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는 국대를 클럽축구처럼 만든거죠. 부실한 기본기를 향상시키는 게 어려우니, 체력과 조직력으로 커버한거죠. 그 당시 축구 경기를 보면 정말 유기적으로 잘 돌아가고 그나마 플레이가 깔끔해서 보기도 좋았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주축선수들의 기나긴 합숙으로 인해 국내리그의 클럽들의 희생이 따른 건 절대 무시하면 안돼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는 데 만족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다시 그런 기나긴 합숙훈련은 하면 안되겠죠.
리그가 희생같은 참 웃기는 소리죠. 희생이고 뭐고 할 기반이라도 있었는지 ㅋㅋㅋ
당시 16강 이상 성적 못내면 최초의 개최국 조별리그 탈락으로 일본보다 못한 성적 내고 그냥 케이리그는 좆망의 길로 가는것만 남았었는데...
그 상황이니 리그고 축협이고 그냥 합숙이고 뭐고 다하라고 유례없이 밀어준 것이고, 5대떡일때 그 개난리를 피웠던건데 ㅋㅋ
월드컵 후 그 엄청난 특수로 폭발하던 관심과 관중들을 계속 잡아두지 못한 덜떨어진 케이리그를 욕해야지 뭔 희생드립이라니 ㅋㅋㅋ
히딩크가 한국에 와서 바꿔놓은 인식.
언론,축구계,일반 사람들의 의식전환을 만든 계기가 됨.
*한국은 축구강팀에 비해 기술은 떨어진다
히딩크: 기술은 어느정도 된다.
*기술이 안되는걸 정신력과 체력으로 커버한다
히딩크: 정신력, 마인드컨트롤이 떨어진다
체력도 많이 떨어진다.
우리는 90분을 뛰는 경기력을 원한다.
합숙을 한두달 한게 아니니까요... 거의 1년 가까이 합숙하면서 세트피스 연습하고 선수마다 부족한 부분 보완했습니다 한시즌 동안 같이 한 클럽 선수들 수준보다 호흡을 더 맞추면 더 맞췄지 그 보다 못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왠만한 나라는 꿈도 못꿀 파격적인 대우였습니다
히딩크 이후 한국 국대 감독들이나 2002년 당시 국대 선수들한테 그때 4강 신화 가능한 이유 이야기하면 다 장기간 합숙 이야기합니다 합숙의 영향력을 낮게 보는게 더 이상하네요 저는...
2002월드컵에서 한국은 "합숙을 오래했기 때문에" 4강신화를 쓴게 아니라 합숙을 통해 옥석을 가리고 한국의 장단점을 파악한 히딩크가 체력과 조직력을 집중적으로 다졌기게 가능했던거임.
간단하게 말하자면 합숙을 오래해서 성공한게 아니라 히딩크가 있었고 그래서 장기간 합숙이 가능해져 성공했다는 말임.
당시 합숙에 대해 디테일하게 설명하자면 히딩크 아니라 어떤 감독이 와도 히딩크만은 못하지만 감독이 강하게 원했다면 그만한 비슷한 시간과 여건은 주어졌을 상황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합숙이 길어지는게 마냥 좋은줄 알지만,개최국 자동진출로 인해 오히려 월드컵예선같은실전경험을 하기힘들어졌고 그래서 평가전으로 대체해야했음.
그런데 만약 감독이 국내감독이나 일류감독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안방에서 치뤄지는 월드컵대회이니 국내에서 평가전을 주로 잡아달라 축협에게 요청했을거고 대충 그저그런 상대나 강팀이 와도 원정이란 시차적응도 힘든팀의 2군 정도를 상대.반쪽자리 A매치를 치뤄가며 홈평가전 몇몇 승리에 자아도취해서 특히 홈에서의 평가전과 대회 실전은 한참 다르다는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게 만든 우를 범했을 가능성이 엄청 높음.
히딩크는 평가전을 치르더라도 해외전지훈련과 해외에서 평가전을 주로 원했고 어느정도 그게 이뤄지긴 했지만,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니고 사정이 여의치않자 국내에 불러들이는 팀이라도 주로 강팀을 원했음.
그래서 감독이 중요한거임.
같은 상황과 여건이라도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는거임.
그리고 합숙훈련을 무슨 2002베스트멤버를 처음부터 정해놓고 주구장창 합숙으로 조직력을 다져놓은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히딩크호때 대표팀에 불려가서 히딩크가 살펴본 선수가 국내파위주로만 거의 7~80여명은 됨.
그만큼 한국 축구에 대해 파악하고 축협의 추천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보고 선수를 선택하려 했기에 옥석가리기 과정이 그만큼 소요된거임.
거기서 안정환은 페루자에서 뛰느라 자주 소집되지도 않았고 당시 J리거들이었던 황선홍이나 최용수,홍명보,유상철등도 국내파와는 훈련한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이 짧았으며 국내파중에 추리고 추리느라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거임.
참고로 2000시드니 올림픽때 허정무호도 축협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2002월드컵 개최국이고 월드컵은 올림픽이후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기에 올림픽호의 호성적과 결과가 월드컵성패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봤고 올대멤버들을 차세대로 키우기위함과 허정무를 이미 2002월드컵까지 대표팀감독으로 정해놨기에 허정무호에 이전에는 보기힘들던 파격적인 지원을 했었음.
당시 올대 허정무호도 히딩크와 비슷한 1년반정도를 수시로 소집해 합숙하고 해외원정및 전지훈련과 평가전을 치르고 역시 옥석가리기로 거쳐간 선수만 거의 8~90여명이 됨.
그만큼 올릭픽팀도 나름대로 지원을 받았다는거임.
그렇게 안방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아직도 이루지못한 1승이라도 올리려는 그림을 그린거고.
그렇지만 허정무는 시드니 올림픽이후 대표팀에서 부진해서 경질되고 결국 히딩크가 오게된거임
그 과정에서 카나다 쿠바에게 패배하는 답답함을 또 봐야죠
그리고 참고 견뎌야 하는데...
다른 감독이 하면 안되고. 히딩크가 반복하면 참겠다는거 아님?
.
결론 벤투.슈틸처럼 답답하게 하면 못 참는다.
하지만 히딩크가 같은짓하면 참아주겠다.
못참는 축팬에게 따라댕기면서 린치를 가하겠다 ?
현실은 월드컵 앞두고 합숙은 2002년만 한게 아니라 당시에 한국은 그전에도 마찬가지로 했었습니다..
이후로 선수들 유럽진출도 많아지고 기간도 줄어들고 한거지..
90년대만해도 월드컵의 해에는 반년이상 남아있음에도 이미 대표팀 선수들은 차출되어 있다고 리그에 안나왔어요
그래서 그전에 합숙해서 히딩크 반에 반이라도 성과를 냈었나?
80,90년대 한국의 전술은 윙 뛰고 크로스하는게 공격 전술의 전부였다는건 일반 사람도 알수준이었습니다 이거밖에 안했음 윙의 스피드로 승부하던 축구
심지어 윙은 오로지 공잡으면 뛰고서 크로스밖에 몰랐는데 심지어 우리선수가 아무도 없는데도 반사적으로 크로스를 한 수준입니다
그러던게 히딩크 이후로 한국 축구 패러다임이 바뀌었고 전술 유연성도 생기게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