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백이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포지션이 되었지만 한국의 경우 이영표-송종국 이후 일시적으로 기대감을 모은 선수는 있었지만 꾸준히 빅리그에 자리잡을 정도의 선수가 배출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옆나라 일본은 최근 꽤 괜찮은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풀백 배출이 어려운 이유는 이렇습니다.
1. 처음부터 풀백으로 육성되는 선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최근 사정이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지도자들은 여전히 성적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풀백을 발굴하기가 여건 상 어렵습니다. 설사 아주 뛰어난 안목을 지닌 지도자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초등, 중학 레벨에서 피지컬능력이 우수하고 재능이 있는 선수들은 거의 공격형미드필더 혹은 스트라이커로 뜁니다. 실제로 포지션이 정해지는 시기는 고교 레벨에서 입니다. 이때는 중학시절 에이스급인 선수들이 슬슬 한 학교에 집중되기 때문에 제대로된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중학레벨에서 스트라이커로 뛰던 선수가 경쟁에 밀려 윙으로 뛰게 되고, 윙으로 뛰던 선수는 연쇄적으로 밀려 풀백 포지션에 마지못해 뛰게 됩니다. 그리고 대학과 프로에 진학하면 이런 현상이 되풀이 됩니다. 고교에서 윙으로 뛰던 선수가 대학에서 풀백으로, 대학에서 윙으로 뛰던 선수가 프로에서 풀백으로 전향하는 현상이 2~3년 주기로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는 풀백 포지션의 경우 윗레벨로 올라갈수록 요구되는 운동능력(스피드, 체력)의 기대치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체력이 기본이지만 상대의 가장 빠른 선수를 상대해야 하는 포지션이기에 풀백으로서의 경험에 앞서 우선 피지컬적인 요구수준을 충족시켜야 최소한도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즉, 풀백 포지션에서 장기간 경험을 쌓고 프로레벨까지 올라오는 선수가 드뭅니다. 간혹 김진수처럼 고교, 대학에서 풀백으로 꾸준히 성장한 예외적인 경우가 있지만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2. 수비상황에 대한 경험 부재
고교, 대학 소속의 연령별 대표 풀백들은 대부분 소속팀이 최상위권 혹은 상위권에 위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는 이 선수들이 수비보다는 공격적인 국면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는 걸 의미합니다. 더불어 풀백 선수들이라 할지라도 수비보다는 공격적인 부분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에 수비상황에 대한 경험과 수비미스나 포지셔닝, 마크미스에 대한 지속적인 자극이 어렵습니다. 또한 상위권팀의 지도자 입장에서도 공격보다 수비를 잘하는 선수와 수비보다 공격을 좀더 잘하는 선수가 있다면 전술적 유용성을 봤을 때 더군다나 빌드업 시 풀백의 공격적 능력이 더 중시되는 최근 흐름을 봤을 때 후자를 선택하는 게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수비를 잘하는 풀백이 공격까지 잘하기도 어렵지만 이런 이유로 공격을 잘하는 풀백이 수비력을 겸비하기도 어렵습니다. 최근 김학범 감독은 반쯤 포기하고 아예 윙어로 주로 뛰는 선수들을 풀백 포지션에 선발해 전술로서 그런 약점을 메우려는 의중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3. 풀백으로의 포지션 변경으로 인한 좌절
일반팬들의 생각보다 선수들이 스트라이커에서 윙어나 센터백으로, 윙어들이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해야 했을 때 느끼는 좌절감이 상상이상으로 큽니다. 이때 잘 극복하는 선수가 소수 있지만 실제로 풀백으로 밀렸다는 생각에 선수생활을 접거나 고교선수의 경우 타학교로 전학을 가는 사례도 많습니다. 대학과 연령별대표팀에서 윙어로 뛰었던 포항의 강상우도 프로에 와서 풀백으로 뛰길 지시받았을 때 느꼈던 좌절감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고, 최근 수원유스의 주승진 감독도 한 선수가 부모를 동반하고 와 눈물을 흘리며 윙어로 뛰고싶다고 호소했던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원치 않아서 뛰는 경우가 많다보니 풀백이란 포지션에 자긍심와 뚜렷한 향상의지를 갖기도 쉽지 않습니다.
4. 전술이해도와 포지셔닝, 경기운영능력
이 대목에서 일본과 비교를 해보면 한국 선수들의 전술이해도와 공수포지셔닝, 경기운영능력이 일본 선수들에 비해 대체적으로 부족하다는 게 정설입니다. 공수 상황에 따라 전술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고 포지셔닝은 어떻게 디테일하게 가져가야 하는지, 상대가 압박을 들어올 때 혹은 상대의 수비전술에 따라 어떻게 경기를 세밀하게 풀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 약합니다. 이 때문에 풀백으로 포지션을 서게 됐을 경우 기본적인 운동능력과 기술에 이런 지능적인 부분을 두루 겸비한 풀백이 나오기가 일본보다 좀더 어렵습니다. 자연히 한국의 풀백들은 대체로 사이드라인에서 운동능력이 좋고 드리블기술로 압박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선수, 길게 때려주는 킥이 좋은 스타일의 선수가 풀백 포지션에 대거 포진하게 되었습니다. 국대에서 제대로 된 임팩트를 남겼던 선수들이 대부분 중앙미드필더 포지션을 소화하기도 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2002년부터의 이영표와 송종국, 2005~2010년 무렵의 오범석과 김치우 등이 그렇습니다. 최근 고요한과 박주호도 마찬가지고, 김민우의 경우 U20 월드컵과 일본에서 공격형미드필더로 뛰었던 선수들입니다.
5. 완성도가 높은 풀백이라면 차라리 중앙미드필더로 기용
4번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이야기지만 기동력과 체력에 몸싸움에 필요한 파워나 밸런스, 공수능력을 겸비했고 어느정도 경기운영능력을 갖춘 선수라면 이런 능력을 동시에 갖추기 어렵다는 사실로 봤을 때 이 정도의 선수라면 팀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일 확률이 높은데 그러면 지도자 입장에서 이런 선수를 굳이 풀백보다는 좀더 팀의 중심으로서 영향력이 큰 중앙미드필더로 기용하는 게 당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같은 팀에 아주 뛰어난 중앙미드필더가 있는 경우라야 이런 선수들을 풀백에 기용할 수 있는 여유가 될 겁니다.
결론.
단순히 말해 이영표-송종국급의 선수는 쉽게 나오기가 어려울 뿐더러 선수의 타고난 자질과 커오는 과정에서의 팀환경이 맞물려야 그나마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풀백이라는 포지션에서 두루 능력을 갖추고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경험을 쌓기가 환경적으로 어렵습니다.
학원축구는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하고 프로산하유스에서 그나마 기대를 할 수 있는 부분인데 하지만 공수에서 가장 재능이 뛰어난 선수를 A대표팀이나 유럽진출을 목표로 그 정도까지 장기적으로 접근하기는 현실 상 쉽지가 않습니다. 최근 상위권의 유스팀들 중에는 주승진 감독의 매탄고(수원유스)와 전재호 감독의 대건고(인천유스)에서 윙포지션의 선수들을 일찍이 풀백으로 경험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또 이럴 경우 선수들 스스로 풀백 포지션에 대한 자부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성향이냐도 중요하기 때문에 실로 대형선수가 배출되기 어려운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대형풀백의 탄생은 대형풀백이 되기 위해 태어난 선수여야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출처 :락싸 신객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