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대한민국 네티즌만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근 벨라라비가 욕먹는 걸 보면서 참 웃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저 내가 응원하는, 내가 좋아하는 손흥민 선수가 벨라라비 때문에 슈팅찬스를 놓치니 열받아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저주를 퍼붓는다고 보기에는 너무 진지한 비난들이 많아서요.
사실 이런 역사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축구선수들이 본격적으로 해외진출을 하게 된 박지성 맨유초창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죠. 대한민국 네티즌들에 의해 가장 먼저 비난의 화살을 맞게 된 영광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맨유의 전설, 폴 스콜스입니다. 그는 분명 초창기 박지성을 전적으로 신뢰하진 않는 듯 패스를 잘 주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며 분명 게임진행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이를 곱게 보지 않았습니다. 특히 05-06시즌 찰튼전에서 실수를 한 박지성을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나무라는 장면이 전파를 탐과 동시에 네티즌들은 스콜스를 향한 집중포화를 시작했습니다. '인성쓰레기' '퍼거슨의 아이들중 수준미달인 선수' '인종차별주의자' 심지어는 외모를 비하한 말들까지 서슴치 않았죠. 하지만 팀의 주장을 맡고 있던 스콜스가 과연 팀 케미를 해치면서 박지성에게 일부러 패스를 하지 않고, 인종차별을 했을까요? 절대 불가능한 일이죠.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어이없는 현상이었습니다.
시간을 조금 흐르게 해서 꿈의박주영이 프랑스무대로 진출한 때로 넘어가 보죠. 이 조그마한 모나코라는 도시에도 네티즌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애증의 탐욕왕(?)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도 익숙한 네네죠. 뛰어난 드리블실력과 골욕심, 준수한 신체조건 등을 갖춘 이 브라질리언은 모나코에서 20대 후반, 선수생활의 정점으로 달려가고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그가 머나먼 한국땅에서 '탐욕왕' '네네치킨' 등으로 폭풍같이 욕을 쳐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과연 그는 알고 있을까요?
모나코가 리그경기에서 패하거나 비기기라도 하는 날이면, 한국 네티즌의 비난의 화살은 팀내 최전방 스트라이커였던 박주영보다 측면자원이었던 네네에게 집중됐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열심히 잘 뚫고 들어와서 박주영에게 패스를 내 주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뿐입니다. 네, 아무리 그 전까지의 활약이 기가 막혔고 그런 기막힌 드리블과 테크닉 하나 하나가 상대 포메이션까지도 붕괴시킬 수 있는 요소가 된다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단편적인 발상이죠.
(이런 얘기는 앞으로 지금의 벨라라비까지 거의 같은 내용이기 때문에 일단은 이정도로 갈무리하도록 하죠.)
이야기를 정리해서, 그렇게 신나게 욕을 먹던 네네는 시즌이 끝나고 이제 막 리빌딩을 시작하던 파리 생제르망에 입단해 파리지앵 갈락티코라 일컫어지는 '뷔 락튀'의 일원으로 선수생활의 전성기를 보냅니다... 네 뭐 그렇다구요...
깜빡했는데 이 전에 설기현 선수가 레딩에서 활약할 당시에도 잠깐 설기현에게 패스를 안 주는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팀의 패배요인, 눈엣가시(물론 한국 네티즌들에게만)로 여겨지던 선수가 있었죠. 바로 스티브 시드웰입니다. 기억하시나요? 네, 그리고 이 선수는 신나게 욕을 먹다가 다음시즌 첼시로 이적합니다^^
다음 선수로 넘어가 볼까요. 시간이 훌쩍 흘러(그만큼 괄목할 만한 활약을 한 한국선수가 없었다는 뜻도 됨) 레버쿠젠에 입단한 손흥민(함부르크 시절에도 네티즌들에게 사랑받던 선수가 있었지만 그땐 손흥민이 그나마 어릴 때라 욕을 덜 먹어서 패스)을 따라 난생처음 레버쿠젠 경기를 챙겨보게 된 대한민국 네티즌들은 기어코 죽일놈을 찾아내고야 맙니다. 지트나이 샘이라고도 불리는 시드니샘입니다. 플레이스타일은 위의 네네와 비슷하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하고, '(재2의) 탐욕왕' ' 호주샘보다 못한새끼' 등으로 불리던 샘은 급하게 타팀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높은 이적료로 리빌딩이 시급했던 명문 샬케로요...
시드니샘이 시즌중간에 사라졌으니 욕할 사람이 사라져야 되는데 그 전부터 조금 거슬리던 넘이 있네요. 엠레칸인지 찬인지 뭐시기도 원래는 손봐줬어야 됐는데 시드니샘에 묻혀서 그 탐욕이 안보였던겁니다.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기 시작하고 엠레찬은 한국 네티즌들의 비난을 이기지 못하고(?) 시즌종료 후 머나먼 섬나라로 귀양가게 됩니다.
슬슬 손가락이 저리기 시작하네요. 이제 두 명 남았습니다. 바로 이 글을 쓰게 된 원인인 타칭 '탐욕왕' 2인, 벨라라비와 찰하노글루입니다. 이들도 이전에 네티즌들에게 사랑받던 선수들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폭발적인 신체능력과 (혹은 독보적인 필살기) 골욕심을 가진 선수들이죠. 이는 결정적 장면에서 우리 흥민이에게 공을 안 준 전력이 있는 선수들이라는 점도 동일하네요. 이 선수들이 한국 네티즌들의 비난에 얼마나 힘겨워할지, 그래서 어떤 클럽으로 도망가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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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결론이네요. 전 마냥 비꼬기만 하려고 저 장문의 글을 쓴 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섣불리 비난을 퍼붓기에 앞서서 과연 정말로 앞서 상기한 선수들 때문에 팀이 위기에 쳐하거나 패배했느냐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장면에서 ~에게 살짝 패스만 해줬으면 지진 않았을텐데 (or 이겼을텐데)" 라는 식의 가정은 초등학생도 하는 겁니다. 중요한 건 그 선수의 존재로 인해서 자기 팀 선수들의 운신의 폭과 감독의 전술적 다양성이 넓어질 수 있는가를 따져 봐야죠. 반대로 상대팀이 해당 선수로 인해 얼마나 전술적으로 제한될 수 있느냐도 마찬가지 얘기가 될 수 있겠죠.
과연 저 탐욕왕들을 데려가고자 하는 명문팀의 감독들은 바보라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자기가 거칠게 조련시켜 소위 '사람 만들어보겠다'라는 생각을 가진 걸까요?? 둘 다 아닙니다. 동료선수들을 편히 움직이게 하고, 전략의 가짓수를 늘리고, 더 나아가 경기양상을 뒤바꿀 수 있는 선수기 때문입니다. 몇몇(은 아니고 대부분인 것 같긴 하지만) 네티즌들이 욕하는 것처럼 "저XX가 막판에 골욕심만 안냈어도 이렇겐 안됐어!!" 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바보같은 소린지 축구 좀 보는 분들은 다 공감하실겁니다.
아마 어떤 분들은 이렇게 항변하실 겁니다. '두 세명씩 뚫고 골문 바로 앞까지 가서 지 골욕심만 내는새끼가 뭐가 잘하는거냐? 골문 앞까지 와서 잘 보고 패스하는게 더 나을것같으면 동료에게 패스하고, 아니면 자기가 침착하게 넣으면 되는거지!' 과연 2~3명씩 화려한 드리블과 센스, 혹은 체력으로 뚫고 거기서 침착하게 마무리까지 할 수 있는 공격수가 세상에 존재하긴 하나요? 아, 있긴 있네요. 전세계에 3명? 많이 쳐줘서 4명 정도.
쓰고 싶은 말은 산더민데 손가락도 너무 아프고 내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네요. 이만 줄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