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6월 17일 스위스 월드컵 개막 이틀째.
취리히 하르트투름 경기장에는 1만7천 명의 관중이 B조 헝가리와 대한민국의 경기를 보러 모여들었다. 단 1장뿐인 아시아지역 출전권을 획득한 대한민국이 푸스카스, 콕시스 등의 선수로 구성된 강력한 우승후보 헝가리의 적수가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당시 제네바에서 한국전쟁 참전 16개국 회의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한국팀의 출전을 여러 번 방송했고, 사람들은 이제 막 전쟁을 극복하고 있는 미지의 한국팀에 관심이 많았다.
경기가 시작되고, 출발은 좋았다. 전반 10분까지는 김용식 감독의 주문대로 수비에 집중하며 헝가리 선수들의 공격을 잘 막아냈다. 그러나 전반 12분에 푸스카스에게 선제골을 내어준 이후로 한국 선수들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시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헝가리의 공격은 계속되었고, 전반전에서만 4골을 허용했다. 후반전은 더욱 처참했는데 헝가리 선수들의 태클이 없었음에도 한국 선수들이 여기저기서 주저앉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동시에 쥐가 나고 만 것인데 48시간에 이르는 비행에 따른 극심한 피로와 시차, 경기를 불과 10여 시간 앞두고 스위스에 도착해 아직 몸이 풀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전력을 다해 뛴 결과였다. 아직 쓰러지지 않은 선수들은 더욱 이를 악물고 뛰었고, 골키퍼 홍덕영은 수십 개의 슈팅을 막아내며 선전했지만 결과는 0대9. 대한민국의 이름을 달고 출전한 첫 월드컵의 첫 경기는 그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