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국 대중문화의 뿌리를 알고 싶으신가? 놀라운 보편성과 특수성으로 세계인의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K-pop(케이팝)의 역사와 근원이 궁금하신가? 이 책을 보시라! 근대 시기에 활동한 변사의 말투를 빌려 이렇게 덧붙인다.
“날이면 날마다 나오는 책이 아니올시다!” 이동순 옛가요사랑모임 유정천리 회장 겸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가 쓴 ‘한국 근대가수 열전’이 나왔다. 1950년 경북 김천 태생인 이동순 저자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가요연구가·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영남대 명예교수다.
‘항구의 일야’라는 악극을 알리는 포스터에 등장한 가수이자 배우 전옥. 소명출판 제공먼저, 이동순 저자에 관해 언급할 건 언급해두고 가자.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1989년 같은 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에 당선됐다. 1987년 ‘백석시전집’을 펴냈는데, 남북 분단 뒤 백석 시인의 시를 발굴·정리한 최초의 책이다. ‘개밥풀’을 비롯해 시집 21권을 냈다. 민족서사시 ‘홍범도’를 썼다. 평론집으로는 ‘민족시의 정신사’ 등이 있다. 요즘에는 가요연구가로서 옛 가요를 주제로 방송하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노래하고, ‘번지 없는 주막-한국가요사의 잃어버린 번지를 찾아서’ 등의 책을 펴내는 활동이 더욱 활발해 보인다.예술가이자 평론가로서 그는 풍류의 중요함을 깊이 알면서도 동시에 엄정한 면모를 일관되게 보여왔다. 예술가와 예술이 처한 독특하고 예민하며 때로 연약한 위상을 이해하면서도, 일제강점기 친일 행각을 보인 이들이나 태도·지향이 흐트러진 사례에 관해서는 엄정하게 비판하는 태도를 잃지 않는 모습을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다.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한 1930년대의 인기 가수 박향림(1921~1946)이 불러 널리 사랑받은 노래 ‘오빠는 풍각쟁이’의 가사를 살펴보자.“오빠는 풍각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 나 몰라이 난 몰라이 내 반찬 다 뺏어 먹는 건 난 몰라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구 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구 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오빠는 깍쟁이야 / 오빠는 트집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 난 싫여이 난 싫여이 내 편지 남몰래 보는 건 난 싫여이 명치좌 구경 갈 때 혼자만 가구 심부름시킬 때면 엄벙땡 하구 오빠는 핑계쟁이 오빠는 안달쟁이 오빠는 트집쟁이야 / 오빠는 주정뱅이야 뭐 오빠는 모주꾼이야 뭐 난 몰라이 난 몰라이 밤늦게 술 취해 오는 건 난 몰라 날마다 회사에선 지각만 하구 월급만 안 오른다구 짜증만 내구 오빠는 짜증쟁이 오빠는 모주쟁이 오빠는 대포쟁이야.”(전문)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는 떡볶이와 불고기를 먹었다. 오이지와 콩나물도 먹었다. 그때도 오빠는 깍쟁이였다. 심부름을 시키면 ‘엄벙땡’했다. 그 시절에도 회사원은 ‘월급만’ 안 오른다고 짜증냈다. 거짓말을 뜻하는 ‘대포’라는 말을 그때부터 이미 썼다. ‘오빠는 풍각쟁이’ 가사를 보면서 오늘의 우리는 거의 100년 전 세상을 그려볼 수 있다. 이것이 대중문화의 힘이고 그것을 연구할 이유일 것이다.이런 사례도 있다. 저자는 ‘민족의 슬픔을 걸러준 곡비(哭婢), 전옥’과 ‘영화와 가요를 넘나든 가수, 강홍식’을 따로 소개한다. 부부였던 두 가수는 강효실(남한의 배우) 강효선(북한의 배우)을 낳았다. 강효실은 배우 최무룡과 결혼했다. 이 부부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배우 최민수다. 최민수-강주은 부부의 아들 최유성도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이 또한 한국 대중문화사의 한 삽화다.‘한국 근대가수 열전’은 복혜숙 왕수복 고복수 김용환 남인수 이난영 황금심을 비롯해 ‘식민지시대 가수 53인’의 삶과 예술을 생생하게 담았다.이동순 저자는 “식민지 시대 옛 가수 53명의 존재와 궤적을 낱낱이 밝히는 최초의 성과로 기록될 것이라 자평한다”고 머리말에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