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커 사라진 명동 거리서 밀려난 로드숍들
'콘크리트 상권'으로 불렸던 서울 명동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국면이 장기화하면서 중국인 관광객(유커)이 급감하자 비싼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철수하는 매장이 속출.
유네스코길, 명동중앙길 등 최근 4~5년새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숍과 SPA(제조·유통 일괄형) 의류 브랜드가 줄줄이 들어선 핵심상권이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화장품 매장이 주요 건물 1층을 점령해 이른바 '화장품 거리'로 불리는 유네스코길의 경우 이미 문을 닫았거나 점포정리 예정인 매장이 수두룩하다.
◇"더 버티기 어렵다"…명동서 짐싸는 'K뷰티'=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명동 유네스코길에서 수년간 영업해 왔던 화장품 브랜드숍 '잇츠스킨'과 '홀리카홀리카', '디오키드스킨' 등이 최근 문을 닫았다. 잇츠스킨 관계자는 "명동 유네스코점은 가맹 계약을 맺고 운영해 왔는데 지난달말 매장 임대차 기간이 만료돼 문을 닫았다" "직영점으로 전환하기에는 명동의 높은 건물 임차료 부담에 비해 매출이나 브랜드 홍보 효과가 크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폐점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패션 매장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남성복 브랜드 '지오지아'는 유네스코길에 있던 명동 직영점을 최근 월세 부담이 적은 이면도로 매장으로 옮겼다. 기존 매장은 지난해 5월 2개층 규모로 확장해 건물 전면에 모델인 한류스타 김수현의 대형 포스터를 붙여 중국인 관광객 필수 쇼핑코스로 꼽혔던 곳. 하지만 지금 이곳엔 매장 이전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을 붙여 놨다. 건물 임대 현수막이 내걸린 채 텅 빈 매장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임차해 운영하다가 지난해 말 문을 닫은 '삼성패션관' 자리에도 아직까지 새 임차인이 들어오지 않았다.
명동 상권을 채웠던 화장품·패션 매장이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명동 일대 상가 공실률은 높아지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1분기 명동 상권 중대형 상가(3층 이상·연면적 330㎡ 초과) 공실률은 5.5%로 전분기 대비 0.4%포인트 상승. 같은 기간 전국 상가 공실률이 1.1%포인트, 홍대·합정 등 상권의 경우 평균 4.7%포인트 각각 낮아진 것과는 대조적.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명동은 월세가 워낙 비싸 자영업자들은 당장 한 두 달만 장사가 안돼도 타격이 크지만 자금력이 막강한 건물주들은 공실이 생겨도 좀처럼 임대료를 낮추지 않는다" "이미 올 초부터 상권 변화가 감지돼 왔다"말했다.
◇유커 떠나니 매출 '뚝'…문 닫는 매장 더 늘 듯=명동 상권이 흔들리는 것은 거리를 가득 메웠던 '큰 손' 유커들이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를 못 마땅해 하던 중국 정부가 올 3월 '한국 여행상품 판매금지' 조치에 나서면서 단체 관광객과 보따리상이 일제히 발길을 끊은 것.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3월 방한 중국 관광객수는 36만782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40% 감소. 4월에는 22만7811명, 5월에는 25만3359명으로 각각 66.6%, 64.1% 줄었다.
A화장품 업체 임원은 "명동 상권 매장의 경우 중국인 관광객 매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인 만큼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가맹점은 비싼 월세를 내며 매출 타격을 버티기 어려운 실정" 그는 이어 "중국인 관광객들이 밀려 들어올 때는 비싼 월세를 내더라도 브랜드 홍보 등을 위해 명동에 경쟁적으로 매장을 내야 했다"며 "하지만 이젠 명동 특수도 옛말이 됐다"고 덧붙였다.
특정 상권에 지나치게 많은 화장품 매장이 들어선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과거 명동은 금융·쇼핑 등 업종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다양한 소비층이 몰리는 상권이었지만 2010년 이후 중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화장품 매장 중심으로 채워지면서 오히려 내국인들로부터 외면당하기도 했다. 실제 명동 핵심상권에는 같은 브랜드 화장품 매장이 우후죽순 들어서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명동에 31개, LG생활건강 10개, 토니모리 6개, 에이블씨엔씨 5개 등 매장을 운영중이다. 사드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으면 연내에 명동 상권에서 이탈하는 매장이 더 나올 것이라는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