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3년 가까이 지휘봉을 잡았음에도 주력 전술의 완성은커녕 팀을 월드컵 지역예선 탈락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그 슈틸리케의 뒤를 이어 급한 불을 끄며 러시아 땅에 경착륙이라도 시켜놓은 사람이 신태용이다. 그 이전에 이광종 감독의 병환과 별세로 갑작스레 선장을 잃은 U-23 올림픽대표팀의 키를 잡고 리우에서 조별예선 통과의 성적을 냈고, 안익수 감독이 이끌던 청소년대표팀이 아시아 U-19 챔피언십 조별리그에서부터 좌초하자 감독직에 급하게 올라 또 다시 본선에서 조별예선 통과의 성적을 낸 사람도 신태용이다.
“두 대회 모두 최소 한 단계는 더 올라갔어야...”라는 축구팬으로서의 아쉬움에 기인한 비판이면 몰라도 신태용은 실패자로서 비판/비난 받아야 할 감독은 결코 아니다. 다른 감독들이 연령별 대표팀에서 보장받는 최소 1년에서 최대 2년의 시간을 고려할 때 고작 6~10개월 정도의 턱없이 부족한 시간만 부여받고도 어떻게든 세계대회 조별리그는 통과해내는 그 지도력은 오히려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A대표팀도 마찬가지다. 이란, 우즈벡과의 마지막 두 경기서 한 경기라도 패하면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는 그야말로 백척간두에 놓인 대표팀이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대표팀을 이끌고 모양은 좀 빠지더라도 어떻게든 본선에는 가는 게 최선인 상황에서 그나마 한 번도 패하지 않고 2무로 본선에 올려놓았더니 “1승도 못 거둔 걸 보니 무능하다”며 히딩크에게 당장 지휘봉을 넘기라고 아우성이었다.
슈틸리케 감독 경질 직후 대표팀이 좌초 위기에 처했을 바로 그 때 히딩크는 적극적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위기를 탈출하겠다고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그저 월드컵 본선행이 확정되면 그 때 대표팀을 지휘할 의향이 있음을 나타낼 뿐이었다. 현직 국내파 지도자들 중 가장 유력했다는 황선홍 감독도 “나는 현재 FC서울에 충실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완곡하게 거절하는 뉘앙스로 재빨리 발을 뺐다. 이 상황에서 축구협회는 신태용 감독에게 "대표팀을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키면 본선까지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제안했고 신태용 감독은 그 '지극히 위험한 제안'을 수락한 것 뿐이다. 그리고 어쨌든 스스로의 힘으로 테스트를 통과했고 월드컵 본선까지의 임기를 쟁취해냈다.
훗날 알려진 바로는 거절의 뜻을 밝히지 않고 대한축구협회의 요청이 오면 “사명감을 갖고 수락하겠다”는 입장을 가진 이는 허정무와 신태용 단 두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들 중 협회는 선수 파악, 비슷한 상황에서 어려움을 두 차례 극복해 본 경험 그리고 대표팀의 미래, 차세대 지도자 육성의 필요성 등을 종합해 신태용 감독을 낙점했다. 물론 감독 선임의 난맥상을 만든 정몽규, 김호곤 등 축구협회 최고위층의 일처리 자체는 언론과 여론의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자신의 축구인생 전체를 걸고 불길 속으로 들어가 살아서 나온 신태용 감독이 언론이나 축구팬들로부터 "더 나은 히딩크에게 대표팀 감독 지휘봉을 넘겨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월드컵 본선을 준비하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권창훈, 이근호, 김민재, 김진수, 염기훈 등 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이 한꺼번에 부상으로 낙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 중 권창훈, 이근호, 김민재, 김진수는 대표팀 내에서 ‘무조건 선발 혹은 선발급’로 꼽히는 선수들이라 타격은 더욱 크다. 결국 신태용 감독은 어쩔 수 없이 플랜A보다 플랜B와 플랜C 구축에 더욱 골몰해야 하는 상황이고 그게 가능하려면 평가전을 통해 엔트리에 포함된 23명의 선수들에게 최대한 기회를 주며 실험에 실험을 거듭해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유명세 좀 있다는 일부 축구 칼럼니스트들과 축구전문 기자들 그리고 평소에는 안 보이다가 대표팀 축구 할 때만 되면 나타나 결과가 조금만 맘에 안 들면 온갖 비난과 쌍욕을 해대기에 바쁜 축구팬의 탈을 쓴 ‘쓰레기 네티즌들’이 합심해 “대체 언제까지 체력훈련과 실험만 할 거냐!”라며 신 감독을 물어뜯고 있다. 신 감독이 팀 전술 구축과 선수 실험 등을 위해 마지막 세네갈과의 평가전까지 최대한 쥐어 짜내야 하는 게 당연한 상황임에도.
나 역시 지난 3년 여 동안 신태용 감독에 대해 완전한 지지의 입장을 보낸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일궈낸 결실과는 별도로 조심성이 다소 결여된 언론과의 인터뷰에 몇 차례 거부감을 나타내며 비판을 가했던 기억이 있다. 올림픽 본선, 청소년월드컵 본선을 지켜보면서 적잖은 축구전문가들 및 축구팬들과 마찬가지로 특히 토너먼트에서 좀 더 신중하고 예리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신 감독에게 진한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정말 최악의 상황에서 그것도 외부로부터 난타를 당하며 A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신태용 감독에게 “제대로 못한다”라고 비판/비난을 가하는 건 난센스다. 그는 이 시점에서 대표팀 감독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것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선 첫 경기를 약 일주일 남기고 해외 유수 언론들은 F조를 분석하며 우리 대표팀의 조별리그 탈락을 기정사실화 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고 설상가상 적잖은 국내 언론과 축구팬들은 “3전 3패”를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특히 국내의 논조를 보면 정말 신태용호가 3패를 당하기를 바라고 그런 신 감독이 귀국 후 당연히 감독 지휘봉을 내려놓기를 바라는 것 같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건 마치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력 창병과 궁병을 상당수 잃은 군대를 이끌고 어려운 전장으로 향하는 장수를 향해 격려는커녕 “패전하고 돌아오면 그 책임으로 목을 베어야 한다”라고 하는 꼴이다.
정말 어려운 싸움이 되겠지만 신태용 감독이 부디 남은 기간 팀을 잘 정비해 최상의 컨디션으로 본선에 돌입한 후 조별리그 돌파의 성적으로 해외 유수 언론들의 코를 납작하게 했으면 좋겠다. 동시에 ‘축구팬’의 탈을 쓰고 아무렇게나 막말을 내뱉는 국내 저급한 네티즌들을 결과물로 머쓱하게 만들었으면 한다. 물론 실제로 그런 결과물을 만들어내면 그 때에도 그들은 "스페인 대표팀과 레알마드리드에서 수 년 간 엄청난 경험을 쌓은 코치진 덕분이었지 무슨 신태용 덕분이냐!"라고 지껄일 게 뻔하지만. 어쨌든 진심으로 신태용 감독과 우리 대표팀 선수들에게 행운이 따라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