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장 반응으로 간단하게 살펴보는 화이트리스트 제외
아무래도 일본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지수이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주가지수는 닛케이 225 평균지수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주식시장을 더욱 잘 파악하려면 닛케이 지수보다는 동경 증권거래소 1부 상장기업 전체를 포괄하는 토픽스(TOPIX, TPX Index) 지수를 보시는 편이 더 좋다. 닛케이 지수보다 훨씬 더 많은 일본의 기업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금융투자업 현장에서도 닛케이보다는 토픽스를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일본 각의에서 대한민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결정된 오늘은 전일 새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중국 추가 관세 부과 위협 등 악재가 겹치고 겹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코스피지수는 -0.95% 하락하며 주가지수 2,000 을 내주었다. 하지만 일본 토픽스 지수는 오늘 -2.16% 하락하여 우리 코스피보다 훨씬 더 많이 하락했다. 한편 토픽스 내 세부 업종의 하락률은 아래와 같다.
소재 -3.80%
에너지 -3.35%
산업재 -2.65% (이 중 자본재 -3.28%)
경기소비재 -2.60%
금융 -2.41%
IT -1.77%
필수소비재 -1.51%
통신서비스 -1.42%
헬스케어 -1.02%
부동산 -0.73%
유틸리티 -0.56%
이 중 에너지 섹터는 일본의 FPSO(해양플랜트) 기업인 미쓰이 해양개발이 연간 결산 결과 적자를 기록하며 -14.5% 가까이 하락한 영향이 반영되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과도하게 하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제외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오늘 일본 주식시장에서는 수출주의 하락세가 지수 평균 및 내수주 대비 확연히 심한 모습을 나타냈다. 물론 이는 오늘 치솟은 엔화가치의 영향도 분명히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또 다른 모습도 관찰된다. 대한국 수출이 많은 업종의 하락세가 더 뚜렷하게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에 지속적으로 부담이 되고 있는 소재 업종의 경우 오늘 하루만 3.8% 하락하여 토픽스 업종 내 최고 하락률을 나타냈다. 한편 일본이 한국에 많이 수출하는 기계류가 포함된 자본재 업종 역시 3.3% 가량 하락하여 에너지 업종을 제외할 경우 전체 업종 중 2위의 하락률을 나타냈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 밸류체인의 후방산업인 특수가스/감광재 제조 업체들의 금일 주가 변동폭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고순도 불화수소
스텔라캐미파 -2.70% (반도체 특수소재 비중 88.0%)
# 포토레지스트
JSR -1.62% (반도체 특수소재 비중 20% 미만)
TOK(도쿄오카공업) -3.49% (반도체 특수소재 비중 97.5%)
스미토모화학 -5.38% (반도체 특수소재 비중 19.5%)
#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신에츠화학 -0.45% (반도체 특수소재 비중 14.2%)
이 중 JSR과 신에츠화학의 경우 반도체 특수소재 중에서도 공정 솔루션 소재의 이익비중이 10% 미만일 것으로 추정된다. (세부 제품 품목별 이익비중이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일본의 소재 기업 중 반도체 연관 기업들은 특수소재 비중이 클 수록 상대적으로 다소 큰 하락률을 보였는데 이는 역시 한국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즉 주식시장에서는 미중 무역분쟁의 격화 이외에도 한일 갈등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현재 유럽 주식시장 역시 -2% 가량 하락 중이다.
같은 관점에서 볼 때, 2019년 글로벌 메이저 인덱스 중 한국과 일본이 주가 수익률 측면에서 두 나라 모두 하위권에 처져 있다는 점은 다소 의미심장하다. 근본적으로 한국 증시의 부진은 굴뚝산업의 고정자산 장부가치에 글로벌 투자자들이 더 이상의 밸류에이션을 주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측면에서 일본 역시 같은 약점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일본이 유리한 점이라면 한국의 2배 이상의 내수시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인데 아베노믹스 이후 수출 비중이 크게 늘어난 터라 상쇄되는 면도 있다.
결론적으로 한일 양국은 각국의 핵심 산업 밸류의 보존을 위해서라도 경제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본은 정치적인 문제로 민간 교역을 건드리는 무리수를 저질렀다. 아직도 정부가 이를 ‘자초’ 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계신다. 그러나 대관절 그 어떤 나라가 사법부 판결에 대한 간섭을 감수하면서까지 고개를 숙여야 하는가? 게임은 이제 시작됐고, 오늘 나타난 바로는 절대 일본에게도 좋은 게임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