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인 호주와 아르헨티나의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이런 글을 올리는게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이미 스코어가 2:0이고 아르헨티나가 만회 역전할 만큼의 힘이 있어보이지도 않아서 그냥 글을 써봅니다. 

뻣뻣한 몸과 서툰 볼키핑 능력, 좋은 찬스에서도 스스로 넘어지거나 패스가 터무니 없이 길어 라인 아웃시키는 한국 선수들을 보아온 어린 시절의 내 눈엔 사이드 라인이나 골 라인을 아슬아슬 하게 타고 가면서도 결코 볼 아웃을 시키지 않고 화려한 발재간으로 상대를 농락하며 절대로 볼을 빼앗기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기가막힌 패스워크와 그야말로 킬패스로 모든 수비벽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의 남미 축구를 월드컵 대회 같은 국제대회에서 보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시절 언론에서 즐겨쓰던 단어가 기술축구이다. 유럽축구와 남미축구의 확연한 차이가 바로 기술이었다.  유럽 축구는 힘과 조직력을 앞세운 반면 남미는 화려한 개인기를 앞세운 기술축구였었다. 그 당시 세계 축구는 이렇듯 조직력 축구와 기술축구로 양분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요즈음 젊은 친구들은 생소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축구역사에 있어서 그런 시절이 분명 있어왔기에 난 아직도 기술축구와 조직력축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익숙하다.

그런데 남미 기술축구의 두 기둥이라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이다. 아마도 불과 얼마전 까지는 그래왔다고 본다. 절대적인 기술을 구사하는 브라질이 있는 한 앞으로도 기술축구라는 단어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반면 기술축구의 또 다른 한 축이었던 아르헨티나가 몰락하면서 이제는 기술만 가지고는 더 이상 축구장에 발붙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결과는 남미축구도 독일이나 여타 유럽의 팀들 처럼 하이브리드로 진화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스페인 같은 남유럽국가 축구는 남미 스타일과 함께 조직력을(티키타카) 덧입혀 화려한 비상을 한 바 있다.

남미는 아직도 화려한 발재간을 주무기로 하는 기술축구가 주다.  그러나 이젠 체력과 조직력을 필연적으로 덧입혀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현대 축구는 이제 기술축구 만으로는 안된다. 이미 유럽국가의 축구수준에서 개인기술은 전술이 아닌 기본기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따라서 요즈음은 기술축구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 조차 넌센스인지 모르겠다.

얼마 전 최진철 감독이 월드컵 대장정을 앞둔 인터뷰에서 "기술축구"로 4강까지 가겠다는 표현을 했다.  아마도 그의 연령대에서 어릴적 한국축구의 한계와 세계축구의 벽은 다른 어떤 것보다 기술이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은연중에도 그런 표현이 나왔으리라. 그런데 다행히도 이승우를 비롯한 요즘 젊은 한국의 기대주들은 놀라웁게 세계 수준의 기술을 따라잡고 있다.  최진철 호가 승승장구 하는 요인 중에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 개인기량 수준이 상향평준화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는 아무리 조직력을 강조해도 선수전체의 개인기량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모래위에 집짓기와 같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아르헨티나의 몰락은 이젠 "기술축구"라는 용어와의 영원한 이별을 의미하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