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류큐왕국은 삼별초 이후 조선과 긴밀한 관계 였음을 말해주고 있으며
그 중에 팔만대장경 의미는 여러가지를 말할 수 있지만 핵심은 자비로움 사상과 경전으로 국가를 다스리고 민족의식을 극대화 시키는 총아라 할수 있습니다.
국가 민족 기틀을 만들 수 있는 정신적인 사상으로 통합 할 수 있는 이 엄청나고 중요한것을 무엇 때문에 조선은 계속 해서 류큐왕국에 전했을까요?
조선이란 나라에서 단한번도 유출한적이 없는 팔만대장경(인쇄본)
또한 그 당시에 수박도의 가치는 팔만대장경에 비하면 100분의1의 가치도 안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이제 부터라도 과학적 연관성을 무시하고 중국 일본에서 주는 역사자료만 가지고 탁상의 역사가 정설인냥 역사 왜곡이 없기 바라며 다각적이고 요즘유행하는 3d적(입체적) 연구하고 소중한 한민족의 무예 수박도가 고대에서 현재까지 한민족과 함께 했습니다
끝으로
일본의 오키나와 분활무예 종주국은 중국 남권이나 자생의 무예가 아니며 한국
전통무예(수박도)가 오키나와 분활무예의 뿌리라는 정설을 하루빨리 정의해야 할 것 입니다
겨우 기와장 몇조각
웃음 나옵니다~~
우리나라 에 반국대암각화 하나에 세계 역사 학자들이 고대 역사를 연구 합니다
사료나 자료도 무시하면서 그리 말하십니까
제가 짧은 역사에 대한 설명
조선은 친밀하지도 않는 국가에 팔만대장경 복사본을 건내줄 나라가 존재 했었을까요?
류큐왕국은 남권의 영향 받았다고 하는데 무예 품세가 흡사해야 하지만 틀립니다
남권은 소림무에랑 흡사 합니다. 소림 무예는 저 영상에 송나라때 나온다고 명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영상은 가설이라고 처음에 명시 하고 있습니다.
반반자료가 아니라 역사의 연관성을 추적하는 그런 영상 같습니다.
역사의 연관성은 그 나라의 문화에대한 지대한 영향을 주기때문입니다.
일본 학자들중에 고려와장조라 수막세 기와장이 발견되고 류큐왕국이 그냥 나온것이 아니라는
삼별초이후 연관성에 깊이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 역사 학자들이 만든 영상도 꽤 많이 유튜브에 존재 합니다
네 반박자료라고 했던건 제 잘못이네요.
님 말도 일리가 있지만 교과서에 "류큐는 삼별초가 세웠다" 라고 확실히 기록할 수 있을 만한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말입니다.
실루엣은 있는데 확실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흐릿한 유물로만 존재하는 현재로선 "충격적인 태권도 역사" 라고 단정짓기엔 아직은 뭔가 부족하다라고 생각이 되네요.
저도 개인적으로 삼별초와 류큐사이엔 뭔가 있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은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