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패인전 대패했다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한국축구를 오래 봐 온 팬의 입장에서 제가 느낀 점을 좀 적어 보려고 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2002년 월드컵이후 한국축구가 많이 성장했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예전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기록상으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우선 월드컵 연속진출입니다. 물론 대단한 업적이지만 뒤집어 보면 2002년 이전인 86년부터 우리는 월드컵에 단골로 나간 팀이고, 특히 본선티켓이 2장 뿐이던 시절과 중동이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도 본선에 진출한 것을 감안하면 최근의 본선진출 횟수는 사실 한국축구의 성장과 결부시키기 곤란합니다. 만약 지금 본선티켓이 2장이라고 한다면 과연 우리가 본선진출을 자신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본선 성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02년을 제외하면 2010년 16강에 오른 것이 전부입니다. 냉정히 보면 그것도 행운이 따른 16강 진출입니다(2002년을 제외하면 승리한 경기는 2006년 토고와 2010년 그리스 두 번 뿐입니다). 86년부터의 다른 본선에서도 98년 네델란드전을 제외하면 우리팀은 늘 아쉬운 정도의 수준이었고, 약간의 행운이 따랐거나, 국제무대경험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16강에 진출했을 대회도 여럿 있었습니다. 요즘의 선수들이 당시보다 국제대회 경험이 훨씬 많은 점이 그때와 차이라면 차이입니다.
그리고, 유럽진출 선수들이 많아 진 점 역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 이후 예전과 다르게 유럽진출선수들이 늘어 난 것이 마치 우리축구가 많이 성장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대한민국 축구에서도 늘 뛰어난 선수는 한 두 명씩 꾸준히 등장했고, 차범근, 허정무, 최순호, 김종부, 황선홍, 최용수, 홍명보, 유상철, 안정환, 이동국, 이영표, 박지성, 이천수, 박주영 등으로 이어지는 좋은 선수들 역시 늘 있었습니다. 지금 유럽에 나가 있는 선수들이 당시의 선수들과 비교해서 절대적으로 뛰어 나다고 할 만한 선수는 찾기 힘듭니다.
2002년 이후 유럽진출이 많아진 것은, 최순호, 최용수 등이 활동할 당시와 달리 축구가 세계화 되었고, 산업화 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미디어와 인터넷의 발달로 전세계가 하나의 축구시장으로 변모하고 전체 축구시장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커지는 과정에서 생긴 부수적인 현상과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그동안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아시아 시장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것이라고 봅니다. 만약 시계를 거꾸로 돌려 86년, 90년, 94년, 98년도에도 지금과 같은 축구환경이었다면 해외에 진출했을 선수들이 오히려 지금보다 많으면 많았지 절대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더구나, 박주호,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 지동원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 진출한 이후 유럽으로 진출한 선수는 손흥민, 김진수, 홍정호, 석현준 선수 정도만이 겨우 자리를 잡고 있을 뿐입니다. 이 중에서 그나마 안정적인 지위를 확보한 선수는 기성용, 손흥민, (혹은 이청용), 구자철 선수 정도 뿐입니다. 나머지 선수들을 그 동안 한국축구가 배출한 국대선수들과 비교해서 특별히 뛰어나다고 볼 만한 여지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한국축구가 제대로 성장했다면 유럽진출선수들이 드문 드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1~2년의 간격을 두고 2~3명의 선수가 유럽에 진출해서 안착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냉정히 봤을 때 유럽에서 안착한 선수의 현실은 2002년 이후 15년을 통틀어 박지성, 이영표, 기성용, 손흥민 정도가 전부입니다. 이청용이나 구자철 선수도 비교적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이청용 선수는 부상으로 발목이 잡혔고, 구자철 선수 역시 부상을 달고 사는 선수라 꾸준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지는 못합니다.
축구팬들이 어린 나이에 중국이나 중동에 가는 선수를 비판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논리입니다. 한국축구, 더 나아가 아시아축구에서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 유럽과 남미중심의 국제무대에서 버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 때문입니다.
아시아권 수준의 공격수(아시아에 진출한 전성기 지난 유럽과 남미선수포함)만 상대하던 수비수는 늘 A와 B동작만 하면 공격을 차단할 수 있는 몸에 익힌 습성을 고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유럽과 남미의 수준급 선수를 상대하려면 C와 D라는 동작을 몸에 익혀야 하는데 아시아에서는 불필요하고 경험할 수 없는 그래서 스스로 발전할 수 없는 선수가 되고 맙니다. 공격수로 바꿔 생각해도 동일합니다.
중동메시라는 남태희선수가 아시안권의 국대경기에서조차 헤메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종래의 습관처럼만 해도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지는 선수들이 즐비한 리그에서 몸에 익힌 동작은 좀 더 강한 상대와의 경기에서는 실수만 유발할 뿐입니다.
2002년 이후로 한국축구에서 사라진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 전에는 마치 야구의 허구연이 '돔구장'노래를 부르듯이 축구해설가들은 '잔디구장만 있다면....'이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말이 2002년 이후 인프라가 대폭 확충되면서 사라지고, 대신 등장한 노래가 '유소년 육성만 잘하면...'입니다.
자, 유소년 육성 노래를 부른지 이제 1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그 세대들 역시 20세 언저리로 이미 프로에 진입한 나이입니다. 그럼 그 세대 선수들 중에서 이전 동나이대 국대선수들을 뛰어 넘어 유럽과 남미와 경쟁할 수 있는 기량을 보여 준다고 평가할 수 있는 선수는 몇 명이나 될까요?? 아니면, 연령별 대표팀이 국제무대에서 이전과 다르게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는 있을까요?? 저는 이전의 한국축구와 별반 다를 것 없다고 봅니다.
유소년을 아무리 육성한다고 해도 A와 B만 배운다면 C와 D까지 겸비한 선수는 어차피 육성되지 않고, 비슷한 수준의 선수는 늘어날지언정 정작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있는 선수는 육성하지 못하고 예전처럼 간혹 원래 타고난 능력이 뛰어난 선수의 등장만 기대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 기대가 지금 이승우에게 몰려 있지요. 전체적인 선수들의 평균은 성장했지만 실제 국제경쟁력이 있는 최고선수의 육성에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입니다.
우리축구가 성장했다고 하더라도(분명 성장은 했겠지요^^) 유럽과 남미축구의 성장속도를 따라 가지 못하는 것은 여전하고, 오히려 아시아축구에서조차 80년대중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압도적인 위치를 상실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즉, 우리의 성장속도보다 유럽과 남미의 성장속도는 더 빨라서 그 간격은 여전하고, 오히려 아시아의 후발주자들이 우리를 추격하는 속도가 더 빠른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럼, 도대체 해결방안은 뭘까라고 생각해 보면 역시 원칙으로 돌아가 '유소년 육성만 잘하면....'이라는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왜 연령별 대표팀의 국제대회에서 보여지는 근소한 격차 혹은 우리가 우월한 부분이 성인이 됐을 경우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차이로 나타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하나의 사고가 발생하면 그 사고가 발생하기까지 무수한 원인이 모이는 법입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국제무대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계속 정체하거나 퇴보하는 것은 유소년의 선발과 육성에서부터 프로구단의 운용까지 한국축구 전체의 운용방향이 잘못되었다는 방증입니다.
유소년선발과 육성방법, 유소년지도자의 자질, 경기경험, 학원축구의 폐해, 진학을 목적으로 하는 축구, 연령별대회가 없다시피한 축구환경, 중국과 중동으로 어린 선수들이 빠져 나가는 현실 등등 모든 것의 총합이 국가대표팀의 성적입니다.
단지, 국가대표감독에 명장을 데려온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유럽이나 남미와의 격차를 줄이고, 정말 아시아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최강'이라고 자부하기 위해서는 정말 냉정하게 우리를 돌아 보고 많은 개혁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단지 '축구'만의 문제해결이 아니라 학교진학, 고교출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대우, k리그의 연봉수준 등과 연결된 아주 복잡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알아서들 잘 하시겠죠.............쓰다 보니 내용도 없이 길어 졌네요. 간혹 육성방법에 구애 받지 않는 여러 천재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3인방과 이강인을 필두로 한 여러 명이 동일세대에 불꽃처럼 10년간만이라도 확 타오르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