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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4-05 19:23
[잡담] 일본인 댓글 엔카와 한국의 트로트
 글쓴이 : applemon
조회 : 3,456  



트롯을 왜색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사람은 많으나 
오히려 일본인은 '엔카를 일본 고유의 음악'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적었다는 글이 보였음.
그래서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인들의 생각이 궁금. 궁금즘을 못견디고 잠깐 찾아봤네요.ㅋㅋ

트로트가 한국음악이라고 말하자는 것이 절대로 아님을 먼저 말해둡니다. 

서양음악은 기본이고 + (폭스트로트) + 일본의 ㅇㅇ + 한국의 민요 + ... 등등 다양한 음악이 짬뽕된 거라고 봅니다. 

또한 고가 마사오가 재일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건 오히려 일부 일본인들의 생각입니다.
나는 일본인들이 엔카와 한국의 트로트에 대해서 대충 어떤 생각을 하는지 분위기만 살짝 알고 싶은 것 뿐입니다.

내 생각에는 일본인들이 대단한 자심감이 보일거라고 예상했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일본인들이 엔카에 대한 자신감이 생각보다 적은편인 것이 이 글의 중심내용입니다.
재일가수중에 유명한 사람들이 많아서인 것도 같네요.ㅋㅋㅋ

그러나 일본 엔카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가마사오 가 "엔카(트로트)는 어린시절에 살았던 한국에서 민요의 영향을 받았고 그 가락에 젖어서 만들어진 음악입니다." 라고 스스로 말한만큼.
어느정도는 한국음악의 영향을 받은것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일본인댓글)  일보인들 글은 참고만 하고 확실하다는 생각은 안합니다. 
생각보다 안좋은 글도 없고 음악을 많이 아는 사람들이 모였음. 
대부분은 고가마사오를 찬양하는 글을 쓰더군요.


텔레비젼 토쿄에서 코가 멜로디의 특집

코가 마사오 음악 박물관
http://www.koga.or.jp/

제자과 심부름꾼, 입양 등 측근은 많았 겠지만, 친자식이 없었던 것은 크다. 
애절한 더 고가 멜로디의 원점은 그런 곳에있는 것일까.

確かに日本の魂(こころ)演歌を量産してくれたたのは感謝するけど 
列記とした在日コリアンと知った時は正直凹みました(>_<)
확실히 일본의 영혼 (마음) 엔카를 양산 해 준 것은 감사하지만 
재일 코리안인 것을 알았을 때는 솔직히 함몰해버렸습니다 (> _ <)

在日であろうとなかろうと、いいものはいいと思うよ。 
日本を貶してたわけではないんだからさ。 
日本にいながら日本が嫌いな人達は私だって厭だけどね。
재일이든 아니든 좋은 것은 좋다고 생각해. 
일본을 비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少女…じゃなかった少年時代を朝鮮半島で過ごしてたのは有名な話だが在日なんてのは初めて聞いたな
소녀 아니 어린시절을 한반도에서 보낸었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재일 따위는 처음 들었구나 
 
どっちにしても朝鮮の心の音楽を日本に広めた功績は大きい
어느쪽으로해도 조선의 마음의 음악을 일본에 전파 한 공적은 크다

朝鮮の音楽が日本の音楽がってことでなく、日本で古賀メロディーとして形になったのが大きいんだよ。
조선의 음악이 일본의 음악이 된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고가멜로디의 형태가 된것이 큰거다 

宮城道雄も朝鮮半島で育ったが朝鮮にそのままいたらあれだけ偉大な音楽家になっただろうか? 古賀も同じだと思う。
미야기 미치오도 한반도에서 자랐는데 조선에 그대로 있었으면 그토록 위대한 음악가가 되었을까. 코가도 마찬가지이다.

 ㄴ 朝鮮民謡に影響を受けてなければ古賀メロディーは存在しない
조선 민요에 영향없이 고가 멜로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 나왔구나!! 코가 마사오는 재일이었다.

古賀メロディーの初期は、古関裕而や服部良一に引けをとらないぐらい洋楽指向のものが大半だから、
코가 멜로디의 초기는 古関 裕而와 핫토리 료이치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서양 중심이 대부분인데 

演歌は韓国メロディから生じた」日本の協会理事長が証言
엔카의 멜로디는 한국의 멜로디이다 일본의 엔카협회이사장의 증언
 
古賀は植民地に住んでた侵略者じゃんww
코는 식민지에 살고있었고 침략자잖아 ww

ㄴ日本は朝鮮を侵略した覚えもないしましてや植民地支配した覚えはない。 
あくまでも(旧)大日本帝国と大韓帝国が合併して出来たのが(新)大日本帝国なのだから。
일본은 조선을 침략 한 기억도없고 더구나 식민지 지배 한 기억은 없다. 
어디 까지나 (구) 대 일본 제국과 대한 제국이 합병하여 생긴 것이 (신) 대 일본 제국이기 때문이다.

でも作品はいいよね
하지만 작품은 좋지요

今の季節りんどう峠が無性に聴きたい
지금의 계절 용담 고개가 공연히 듣고 싶다

りんどう峠/昭和30年、西條八十作詞、古賀政男作曲 島倉千代子初の古賀メロディですね。
용담 고개 / 1955 년 사 이죠 여든 작사, 코가 마사오 작곡  島倉치요코 최초의 고가멜로디 네요.

"코가 멜로디 '라는 것은 단순히 좌 곡들의 이름 뒤에'멜로디 '라는 말을 붙인 것이 아니고, 오랜 일본 가요사에서 태어난 많은 대중에 의해 길러진 주어진'칭호 '라는 수있을 것입니다. 
일본인의 마음의 심금을 울린다 일종 애조를 띤 부드러운 멜로디, 희유에서 뛰어난 일련의 많은 고가 작품. 그에 대한 존경과 칭찬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됩니다.

일본 가요계에 큰 족적을 남긴 국민적 대 작곡가 고가 마사오 
"코가 멜로디"라고 그 작품은 쇼와 자리 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되었습니다. 

그 곡은 저변에 적막감과 애수를 풍기는시킨 것이 많고, 그것이 동시대의 일본인의 심금을 만지고 오랫동안 사랑 받고 일본 가요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그 수많은 히트 작품, 대부분은 "영화 주제가 '이기도합니다. "코가 멜로디"너무 많은 히트 곡을 가진 작품들은 없습니다. 
동시에 "코가 멜로디 '정도로 많은"영화 주제가'를 가지는 것도 없습니다.  

1931 년 '깜찍있는구나 "(동, 니시오 카水朗작사, 아마노喜久代노래) 시작"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추억에 싸인 여자 다카하시掬太郎작사), 
"언덕을 넘어 "(언니. 시마다芳文작사)"鳩笛을 부는 여자의 노래」(동 사토惣之助작사) (모두 후지 야마 이치로 노래, 1931) 등 무성 영화 시대부터 시작 전후 30 년대 무렵까지 거침없이 계속됩니다 
저변에 애조과 근심을 지닌 아무도 흉내낼 수없는 독특한 멜로디 소리 캠퍼스 가득

미소라 히바리의 '슬픈 술'은 어떻게 될지 ....
ㄴ 미소라 히바리는 일종의 괴물 가수이기 때문에 ...

코가 마사오와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의 만남은, 
그러나 실제 만남은 의외로 빨리 1947 년 봄 히바리 10 살 때 요코하마 사쿠라기 탄 건물에서 목 자랑 대회 ( 「시민에 의한 노래 자랑 대회 ')가 있고 거기에 코가 마사오가 심사위원으로 오고있었습

니다. 어머니는 코가 마사오의 대기실에 억지로 들어가서 딸의 노래를 꼭 들어주십사  당부했다. 

5000 곡이라고 불리는 코가 마사오의 작품에는 오키나와 민요 '후타미情話"1932 등의 새로운 민요와'아이즈 반다이 산」 「요사호이 절 '등 국내 민요 곡과'아리랑 노래」 「남쪽의 신부 '등 외국 민

요 노래 등의 편곡,'황성의 달」 「宵待草'등 국내 곡의 편곡 등 상당히 많이 있네요. 
 
그러고 보니蔡奎넵라고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나 「그림자를 그리워 있지"의 한국어판을 노래 했어요


蔡奎넵는 조선의 테너 인기 가수 네요. 
콜롬비아 전속 시대 내지위한 일본어 레코드를 불어 넣을 때 사용하는 예명으로 당시 콜롬비아 경성 지점이 있었다 경성 부 하세가와 도시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코가 멜로디"의 원천, 그것은 '외로움'이었다라고하네요.

作曲家になる以前、貧乏に貧乏を重ね、その後成功に次ぐ成功を重ねた古賀政男。でも心の底には消すことのできない、何かしこりのようなものがあった。 
それが何であるか自分でもわからない。 そんな時、体も弱って73歳になった古賀政男は、亡くなる2ヶ月前、昭和53年5月、うつみ美土里さんに伴われ、体をおして韓国に渡ることにしたのだった。 
(TBS TV[古賀政男、第二の故郷に帰る]で放映。;NHKTV[西田ひかるの痛快人間伝・古賀政男]) 
そして空港で両手で支えられタラップを降りた古賀政男を迎えたのは、朝鮮の民族衣装に身を包んだ女性たちが演奏する朝鮮の民族楽器カヤキンの奏でる、子供のころに聞いた懐かしい朝鮮メロデー・アリラ

ンであった。 
そして、うつみ宮土理さんの言葉を通してであるが、そこに自らの音楽の原点をみた。 家族の中で居場所の無い中で、やさしい三拍子のメロディとリズムは、古賀少年にやさしく響いた。 
朝鮮の民族楽器「カヤキン」の弦の震えは、古賀メロディのこぶし(小節)でもあり、古賀少年のこころの震えであり、それがおなじような同時代の多くの 大衆の人々の心にひびいたのです。 ・・利根川祐

「人物昭和史」ちくま文庫720(1989)

작곡가가 되기 이전, 가난에 가난을 거듭해 성공에 이어 성공을 거듭 한 코가 마사오. 하지만 마음에 지울 수 없는 뭔가 덩어리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그런 때, 몸도 약해 73살이 된 코가 마사오는 죽기 2 개월 전인 1978 년 5 월 내해 미도리씨와 동반해서 몸을 맡기고 한국으로 향했던 것이었다. 

(TBS TV [코가 마사오 제 2의 고향으로 돌아갈에서 방영; NHKTV [니시다 히카루의 통쾌한 인간 전 · 코가 마사오) 

공항에서 양손으로 지탱트랩을 내린 코가 마사오를 맞이한 것은, 조선의 민족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연주하는 조선 민족 악기 가야금의 연주였다.

코가 마사오가 어린 시절에 들었던 그리운 조선 멜로디 아리랑 이었다. 

그리고 내해宮土이치 씨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음악의 원점을 보았다. 가족의 거처가없는 가운데 부드러운 삼박자의 멜로디와 리듬은 소년이었던 고가 에게 부드럽게 울렸다. 

조선의 민족 악기 '가야금'의 현의 떨림은 코가 멜로디의 주먹(소절)이다. 고가 소년의 마음의 떨림이며, 그것은 똑같은 같은 동시대의 많은 대중의 사람들의 마음에 울려퍼졌다고 했습니다. 

도네 유우 "인물 쇼와 사 '치 쿠마 문고 720 (1989)



NHKTV 1993年2月4日[西田ひかるの痛快人間伝・古賀政男]では、マンドリンを通して「古賀メロディ」の曲のひみつ、古賀メロディのルーツを探っていた。 

そのなかで、「第二の故郷韓国」を訪ねた時のビデオが最後に流れた。 

古賀政男が大正元年、7歳で韓国に渡るあたりから、韓国での暮らし、そして大正11年再び日本に帰り明治大学に入る。 

NHKTV 1993 년 2 월 4 일 [니시다 히카루의 통쾌한 인간 전 코가 마사오]에서는 만돌린을 통해 "코가 멜로디"노래의 비밀, 코가 멜로디의 뿌리를 찾고있었다. 

그 가운데 '제 2의 고향인 한국을 방문했을때의 영상이 마지막으로 흘렀다. 

코가 마사오는 1912 년 7 살에 한국에 건너가서 한국에서 생활, 그리고 1922 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메이지 대학에 들어간다. 


「古賀メロディ」の歴史は、日本に「歌謡曲」というものができ、それが大衆の中に根付いた歴史そのものでもあること。「影を慕いて」ができるまで日本の流行歌の中に、三拍子はなかった、でも唯一あるのが朝鮮の民謡。 

どうして朝鮮の音楽に似てるのかな?という問いかけに、最後のビデオを見ればそれがわかると。(TBS TV[古賀政男、第二の故郷に帰る])

"코가 멜로디"의 역사는 일본에 대중 속에 뿌리 내린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한 것. 
"그림자를 갈망있어" 나올 때까지 일본의 유행가속에 있는 삼박자는 그 안에  
유일하게 있던 것이 조선의 민요였다.

왜 조선의 음악과 비슷한 것일까? 라는 질문에는, 마지막 장면의 영상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음.  (TBS TV [코가 마사오 제 2의 고향으로 돌아가다])




古賀氏の音楽は基本的に「洋楽」だと思います。 
あくまで洋楽がベースにあって、そこに彼のオリジナル部分が加わってるのだと思います。 
古賀政男の音楽は、洋楽に、日本の伝統音楽を含めて、ジプシーの音楽など世界のさまざまな音楽を学んで取り入れたものだと思います。

코 씨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서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양 음악을 기반으로 있고, 거기에 자신의 원래 부분이 더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코가 마사오의 음악은 서양 음악에 한국의 전통음악을 포함하여 집시음악 등 세계의 다양한 음악을 배우고 도입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외 정보
미소라 히바리
그녀의 본명은 가토 히바리(加藤和枝)였다. 소화(昭和)시대의 화(和)와 어머니의 이름(喜美枝)에서 지(枝)를 따서 히바리(和枝)라 했다고 한다.
아버지 가토가 한국계라는 것이다. 우에다(植田剛彦)라는 일본인이 쓴 『재일 한국인의 저력』이란 책이 있다. 이 책에 미소라 히바리는 한국계라고 하고 있다. 미소라 히바리가 죽은 뒤 나온 책이다.
...
고가 마사오는 1936년에는 선린상업학교 응원가를 작곡해서 발표차 모교에 온 적이 있었다. 
어린 미소라 히바리는 고가 앞에서 ‘아리랑’을 불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그밖에도 사후에 나온 기념음반 「히바리 세카이 우다우」세번째에 한국민요 도라지를 수록했다. 
가사는 일본말이고 후렴부분에 ‘에헤이요 에헤요’는 한국어로 또렷하게 불렀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에서도 엔카를 둘러싼 논쟁이 전개된다는 점이다. 
엔카를 토착적 문화라고 말해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일본에서 “엔카의 원류(源流)가 한국”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많은 엔카 가수가 한국계(재일한국인)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엔카의 거장 작곡가인 고가 마사오(古賀政男)도 한국계일지 모른다는 설이 나돌았다. 
혈통과는 무관하게 젊은 시절 한국에 오랜 기간 체류했다는 사실로 인해 ‘한국 문화의 영향’을 논하는 논란도 많다.


엔카협회장 얼굴.png


일본엔카회장 타카키 고가마사오 부모님 1.png


고가마사오
"고가 마사오는 2차대전 후 일본에서 활동했고 히트곡이 제일 많아 엔카를 정립한 엔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다"라며 
"그런 그가 음악 관련 심포지엄에서 "나는 한국에서 자랐고, 나의 곡은 한국의 판소리와 민요에 젖어서 나왔다"고 설명하더라".. 
고가 마사오는 일본에서 성공한 후에는 한국의 모교를 찾아다니면서 기부활동을 했으며 한국의 학창시절을 그리워 했다.
만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모교 선린상고에 기증한 시계탑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고가 마사오 한국 어린시절.png


고가 마사오
어린 시절 조선의 민요을 날마다 들었다. 내가 어린시절 조선에서 지내지 안핬다면 이러한 곡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고가마사오 한국 어린시절2.png




https://www.youtube.com/watch?v=TGc_4p4xRwU
고바야시 아세이  유명작곡가 (1932년생 원로 작곡가)

한국의 음악적 재능과 일본, 그리고 엔카
 
2016.07.19
일본의 작사 작곡가 협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수많은 가요 cm송 동요 애니메이션 특촬물 드라마 주제곡을 써온 원로 작곡가 고바야시 아세이씨가 잡지 인터뷰를 통해 한국인과 일본인의 음악적 재능은
비할바가 안도니다. 
일본의 엔카는 한국의 멜로디다, 라고 밝혀 일본 우익 네티즌들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격주 연재 나카야마 히데유키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 제 64회 게스트는 작곡가 고바야시 아세이씨

데라우치 간타로 일가로 쇼와의 꼰대 아버지 이미지가 강하지만, 나카야마의 질문에 또박또박 정중하게 대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카야마: 아세이씨가 작곡을 시작했을 무렵엔 여러가지가 새롭게 시작되는 시대였지요? 해외 음악도 들어온다거나..

고바야시: 일본인은 세계에서 유행하는 음악에 관심이 있었죠,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도  그렇고 세계의 유행이 일본의 유행이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은요. 외국에서 어떤 음악이 유행하고 있는지 아무도 관심없어요. 이것이 이상한 거죠. 국제화는 커녕 미국 차트가 지금 어떤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잖아요.

나카야아: 얼마 전 K-pop 열풍이 와서 아직까지 인기가 있는 느낌이 있지만 그건 어떻게 보시나요.

고바야시: 한국의 음악적인 재능을 본다면 일본인과 비교할게 아닙니다. 한국쪽이 재능이 있어요. 
고가 마사오씨도 어린 시절 조선에서 사셨고 그곳의 음악을 배웠으니까요. 일본 엔타의 멜로디는 한국의 멜로디 입니다. ( 엔카의 아버지 20세 전후까지 한국에서 중고등학교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감. 
엔카는 한국민요의 가락에 젖어서 나왔다 라고 스스로 얘기함.)

나카야마: 그래서 한국곡이 일본인에게 익숙한 것은 당연한거네요.

고바야시: 불행히도 일본인은 음악적 재능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죠. 아시아는 원래 유럽인에 비해서 양악(서양음악)적인 것은 약해요.

나카야마: 일본이 섬나라 라는 것도 관계가 있나요?

고바야시: 서양은 돌 문화죠. 벽돌을 쌓아 만든 높은 석조건축물에서 노래를 부르면 반향해 온 배음이 사장에서 울려오고 거기서 하모니가 태어나는 거죠.
일본은 나무 문화니까, 그런것은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륙과 연결 되어있는 한국은 돌도 있고 나무도 있으니까요.

나카야마: 아주 옛 조상들이 살아온 환경의 차이가 다르군요.

고뱌야시: 그런 것입니다. 일본은 메이지 이후에 서양 음악을 듣고 깜짝 놀랐지요.

나카야마: 그렇군요. 여러가지 환경적이니 영향을 받으면서 음악이 생성되는 거군요.

나카야마: 요즘엔 모두가 다 같이 알고 있는 테마송 이라는 것도 줄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바야시 : 각각의 개성이 존중되고 있으니까요. 모두가 한곳만 쫒고 있는 것이 부끄러운 느낌인 걸까요.
나는 다르다고 하는 것. 복장도 이제는 전혀 다르죠. 우리 예전에는 하나만 있으면 모두 그것을 따라갔죠.
그래서 음악도 같은 것이지요. 이제는 개성이 중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네티즌 댓글 (엔카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박이나 의견을 내지 않고 있네요.)


살아 있을줄은 생각지 못했는데 아직 건강해 보이네요.

일본음악은 90년대부터 변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은 내가 아마추어이기 때문일까.

한국이 위가 아니라 일본이 쓰레기야. 일본은 실사로 실제로 하는 엔터테인먼트가 약하고 대신에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같은 종류는 퀄리티가 높잖아
그건 이유가 있다. 일본인은 표정을 풍부하게 하면서 동시에 일본어를 같이 표현하는데에 어쩐지 위화감이 있다.  
그렇게 일본인은 실사에 약하다. 애니메이션과 만화는 실제 사람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고 있어서 오히려 편안하게 받아들여지지만.

구체적으로 한국의 무엇이 굉장한데? 아무래도 이사람도 전후의 세뇌에서 깨어니자 못한 거 같네.

한국인은 퍼모먼스잖아. 음악적 재능이 높은게 아니야.

생각하는 건 마음대로 한사람의 의견에 불과하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뿐이지 세계에서 인정하는 유명한 분야는.

확실히 일본 음악업계는 썩어있어. 더 이상 재능이 나올 여지가 없다.

K-pop 이 레벨은 높지만 독자성이 너무 없으니까 진짜를 추구한다면 역시 영미쪽 음악에 눈이 간다.

한국은 레벨은 있지만 곡의 폭이 너무 좁다  다양성은 일본이 위

아아! 폰챠쿠(뽕짝) 이라는 건가.

이 녀석까지도 저런 주장이네.

고바야시 아세이는 고전적인 작곡가로 싱어송 라이터이자 배우도 했었지. 

지금 한국곡은 북구에서 사오기도 하고 한류곡중에 일본인 작곡이 많았던 거 아닌가?
...


트로트에 대한 또 다른 글이 보여서 참고용으로 덧붙임. 

트로트라는 용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정설은, 이 논란 많은 용어가 2박자의 볼룸댄스 리듬의 하나인 폭스트로트(foxtrot)로부터 파생됐다는 것이다. ‘폭스’라는 수식어는 이 리듬을 고안해낸 무용가인 헨리 폭스(Henry Fox)에서 유래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정설이다. 

미국에서 발원한 이 리듬이 일본에 상륙하면서 일본인 특유의 발음과 결합해 ‘도롯도’가 됐다가 한국에서 트로트로 수정됐다는 설명에 대체로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트로트는 왈츠, 블루스, 탱고, 맘보, 룸바, 부기우기 등과 더불어 ‘리듬’의 하나로 간주돼 악보 앞에 씌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시에 발표된 ‘늴리리 맘보’ ‘노래가락 차차차’ ‘

커피 룸바’ ‘비의 탱고’ ‘기타 부기’ 같은 곡들은 트로트 리듬을 기초로 하고 있지 않다. 

트로트는 적어도 1950년대까지 하나의 형식이나 장르로 보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어쨌거나 트로트는 1960년대 이후 하나의 장르로 굳어졌다. 

이 장르가 뽕짝이라는 별칭을 얻은 것도 이 무렵이다. 1960년대 중반 신문이나 잡지에서는 트로트와 뽕짝이라는 말이 혼용되고 있고, 이 가운데 뽕짝은 비칭(卑稱)의 성격이 강해서 점차 트로트라는 말로 대체됐음을 알 수 있다. 

엥카, 트롯 뿐만 아니라 아시아圈 대중음악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중국, 타이완, 홍콩 등이 음악적으로 5음 음계권이라는 같은 처지에서 서양음악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엥카와 트롯이 서로 엇비슷하게 발전한 원인중에 대중음악의 생성초기에 동일인물로 부터 서양음악을 배웠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1852-1916)는 1879년부터 약 20년간 일본 해군군악대 교사로 일본양악 전수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후 1901년부터 1916년까지는 우리나라로 건너와 李王職군악대장으로 우리에게 양악을 가르쳤다.

韓日양국에서 군악대 출신들이 당시 대중음악의 주역들 이었고 같은 선생으로 부터 배운 초창기의 엥카와 트롯이 서로 닮았다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는 것이 閔위원의 입장이다.

또 식민지 시대라는 특수상황에서 음악산업을 주도한 엥카가 한반도에 들어와 다시 유행했다는 것이다. 일본대중가요 1호인 '카츄사의 노래', 고가 마사오(古賀 政男)의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 등이 번안되어 히트를 쳤다.

閔위원은 끝으로 음계이론을 잘못 적용하여 트롯을 왜색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사람은 많으나 트롯이나 '엔카를 일본 고유의 음악이다' 라고 주장하는 일본인은 생각보다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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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노래 17-04-05 19:27
   
그나저나 트로트 시초가 어딘가요?
     
applemon 17-04-05 19:30
   
글쎄요. 워낙 역사가 짧은 음악이라서요. 일단 서양음악에서 시작한것은 확실하다고 일본인들도 말하고요. 일부는 서양군악대 음악에서 또는 초기 서양의 찬송가 에서 시작됐다고들도 하더군요.  다른 이는 서양의 댄스 음악 박자에서 시작된 음악이라고도 하고요.  폭스트로트 같은 음악에다 일본고유음악 + 한국민요 + 그외에 다양한 음악이 짬뽕인거 같네요. 도저히 일본 고유 음악이라고 볼수없는 것은..  일본인도 서양음악이 기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바람의노래 17-04-05 19:34
   
그렇군요 확실하게 시초는 모르는군요 흠 정보 감사합니다 ㅎㅎ
               
applemon 17-04-05 20:44
   
위에 제가 답변을 잘못한거 같네요. 질문하신 트로트를 일본 '엔카'로 생각하고 역사가 짧은 음악장르라고 대답했네요. 죄송합니다 ㅎㅎ. 오래전부터 트로트와 비슷한 음악들이 동유럽등 여러 나라에 있다고 들었고요. // 엔카는 첨에 '염가' '정가' 이렇게 부르면서 예전에는 음악 장르에 끼지 못했다가 겨우 몇십년전에 연가(한자로 엔카)라고 하면서 하나의 장르로 정립됐다고 하더라고요. 그 글을 보고 엔카의 역사가 짧구나 하고 생각했기때문에요.ㅋㅋ 그리고 대략 정설은 엔카가 댄스음악인 폭스트로트에서 파생했다는 말이 맞을 거 같아요. 그외에 일부의 일본인은 일본전통음악을 이엇다고 주장하던데.  댓글보니까 음악 좀 아는 일본인들도 서양댄스음악등의 기초위에 만든 음악라고 보더라고요.
                    
바람의노래 17-04-05 22:17
   
그렇군요 수정된 정보 감사합니다 ㅎㅎ
     
비좀와라 17-04-05 20:35
   
트로트가 역사가 짧은 음악이 아니라 지금 말하고 있는 엔카의 역사가를 짧은 것 입니다.

트로트의 원형은 4분의 3박자의 형태를 띠는 기마민족의 기본 박자를 말하는 것 이에요.

길게 쓰긴 그렇고... 일본과 기마문화는 아무 상관이 없기에 자신들의 것으로 주장하고 싶어도 주장 할 수가 없어서 역사가 짧다 뭐다 그러는 것 뿐입니다. 트로트 박자와 일본문화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

하지만 한국은 기마문화와 농경문화가 융합된 형태 이기에 트로트 박자가 존재 합니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최고의 교향곡이라 하는데 이 이유는 4분의 3박자의 못갖춘 마디의 형태를 띄기 때문이죠. 이 형태의 음악을 유럽인의 감성에 딱 맞다고 봐서 그런 말을 하는 것 입니다.

기본적으로 유럽의 언어는 약강강의 엑센트를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면 영어의 아메리카를 한국어로 발음하면 아메리카로 발음하지만 영어로 발음하면 (아)메리카로 발음됩니다. 거의 모든 유럽언어가 그런 형태를 띈다고 보면 됩니다.

이것이 4분의 3박자 형태를 띈 언어의 특색이고 현 한국어는 8분의 6박자 형태로 강약약의 형태를 띄는데 특히 서울 표준말은 앞의 발음이 거의 파열음의 형식으로 발음 하기에 유럽의 언어와는 정반대의 형태를 띄고 있죠. 그리고 원래 한국어가 그랬던 것은 아니고 변한거에요.

이런 약강강의 음악을 한국인들이 강약약의 형태로 바뀐 것이 지금 우리가 말하는 트로트 또는 엔카 입니다. 원래의 형태를 변형 한거죠. 당연히 일본은 저런 형식으로 변화를 하지 못해요. 저들은 4분의 3박자의 기마문화가 없고 오직 8분의 6박자 형태의 농경문화 만이 존재 그런 것 입니다.
          
applemon 17-04-05 20:38
   
오! 옳은 말씀이네요. 위에 댓글에는 트로트를 엔카로 생각하고 역사가 짧다고 대답했나보네요.  트로트와 비슷한 노래가 전세계에 있고 동유럽까지도 비슷한 음악들이 존재 한다고 하더군요. 전문가들 말에는 동유럽 여행가서 농촌에서 흥얼거리는 노래를 들으면 트로트와 많이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곳의 농민과 서민이 부르는 애환과 서정이 서려있는 느낌의 노래들은 한국 트로트와 느낌이 비슷하다네요.  트로트는 역사가 길죠.  저는 엔카로 생각하고 역사가 짧다고 대답했네요.
Erza 17-04-05 19:39
   
우리나라 음악 다양성 없다고 하는데
그 다양성을 찾으려고 연장들고 돌을 캐봤냐 아님 정글을 해집고 다녀봤나
주류가 주목받아 형성되었을 뿐이지
케이팝 테두리 안에 나름 공생하고 있단다
지미페이지 17-04-05 19:44
   
엔카가 일본 고유음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역사가 긴 음악도 아니라서 기원이 명백하고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엔카는 메이지시대때 들어온 서양음악에 일본 전통 리듬과 창법을 얹은겁니다.
여기에 무슨 한국이 기원이니 뭐니 할 구석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 전통 음악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우리는 전통적으로 엔카에서 쓰는 리듬을 사용하지 않았고, 판소리나 민요 어디에서도 그런 천박한 창법은 쓰지 않았습니다.

다만 60년대 일본에서 현대 엔카가 산업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미소리 히바리를 비롯해서 재일출신 인물들이 큰 공헌을 했다는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소리 히바리가 엔카에 한국 음악을 접목하거나 한 것도 아니니 무슨 한국이 영향을 줬느니 뭐니 할 이야기는 못됩니다.

트로트라는 이름부터가 잘못된 이름이죠.
60년대 우리나라 신문이나 잡지 기사를 찾아보면 기자나 자칭 가요평론가들이 평론이랍시고 쓰던 글들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음악적으로 보이려고 뽕짝을 트로트니 왈츠니 하는 식으로 서양 댄스 리듬으로 분류해서 불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하고 똑같이 연가(=엔카)나 가요라고 불렀는데 연가라는 말은 너무 왜색이 강하니까 점점 안쓰게 됐고, 신중현 등장 이후 가요의 장르적 폭이 넓어지면서 가요는 더 큰 개념이 되고 엔카는 뽕짝이라는 말로 대체됐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밖으로는 친일 안으로는 반일인 척 이중 정책을 취하면서 왜색 추방 운동을 많이 했죠.
그러다보니 뽕짝이 점점 뒷골목으로 감춰지고 뽕짝이라는 말 자체에 나쁜 뉘앙스를 갖게 되면서 트로트라는 말로 대체된 겁니다.
그리고 80년대에 디스코 뽕짝 메들리가 유행하면서 어린 사람들은 뽕짝이 이런 음악을 말하는 걸로 잘못알고 있는 경우도 있고요.
     
순대천하 17-04-05 20:13
   
엔카 아버지 라는 사람이 민요에서 왔다고 하는데 전혀 관련 없다고 말하는건 많이 억지같아요.

다만 뭐든지 일본으로 가면 매니악해지고 천박해 진다는 건 인정합니다. 실제로 엔카가 민요보다 박자가 빠르죠.
     
화난늑대 17-04-06 07:41
   
엔카 아버지가 한국 민요를 차용했다 하고 실제로 우리 민요 리듬과 같습니다
직장인 17-04-05 20:00
   
번역 수고하셨어요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고 신빙성도 있어 보입니다
     
applemon 17-04-05 20:09
   
말씀 감사합니다.^^  글중에 어떤 주장이 옳다는 것 보다는 일본인들의 엔카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네요.  / 그런데 일본에서 재미있는 조사를 했더군요. 교도소 중범죄자들 중에는 평생동안 노래를 거의 안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더군요. 노래 많이하며 즐겁게 사는것이 좋다는...ㅎㅎ
태강즉절 17-04-05 20:29
   
구한말 선교사들이 들고 들어온 폭스트롯에..한국 민요가 믹스..
그게 일제시대때 일본으로 건너가.. 변형...다시 한반도로 역반입..
예전 "엔카의 원류를 찾아서"라는 엔에이치케이..뭔 다큐에서 떠들던걸 일본에서 본적이...
언 분....뭔 뽕짝이..한국과 전혀 연관이 없다는 말쌈을 하시는지?.
모든건 자기네가 독창적 원조라 주장하는 그 일본이..남에 거 라 하더만..ㅎㅎ
위스퍼 17-04-05 22:48
   
우리 전통 민요를 폭스트롯에서 사용한 트럼펫, 색소폰등의 서양 악기로 연주한 것을
트로트, 뽕짝, 전통 가요라 부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네요.
     
화난늑대 17-04-06 07:43
   
222 아마추어가 들어도 알 수 있죠
우주소녀 17-04-06 00:32
   
민요도 엔카도 5음계...
     
화난늑대 17-04-06 07:43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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