명한 일본 식품업체 기코망은 한국풍의 양념장, 반찬 등을 내놓고 한국 업체의 설 땅을 빼앗았다.
최근 이 같은 분위기가 한류 붐의 본격적인 퇴조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김영덕 한국콘텐츠진흥원 도쿄사무소장은 "K팝을 중심으로 한 한류 붐은 지나친 과열 양상을 보였다"며 "최근 현상은 정상으로 돌아와 정착기로 진입하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도쿄 = 임상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