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양날 칼인 검(劒)에서 외날 칼인 도(刀)로 칼의 주류가 바뀐다. 양날 칼인 검은 양쪽에 모두 날을 만들기 때문에 칼등에서 힘을 받쳐줄 수 없다. 반대로 도는 한쪽에 날을 만들고 반대쪽 칼등을 강하고 두텁게 해 칼날 몸체의 강도를 유지해주게 된다.
이 탓에 검은 외날 칼인 도에 비해 강도가 떨어지며 잘못 휘두를 경우 부러질 수 있다. 이런 강도상의 차이 때문에 검은 주로 찌르는 용도로만 사용된다. 반대로 도는 찌르는 용도뿐만 아니라 베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선시대의 칼 유물 중에는 수십여 자루의 검이 남아 있다. 삼국시대에 실전용으로 사용하지 않던 검이 조선시대에 이토록 많이 사용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시대에 사용된 검은 대부분 인검(寅劒) 종류인데 이 칼은 실전용 칼이 아니라 특별한 의식용 목적으로 만들어진 칼이었다. 인검은 특별한 시기에 왕실에서 제작, 주요 대신들에게 하사한 칼이다.
인검에는 사인검·삼인검·이인검 등 세 종류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인검에 대해 "인검은 재앙을 물리치는 도구" "좌도(左道)에 관계된 물건" "사귀(邪鬼)를 물리칠 수 있는 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인검은 실전용 칼은 아니지만 왕실에서 제작한 칼인만큼 장식이 장중하고 특별한 품격이 돋보이는 칼이다. 더구나 '귀신과 재앙을 물리칠 수 있는 칼'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광복 이후 골동품 시장에서 정·재계 요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