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두 남성의 ‘맞짱’ 대결이 영상으로 올라와 큰 화제가 됐습니다.
이 짧은 영상은 이제 유튜브로 넘어가 29일 기준으로 20만명 이상이 시청했죠.
온라인상에는 수 많은 싸움 영상들이 수시로 올라오는데, 왜 유독 이 영상이 큰 이슈가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대결을 펼쳤던 두 남성의 독특한 배경과 너무나도 허무하게 끝난 싸움 자체에 있었다고 봅니다.
다음은 단 10초만에 끝난 MMA 파이터와 태극권 고수의 대결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영상이 바이럴을 타기 훨씬 이전부터, 이 둘의 대결은 중국 종합격투기와 전통무술 커뮤니티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 대결을 처음 제안한 이는 바로 중국 전통 무술 태극권의 한유파인 ‘뇌공태극'(雷公太極)의 창시자 레이레이(雷雷)라는 무술인입니다.
▼올해 41세인 그는 중국식 격투기 ‘산다'(散打)를 수련하던 중 뇌공태극권을 터득했다며, 이 권법이 “바람과 번개처럼 빠르면서 산처럼 고요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권법을 이용해 어떠한 종합격투기 선수라도 이길 수 있다고 단언했죠.
▼레이레이의 도전을 받아들인 선수는 바로 중국의 프로 종합격투기 파이터인 쉬샤오동(徐曉東)으로 올해 37세의 MMA 베테랑입니다.
▼그는 현재 선수와 코치 그리고 프로모터를 겸임하고 있는데, 인정사정 없는 화끈한 공격형 경기력으로 팬들 사이에서 ‘매드맨'(madman)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 화제의 대결은 중국 쓰촨성 청두시의 한 언더그라운드 격투장에서 열렸습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수 많은 MMA 팬 그리고 레이레이의 제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이 대회를 참관했죠.
▼하지만 그토록 화제를 모은 이 시합은 불과 10초만에 끝났습니다. 레이레이는 시합이 시작되자마자 쉬샤오동의 맹공을 받고 바닥에 쓰러져 두들겨 맞았죠.
▼심판이 개입에 이 두 사람을 간신히 떼어놓으면서 경기는 종료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심판은 말할 것도 없이 쉬샤오동의 손을 들어주면서 승자를 발표했죠.
▼시합이 끝난 후 중국 네티즌들은 레이레이를 사기꾼으로 몰면서 “그건 진짜 태극권이 아니다”, “중국 무술이 이것밖에 안돼냐”, “중국 전통 무술은 이제 죽었다, 각성해야 한다” 등 허탈한 반응을 보여왔습니다. 반면 대결에서 손쉽게 승리를 거둔 쉬샤오동은 이러한 결과를 미리 예상했고 전혀 놀랄 것이 없다고 BTV 인터뷰를 통해 밝혔습니다.
총이 나온뒤에 실전성은 완전히 내다 버렸죠.
거기에 중국무술은 부르주아 무술이라고 탄압. (부자들이 호신술로 배웠음)
홍콩이나 대만에서 맥을 이었고 중국내에선 거의 3차에 걸쳐서 소멸됩니다.
홍콩이나 대만의 무술가들도 지방무술가나 하류가 살아남았습니다.
백련교의 난때 거의다 총맞아 죽었습니다.
형의권에도 그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형의권은 두가지 계통이 있는데 형의12형권쪽의 경공술을 배운 고수가 강을 뛰어넘어서 (개울보다는 큰) 살아남았다고 하죠.
자세히 말하자면 청나라가 건국할때 총으로 다 쏴죽임 (소림사 불탐... 그 뒤의 소림권은 그냥 말만) 무기소지 금지됨 (명나라때까지는 패도 패검이 허용)
청나라 말기 백련교의 난때 서양의 총기에 다 맞아죽음, 잔당은 청왕조에서 토벌. 그래도 상류층용 무술은 살아있었음
청멸망이후 공산당이 중국지역을 장악하면서 상류층을 몰아냄 상류층과 함께 무술가들 홍콩이나 대만으로 도망감. 지역 무술가들은 남음. (절이나 도관에 남아있던 승려나 도사들 환속시킴, 전통이 절딴남)
문혁때 지역무술가들도 다 쓸어버림. 지역 향촌에 남아 있던 몇명은 그래도 있기는 했었음... 진가 태극권이라던가.
70년대 일본과의 수교시 당시 태극권이 일본에서 유행했던탓에 일본의 정치인들이 중국에 가서 태극권 좋아요! 했다가 태극권 위주로 부활 (그전엔 그런게 있었는지도 몰랐음)
80년대말 홍콩의 옛 무술가들, 요즘애들은 옛방식으로는 수련 못시킨다. 다 도망간다. 무술이 절딴나게 생겼다. 라고 함 (그런 옛 수련법대로 수련하는곳이 한국에는 있음... 기천문이라고... 기마자세만 2시간... 다른자세들 까지 포함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