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에서 상당히 많은, 거의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제조원가 절감을 기반으로 진행됨. 거의 대부분의 부서의 성과지표가 바로 원가절감임. 기술의 첨단을 달리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도 비슷함. 특히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내재적인 노력보다는 업황에 결정되는 반면, 원가는 내재적인 노력으로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원가절감에 더 집중하는 편임.
특히 구매 부서 같은 경우에는 호황기 때는 만들수록 이득이니까 원재료 가격은 덜 신경 쓰고 최대한 많이 구매하는 게 목표인 반면, 불황기가 오면 상황이 정 반대가 됨. 최대한 가격을 후려치며 사오는 게 목표임. 그래서 구매 부서는 내부적으로 공급사들의 영업이익률을 모니터링 하고 있는데, 어떤 업체가 너무 많은 이익률을 낸다 싶으면 그 업체부터 가격을 후려침. 공급사가 너무 많은 이익률을 낸다는 것 자체가 위에서는 구매 부서가 일을 제대로 못 한다고 인식함. 삼전이 그렇게 공급사들의 가격을 후려칠 뿐만 아니라 반대로 삼전도 빅테크들에게 똑 같은 방식으로 반도체 가격을 후려침 당함. 그래서 작년에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똥값이 된 것이니까. 그게 옳고 그르다는 게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것임.
이처럼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은 제조업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장 강력한 필살기임. 특히 소비자뿐만이 아니라 많은 기업들도 저렴한 가격을 위해서는 구매하는 제품의 품질과 성능을 일정 부분 포기할 수 있음. 중국을 내가 가장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게 바로 이 때문임. 중국은 첨단 반도체를 제외하면 그 모든 종류의 제품을 한국보다 더 싸게 만들 수 있는 국가이기 때문임. 첨단 반도체도 미국이 규제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되었을 것임.
그래서 작년에 2차전지 붐이 엄청 불었을 때 대머리 아저씨 신봉자들이 기도문처럼 외우던 말이 “한국산 2차전지 품질이 훨씬 더 우수해서 중국의 싸구려 저가품은 절대 한국산의 경쟁력을 못 따라온다” 이 말이었는데, 나는 그때 주의 깊게 봤던 게 저 신봉자들 중에서 제조업을 이해하거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느냐였음. 내가 보기에는 거의 없어 보이더라고. 왜냐하면 저들이 말하는 품질과 성능 경쟁력이란 게 과연 중국산의 저렴한 원가경쟁력에 얼마나 우위를 가질 수 있는지 매우 의문스러웠기 때문임. 앞서 말했듯 제조업에서 제일 중요한 건 가격이기 때문임.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한국산 2차전지의 품질과 성능이 중국산의 원가경쟁력에 비해 그리 유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음.
여담으로 재작년 즈음에 SK온에서 삼원계 배터리 수율을 하도 못 잡아서 하닉 수율팀 엔지니어들을 그룹사 내부 공채로 엄청 많이 스카우트해 간 것으로 알고 있거든. 이석희 CEO뿐만이 아니라 하닉 진교원 전 사장도 그렇게 SK온으로 옮겨갔고. 그렇게 SK온으로 간 하닉 엔지니어들 덕분에 SK온 배터리 수율이 상당히 많이 개선된 것으로 알고 있음. 이때 든 확신이 배터리라는 게 반도체보다 훨씬 더 만들기 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음. 반대로 배터리 수율팀 엔지니어들을 반도체 수율팀에 데려오면 반도체 수율을 쉽게 잡을 수 있을까? 하면 절대 불가능할 것 같거든. 솔직히 그럴 가능성이 상상이 잘 안됨.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가진 2차전지에서의 기술력 우위라는 게 반도체만큼 압도적이지도, 그렇게 유의미하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내 생각대로 흘러가는 것 같음.
그런 관점에서 나는 일본 제조업을 높게 평가하는 게 뭐냐면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에 파나소닉, 히타치 같은 완제품 메이커들이 다 털려나간 게 사실이지만, 그렇게 완제품 메이커들이 털려나가는 동안 중간재 소부장 업체들 중심으로 제조업 구조를 개편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임. 계속 말하지만 일본의 소부장 경쟁력은 압도적임.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오히려 일본이 중국 제조업의 침공으로부터 훨씬 더 안전한 상황임. 중국 애들도 일제 소부장을 안 쓸래야 안 쓸수가 없거든. 그래서 나는 소부장 중심의 일본 반도체 산업을 “주연은 될 수 없지만 어느 경우에도 중요한 조연은 될 수 있는 곳”이라고 평가함. 결국 칩메이커 중 누가 떠오른다 한들 일제 소부장은 안 쓸래야 안 쓸수가 없기 때문임. 그런 관점에서 일본은 중국 제조업 굴기에 대처하기 위한 산업 구조 개편을 한국과 달리 아주 성공적으로 완료한 국가라고 평가함.
나는 그래서 최근 들어 정치인이건 어디 시사 렉카들이건 개나 소나 반도체에 다 집중하는 상황이 문제가 아주 많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한국 경제의 진짜 문제는 반도체가 아니기 때문임. 나는 계속 말하지만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앞으로 폭발할 것이고, 또 미국이 지켜주기 때문에 메모리 반도체만큼 한국에서 전망이 밝은 산업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 파운드리 역시 지금은 어렵지만 대만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전략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분명히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음. 그래서 나는 지금 한국 사람들이 반도체에 갖는 걱정 중 상당 부분이 솔직히 다 쓸데 없다고 생각하거든.
그런 관점에서 작년 초에 칩스 법과 미중 패권전쟁으로 한국 좆됐다고 호들갑이었을 때 오히려 현재 상황이 한국에 축복이라고 말했던 반도체 전문가가 있었음. 그 분이 바로 삼성전자 반도체 사장이었던 임형규 사장님임. 그리고 나는 저 분의 말씀대로 지금 상황이 흘러가고 있고, 또 앞으로도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함. 저 분의 인터뷰 내용 중 중요한 내용들을 일부 옮겨 봄.
[인터뷰]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 "美中사이 韓반도체, 세계를 쥘 기회"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오늘의 외부 환경은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내부적인 요인이 문제지, 미중 패권 경쟁 덕분에 한국은 반도체 산업으로 세계를 쥘 기회를 가졌다고 봅니다. 국민 소득 10만불 가능성이 열린 겁니다."
미국의 중국 반도체 규제로 한국 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에 맞서 '이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를 지난 3월 31일 대치동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국 반도체 산업 역사를 기록한 저서 '히든 히어로스'의 저자이기도 한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 그는 오늘날의 삼성 반도체를 있게 한 부천 사업장 시절부터 약 30여년간을 업계에 몸담은 인사다. 메모리와 시스템 조직을 모두 이끈, 국내 반도체 산업의 궤를 함께해 온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가장 먼저 최근 미국 칩스 법 시행으로 인한 공급망 변화, 그로 인한 세간의 우려에 대한 견해가 궁금했다. 임 전 사장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최대 수혜자는 한국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선 메모리 측면에서는 한국이 세계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고, 이 중 40%가 중국에서 만들어진다. 셧다운 돼서 공급이 안 되면 파장이 크다"고 했다. 미국 입장에서도 우리가 중국의 생산 비중을 줄여나갈 수 있는 시간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 생산 제품은 최첨단은 아니지만 대부분 구형(레거시) 공정 이상이기에 '10년 내 5% 확장' 규정이 적용된다. 중국 반도체 시설을 5% 이상 확장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다만 미세 공정으로 갈수록 웨이퍼 한 장에서 얻는 반도체 양이 증가하기에 사실상 이같은 제한은 큰 타격이 없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의 대중 장비 수출 통제도 10월까지 유예됐다. 임 전 사장의 관측을 덧대면 한국 메모리 주도권은 향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란 결론이 나온다. 그가 현 상황을 "세계를 쥘 기회"라고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임 전 사장은 메모리보다 거대한 시장인 시스템 반도체, 특히 파운드리(위탁생산)를 두고서는 '반사 이익'을 노려야 한다고 했다. TSMC와 인텔, 삼성의 3파전이 될 파운드리 시장에서 가장 큰 변수로 꼽히는 대만의 지정학적 이슈와 미국 기업 인텔의 동향을 잘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칫 삼성 입지가 줄어들 수 있지만, 엔지니어가 부족한 미국 산업 특성으로 인해 인텔도 쉽진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사실 얼마 안 되는 금액인 칩스 법 보조금은 핵심이 아니에요. 우리는 그저 미국 공급망과 '같이 간다'는 확실한 메세지만 주면 되는 겁니다. 13억 인구의 중국은 내수 시장 규모가 커서 부품·소재를 싹 쓸어갑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먹을 게 없어요. 그에 반해 3억 미국은 하이테크 산업에서 한국, 일본, 대만이라는 파트너가 필요한데 이렇게 보면 역으로 미국이 우리에게 볼모로 잡힌 셈이라 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그리고 미국 생산은 원가 경쟁력 문제로 인해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중심이 우리 쪽으로 넘어올 거라 봐요. 결과적으로 미국이 중국 추격을 차단해주는 현 상황은 우리에게 축복입니다."
(이하 중략)
그래서 지금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반도체가 아니라 중국 제조업의 압도적인 원가경쟁력에 다 쓸려 나가고 있는 다른 제조업 분야들임. 예컨대 지금 2차전지뿐만 아니라 과거 한국의 10대 수출품목 중 하나였던 석유화학만 해도 나는 솔직히 조만간 석유화학 쪽 문 닫는 업체들이 상당히 많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함. 중국산 석유화학 제품들의 물량공세가 정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임. 다른 산업들의 상황도 다 비슷함.
그러면 왜 정치인이건 시사 렉카들이건 반도체에만 집중하느냐면 그게 있어 보이고, 또 사람들의 이목(정치인들은 표심)을 끌기 때문임. 반도체 산업에 그나마 공개된 정보들이 많고, 또 멋있어 보이는 최첨단 미래 산업이기 때문임. 예컨대 박영선만 해도 최근에 반도체 책을 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는 좀 같잖다고 생각하거든. 박영선이 선거 떨어지고 미국에 유학 가서 반도체 산업을 1년 정도 공부하고 책을 냈다는데, 참고로 역사학 전공이었던 크리스 밀러 교수만 해도 칩 워를 쓰는 데 거의 7년에 가까운 기간이 걸렸음. 그 7년이라는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공부해서 그러한 명저를 쓸 수 있게 된 것임. 그런데 박영선이 1년 정도 겨우 깔짝이고 책을 낸다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다시 정치에 복귀하려고 여론몰이 하려는 목적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예시를 박영선만 들긴 했는데 요새 좌나 우나 정치인들이 다들 그렇게 반도체 관련해서 책도 쓰고, 강연도 하고, 어디 숟가락 하나 걸치려고 하더라고. 얘네들이 진짜 그럴 만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가들이냐 하면 내 생각은 전혀 아니다임.
그런데 사람들의 이목이 반도체에 쏠린 동안 대한민국 다른 산업들의 현실은 중국에 의해 아주 기둥 뿌리부터 박살나고 있는 상황임. 결론적으로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반도체 말고 다른 산업들을 어떻게 (일본처럼) 구조 개편을 할 것인가임. 반도체 산업의 그 화려함에만 집중하다 보면 정작 무너져 가고 뿌리부터 곪아 가는 대한민국 다른 산업들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될 뿐임. 반도체 산업은 한국 경제에서 제일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님. 일부분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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