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241&aid=0002491666
"악바리, 할 때 하는 선수로 기억해달라."
'풍운아' 이천수(34)가 유니폼을 벗는다. 이천수는 5일 JTBC 뉴스룸을 통해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는 사실을 밝혔다. 2002년 울산 현대에서 데뷔해 스페인과 네덜란드,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등을 거쳐 다시 K리그 무대에 복귀한 이천수는 고향 인천에서 축구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갑작스러운 은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3년 인천 입단 후 지난해 1년 재계약을 맺은 이천수는 팀의 든든한 고참으로 어린 선수들과 함께 올 시즌 인천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돌연 은퇴를 결정한 이유와 '축구선수' 이천수의 삶, 그리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이천수와의 일문일답.
-깜짝 은퇴다. 은퇴를 결정하게 된 배경은?
누구나 축구를 시작하면서부터 항상 은퇴에 대해 생각한다. 나 역시 언젠가 은퇴를 하겠구나 생각하고 있다가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더 뛰고 싶은데 타의에 의해 은퇴를 해야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시기가 은퇴하기에 알맞은 시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본격적으로 은퇴를 생각한 건 올 시즌 전반기가 끝났을 무렵 쯤이다. 지금 내가 100% 전성기 때 실력도 아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잊혀지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도록, 박수쳐주시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떠나고 싶었다.
-가족들과 구단의 반응이 궁금하다.
아내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임의탈퇴 신분으로 있을 때 만나서 힘든 시기를 함께 보냈다. 남편으로서 멋있는 모습을 보여줬어야하는데 이제 또 은퇴를 한다고 하질 않나, 하하. 그런데 아내가 "운동을 어떻게 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은퇴는 자연스럽게 했으면 좋겠다.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 열심히 살자"고 얘기해줘서 다시 한 번 힘을 얻었다. 구단과 (김도훈)감독님께도 상의를 드렸다. 좀 더 뛰라고 얘기를 해주셨고 나를 여전히 좋아해주시는 팬분들과 서포터들이 계시는데 그분들 희망을 꺾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 욕심으로 팀을 이끌어가면 안되겠다 싶었다. 아쉽지만 축구를 그만 둬도 인천과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홍보는 물론이고 구단과 합의가 되면 유소년이나 인천 지역 학교 축구 관련한 일도 해보고 싶다.
-축구선수 이천수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아무래도 월드컵에서 골 넣을 때다. 2002년은 다들 잘해서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무래도 2006년이 기억에 남는다. 해보니까 알겠더라. 월드컵에서 골 넣기 정말 어렵다.
-그러고보면 2006년 월드컵 스위스전 끝나고 흘린 눈물이 많은 화제가 됐었다.
진짜 울지 않으려고 했다. 휘슬 소리가 들리자마자 다리에서 힘이 쫙 풀리면서 주저앉게 되더라. 그냥 자동이었다. 서러워서 죽을 것 같았고 창피한 것도 모르고, 일어날 힘도 없이 허탈했다. 아, 우리가 이것 밖에 안되는 거다 싶었고 지난 4년 동안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좌라락 떠오르고... 그 눈물 덕분에 '안티'가 사라졌던 때도 있었다, 하하. 그런데 돌아와서 K리그 뛰다가 플레이오프 희망이 걸린 인천전에서 판정 시비 때 욱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욕을 해서 퇴장을 당했지 않나. 덕분에 사라졌던 안티가 고스란히 다시 생겼다. 그 때 월드컵 효과로 CF 제의가 많이 들어오던 때였는데 다음날 1면에 뜨니 다 무산됐다, 하하.
-그런 이미지들이 많이 쌓여 이천수에 대한 선입견이 됐다.
이미지라는게 참 무섭더라. 길을 다니면 사람들이 알아보니까, 프로 데뷔하고 나서 모자를 안쓰고 밖에 나간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 일부러 좀 세게 말하고 했던 부분들이 그대로 내 이미지가 됐다. 사실 A형에 먼저 사람에게 실수하는 타입은 아닌데... 경기장에서 뛸 때는 무척 즐겁고 행복하다. 그런데 경기가 끝나고 밖에 나오면 아, 일상으로 돌아왔구나 싶고 사람이 작아지더라. '나는 이천수니까 어차피 뭘 해도 좋게 봐주지 않을 거다'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도 서른 넘고 최근에는 먼저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얼마 전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대화하는 걸 차타고 가다 우연히 들었는데 "이천수 처음에 무서웠는데 만나보니 사람 착하더라" 하고 얘기하시더라. 먼저 다가가니 그렇게 좋아해주신단 걸 알았다.
-은퇴하기 전에 대표팀 한 번 더 해보고 싶었을 것 같은데.
아, 몇 번 어필은 했는데 안 뽑아주시더라고요, 하하. 사실 인천 입단하고 첫 해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작년부터는 대표팀이 장기적인 플랜으로 돌아가는 걸 지켜보면서 욕심이 다 없어졌다. 월드컵 때는 내 나이가 더 많아질 거고, 어린 선수들이 예선부터 차근히 경험 쌓아서 올라가서 좋은 성적을 내는게 중요하다. 그래야 대표팀 선배로서 내 기분도 좋다. 사실 욕심이 많아서 내가 못뛰는 대표팀 경기는 보질 않는 편이었다. 그러다가 2010년 이후부터 응원하면서 보기 시작했는데 요새는 경기 보면서 스코어도 잘 맞히고 흐름도 좀 보이더라. 예전에는 축구를 '하는' 도사였으면 요새는 '보는' 도사가 되어가는 것 같다, 하하.
-그럼 은퇴 후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나는 축구만 해온 사람인데 지금 축구가 우리나라 스포츠 중에 넘버원이 아니다. 현역 시절부터 그게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전부터 방송이나 해설에 관심이 많았는데 제의를 받게 돼서 JTBC에서 해설위원을 하게 됐다. 재미있고 쉽게 축구를 얘기해서 나를 통해 축구가 조금이나마 알려지면 좋겠다. 그게 선배로서 후배에게 하나라도 해줄 수 있는게 아닌가 싶다. 물론 지도자에 대한 욕심도 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쌓아온 경험을 하나라도 미래의 제자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예전에는 지도자를 생각한 적이 없는데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경쟁사에 선배들이 즐비하다.
내 별명이 뭔가. '입천수' 아닌가, 하하. 같이 있을 때도 항상 내가 말을 제일 잘했다. 사실 난 그동안 1등이 되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늘 1등을 긴장시키는 존재였고 잡으려고 노력하는 추격자였다. 제2의 인생에서 형들도 다 라이벌이다.
-은퇴하고 난 후 사람들이 '축구선수 이천수'를 어떻게 기억해줬으면 좋겠나.
나는 천재라고 불리는 게 싫었다. 나는 늘 악바리였다. '축구는 잘하는데 키가 작아서 안된다'라는 얘기가 듣기 싫어서 어릴 때부터 이를 악물고 축구를 했었다. 부평고 시절에는 집에서 학교까지 6km 넘는 거리를 왕복으로 뛰어서 다녔다. 남들보다 부족한 게 있어서 노력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남몰래 무진장 노력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운이 좋은 선수라고 생각하고, 축구를 잘했는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열심히 하지 않은 적은 없는 것 같다. 프로 경기에서는 잘하려고 했고 대표팀 경기에서는 악바리처럼 뛰었다. 내 축구인생? 한 70점 정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