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없는 사회'를 넘어 '현금 없는 사회'로
정부 주도하의 ‘동전 없는 사회’가 시행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지만 국민 체감은 ‘제로(0)’에 가깝다. 사업에 대한 홍보가 미흡한 것은 물론 이미 신용카드, 직불카드, 모바일 결제 서비스 등 비(非)현금 지급수단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 ‘동전 없는 사회’에 대한 논의가 이제 막 불붙은 한국과 달리 해외에서는 스칸디나비아 3국을 중심으로 동전을 넘어 지폐까지, 이른바 ‘현금 없는 사회’로 전환되고 있다. 실물화폐의 종말은 올 것인가. ‘돈의 미래’를 전망했다.
#.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당신의 눈앞에 한 걸인이 나타난다. 걸인은 당신에게 QR(2차원 바코드) 코드가 그려진 목걸이를 내민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읽고 모바일로 송금해 달라는 얘기다. 우스갯소리이거나 미래 사회 얘기가 아니다. 이웃나라 중국에서는 수년 전부터 QR코드가 생활화됐다. 걸인의 사례는 단적인 예일 뿐 노점상에서 파는 과일부터 잡화까지 실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QR코드로 읽고 결제할 수 있다. 위조지폐 논란이 많은 중국에서는 국가가 아닌 상점, 즉 개인들이 현금 대신 전자 결제를 오히려 권장.
먼 나라 스웨덴의 사례는 더 극적. 정부 차원에서 ‘현금 없는 사회’를 밟아 가고 있는 스웨덴에서는 2013년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 강도가 들었지만 현금이 없어 빈손으로 나왔다는 일화가 유명. 실제 이 나라에서는 은행 지점의 현금 보유를 줄인 뒤 은행 강도 수가 2008년 110명에서 2011년 16명으로 줄며 3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현금 없는 사회’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 기술 발전에 따라 현금보다 신용카드, 직불카드, 모바일 결제 서비스의 사용이 늘면서 현금을 대체하는 비현금 지급수단이 소비 문화의 중심으로 떠올랐기 때문.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에서 이용 비율이 가장 높은 지급수단은 신용카드. 현금 이용 비율보다 약 4배 가까이 높다. 2016년 현금 이용률이 13.6%인 반면 신용카드(54.8%)와 체크·직불카드(16.2%) 이용률은 71.0%다. 여기에 계좌이체(15.2%)와 선불카드(0.3%) 및 전자화폐(0.2%)까지 더하면 비현금 지급수단 이용률은 86.7%까지 늘어난다. 국세·지방세·공공요금 등에 대한 카드 납부가 가능해지고 1만원 미만의 소액 결제도 카드로 계산할 정도로 카드 사용 소비 문화가 정착됐다는 분석.
◆현금 13.6% < 비현금 86.7%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과 비교해도 한국의 비현금 이용 비율은 높게 나타났다. 마스타카드가 2013년 33개국 개인 소비자 지출 행태 조사를 통해 각국의 비현금 결제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70%로 33개국 중 10위.
이 회사는 비현금 결제 비율의 구간별로 ‘현금 없는 사회’로의 진전 정도를 나눴는데 △비현금화 비율이 80% 이상인 국가들은 ‘현금 없는 사회에 진입한 국가(nearly cashless) △비현금화 비율이 60~80%인 국가들은 현금 없는 사회로의 진전을 지속하는 시장과 정체기 시장이 공존하는 국가(tipping point) △40~60%인 국가들은 현금 없는 사회로 전환 가능한 인프라를 구축 중인 국가(transitioning) △40% 이하는 현금 사용 전환을 시작하는 단계의 국가들로 결제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inception)다.
이 중 한국은 둘째 구간인 현금 없는 사회로의 진입 직전 단계에 있는 것으로 평가. 1위는 벨기에로 93%이며 꼴찌(33위)는 이집트로 7%였다. 하지만 마스타카드의 평가에 비해 국내에서의 ‘현금 없는 사회’에 대한 논의는 걸음마 단계다. 이제 막 그 전 단계인 ‘동전 없는 사회’로의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이마저도 시행된 지 한 달, 관련 정책을 아는 이들이 소수에 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