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의약품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이 줄고 있지만 국내서는 되레 임상시험이 활발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의약품 상용화 직전 단계인 임상 3상 승인도 늘면서 상업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3세대 항암제’로 ‘게임 체인저(판도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나 요소)’로 주목받는 면역항암제 임상 역시 30% 이상 급증했다.
◇ 2017년 전체 임상 승인 658건…2016년보다 5%가량 증가
22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공개한 ‘2017년 임상시험계획 승인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작년 전체 임상 승인건수는 658건으로 2016년보다 4.8% 증가했다. 임상은 크게 의약품 개발을 위해 제약사가 하는 ‘제약사 임상’과 학술 연구 목적으로 실시하는 ‘연구자 임상’으로 나뉜다. 지난해 제약사 임상은 476건으로 연구자 임상(182건)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반면 세계적으로 봤을 때 임상시험은 감소하는 추세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제공하는 국제 임상시험 등록사이트 ‘클리니컬 트라이얼스(Clinical Trials)’에 따르면, 세계 임상시험 현황은 2015년 1만847건에서 2016년 8090건, 2017년 7865건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국내 임상시험은 전 세계 임상시험 감소 추세 속에서도 임상시험 수행을 위한 제도와 시설·인력 등 인프라가 다른 국가에 비해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임상 3상 200건 재돌파…다국가 임상 3상 전체 임상 약 40% 차지
제약사 임상 3상 승인건수도 200건을 돌파하면서 상업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2016년 175건으로 줄었던 제약사 임상 3상 승인건수는 지난해 209건으로 늘었다. 이보다 앞선 2015년에 승인된 임상 3상 건수는 223건이었다.
특히 다국가 임상 3상 승인건수도 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의약품의 등장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2015년 170건이던 다국가 임상 3상 승인건수는 2016년 136건으로 줄었지만, 2017년에는 178건으로 다시 늘어났다.
의약품 개발 등을 목적으로 하는 제약사 임상은 국내에서만 실시하는 임상(국내 임상)과 국내·외에서 함께 실시하는 임상(다국가 임상)으로 구분된다. 다국가 임상은 한국을 포함해 2개국 이상에서 실시하는 임상을 말한다.
식약처 측은 “지난해 승인한 제약사 전체 임상 중에서 다국가 임상이 293건으로 183건에 그친 국내 임상보다 앞섰다”며 “특히 다국가 임상 3상은 전년 대비 약 31% 급증했고, 다국가 전체 임상 중에서 임상 3상이 차지하는 비중도 61%에 달했다”고 밝혔다.
◇ 표적항암제 임상 줄고 면역항암제 임상 급증
지난해에도 항암제 개발이 가장 활발히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승인된 전체 임상(제약사·연구자 임상) 658건 중 251건이 항암제였다. 이어 심혈관계 질환(61건), 중추신경계 질환(54건), 내분비계 질환(45건), 소화기계 질환(41건) 등의 순이었다. 항암제의 경우 2015년과 2016년 각각 254건, 202건이었다.
지난해의 경우 항암제를 작용 기전별로 살펴보면 표적항암제가 114건(45.4%)으로 가장 많았고, 면역항암제(89건, 35.5%)가 뒤를 이었다. 표적항암제는 특정 표적인자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항암제로, 임상 승인건수가 2015년 123건에서 2016년 86건으로 줄었다가 2017년 114건으로 늘었다.
식약처 관계자는 “특히 면역항암제 임상 승인건수는 2016년(68건)보다 30.9% 늘어났다”며 “기존 화학항암제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다양한 암에 사용할 수 있는 장점으로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항암제 중에서 면역항암제가 최근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세계 면역항암제 시장 규모는 2015년 16억달러에서 2020년 350억달러로 20배 넘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면역항암제는 인체 내의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해 암을 치료하는 약물이다. 면역항암제는 암세포가 면역세포를 공격하는 경로를 차단(면역관문억제제) 하거나 면역세포를 강하게 만들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돕는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면역항암제는 특정 암에 효과가 국한되지 않아 약 20~30%의 환자에게는 생명을 연장시켜 주지만, 70% 이상의 환자에게는 효과가 없다”며 “면역항암제가 주목받는 이유는 반응을 보이는 환자들의 장기 생존율이 높기 때문인데, 다른 항암제와의 병용 임상을 통해 적응증을 빠르게 확장하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돼 임상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치매 치료제 개발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치매 치료제 임상 승인 현황을 보면 2015년 15건에서 2016년 10건으로 줄었지만, 2017년에 11건으로 다시 늘었다. 국내 임상 1상만 보면 2015년 2건에서 2016년 3건, 2015년 5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식약처 측은 “2017년 치매 치료제 임상 승인건수는 2016년과 비슷했지만, 이 중 국내 제약사가 승인받은 5건은 초기(임상 1상) 으로 치매 치료제 개발을 위한 초기 개발‧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