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강희란 사람에게 대표팀이란 곳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
불과 1년 전 일인데 벌써 10년은 지난 일 같다.
- K리그 우승을 하고, 지도력을 인정 받으면서 대표팀 감독 후보로 언급될 때도 본인은 늘 고사했다. 그러다가 2011년 대표팀에 갔던 이유는 뭐였나? 당시에도 처음엔 가능성이 0%라고 했었는데.
2002년 박항서 감독, 2003년 쿠엘류 감독 밑에서 코치를 하는 동안 느꼈다. 대표팀은 내가 올 곳이 아니고, 다시는 맡아선 안 된다고. 대표팀 감독은 비즈니스와 정치를 해야 할 때가 더 많다. 난 그거 못 한다.
대표팀에서 무슨 닥공을 하고, 패스 축구, 템포 축구를 하나? 사흘 준비하면 하루는 회복 훈련, 하루는 전술 훈련과 스피킹 게임하고, 다음날 경기 뚝딱 한 뒤 경기 끝나면 짐 싸서 각자 잘가~하고 헤어진다. 그런데 감독은 끊임없이 언론에다가 자기가 그 사흘 동안 뭘 했는지를 내놔야 한다. 이런 축구를 추구하고 이렇게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뻥을 치는 거다. 큰 대회 전까지, 혹은 장기 합숙 훈련을 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거다. 한국 축구의 현실이 선수들 모아서 사흘 훈련하고는 세계적인 팀들과 경쟁하는 건 어렵다. 이젠 아시아 내에서 격차가 줄어서 예선도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팬들의 눈높이는 저만치 올라가 있다. 누가 당신 대표팀 감독인데 축구색깔이 뭐냐고 물었다. 난 살색이라고 답했다. 장기 소집이라면 모를까 짧게 소집해서 색깔 내는 건 어렵다. 내가 지향하는 것과 스타일이 달랐다.
- 역대 대표팀 감독 중 처음으로 자기 임기를 최종예선까지로 못 박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대표팀에 대한 애착과 진의를 의심했다. 1년 6개월 동안 대표팀에서 100%를 다했다고 자부하는가?
나는 뭘 하기로 하면 어영부영 적당히 하는 타입은 아니다.
나는 취임사에서 최종예선까지만 할 거다라고 발언했다. 그게 내 원죄고 업보다. 해피엔딩은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선수들을 소집했을 때 눈빛을 보고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내 계약 형태와 상관 없이 선수들이 대표팀에 대해서는 애절할 거라 믿었다. 우리 때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예선 때는 사명감으로 대표팀에 갔다. 하지만 내가 순진했다. 지금 세대는 그렇지 않다. 어떤 선수는 월드컵조차도 자신의 이해관계를 따진다. 애국심, 국가관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니다. 왜 거짓말이라도 본선까지 간다고 하지 않았냐고? 그건 기만이다. 나는 솔직한 사람이다. 그래서 해피엔딩을 꿈꾸지 않았다. 월드컵만 진출시키면 다 끝난다고 생각했다. 거기에만 집중했다
- 최종예선 초반 두 경기는 아주 좋았는데 우즈베키스탄과 이란 원정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내용에서 이기고 결과를 못 가져왔다. 결국 그게 부담이 돼 나중엔 골득실까지 따지는 상황까지 갔다. 만일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민도 생각했었다. 딸이 있던 호주로 가냐, 지인이 있는 캐나다로 가냐, 동생이 있는 미국 시애틀로 가냐를 놓고 고민했다. 정말 현실적으로 생각했다. 레바논에 가서 비기고 돌아오고 상대 자책골로 우즈벡키스탄에 이기고. 아찔아찔했다. 실패하면 내가 선택한 운명과 업보를 다 받아들이고 축구인이 아닌 새 삶을 살아야 한다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북으로 돌아온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 대표팀을 떠난 뒤에도 큰 일이 터졌다. 기성용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그냥 해프닝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남의 일기장을 보면 안 된다. 우리가 사석에서는 윗사람 욕도 할 수 있지 않나? 물론 그게 세상에 나가게 된 건 본인이 감수할 부분이지만 거기(SNS)는 자기만의 공간이고 그런 얘기도 할 수 있다. 기성용이 정말 싸가지가 없다면 나도 방법을 썼을 것이다.
일부 기자들이 기사를 안 써야 할 것, 가령 혈액형 얘기 같은 것들은 농담이나 다름 없는 얘기였는데 무리하게 보도를 했다. 감독과 선수 사이에 불필요한 갈등 구조를 만든다. 이제는 그것까지도 다 내가 대표팀에 갔기에 벌어진 운명이라고 받아들였지만… 그냥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가대표 기성용을 응원해주길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 일도 아니고 그냥 해프닝이다.
- 결국 월드컵이 끝나고 7년 만에 외국인 감독이 왔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이번이 마지막 외국인 감독이길 바란다고 했는데?
이용수 위원장에겐 미안하지만 앞으로도 대표팀은 계속 외국인 감독으로 가야 한다. 사람이 비겁해지지 않고, 언론에게 굴복하지 않고, 정치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아도 되는 건 오직 외국인 감독이어야만 가능하다.
국내 감독들은 선수를 테스트하고 미래를 보고 가야 하는 평가전에서도 목숨을 걸 수 밖에 없다. 예선도 아닌데 과거에 박지성을 90분 다 뛰게 했다. 어떤 때는 소집도 제외하고, 불러도 60-70분만 뛰고 빼주면 되는데도 말이다. 그러니까 박지성이 뒤도 안 보고 은퇴한 거다. 그런데 국내 감독 입장은 박지성을 써야 한다. 취임하고 한두달 허니문이 끝나면 내 목덜미가 늘 뜨겁다. 한 경기 못 하면 저 감독 자르라고 한다. 한 경기에 연연할 수 밖에 없다. 미래가 어딨나? 아무리 계획을 잘 짜도 그 계획대로 갈 수 없다. 하지만 외국 감독은 그런 거 없다. 니들은 떠들어라 나는 내 길 간다는 식이다.
대표팀 감독 시절 어느 날 아침 전화가 30통 넘게 왔다. 지동원이 선덜랜드 시절에 맨시티를 상대로 15분을 뛰고 골을 넣은 날이었다. 그날 축구협회에서 연초에 각 언론매체랑 돌아가며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해서 아침에 샤워하고 준비하는 동안 세네통의 전화를 받았다. “골 넣은 건 진짜 멋있고 반가웠는데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출전해야 한다”라고 얘기하고 축구협회로 왔다. 도착하고 보니 부재중 전화가 수십통이었다. 인터뷰 들어가면 10시부터 5시까지 쉬지 않고 계속 기자들을 만난다. 지동원 관련해 통화를 못한 나머지 수십명의 기자들은 자연스레 감독에게 반감이 생기는 거다. 왜? 다른 몇 군데는 코멘트 따서 기사를 썼는데 그 사람들은 코멘트가 없으니 물 먹었다고 생각해서 까는 거다. 내가 수십통의 전화에 대해 일일이 해명할 수 있나? 그게 나중에 내 입지가 안 좋아지면 부메랑이 된다. 모두 적이고, 감독에게 칼을 들이민다. 외국인 감독이라면? 그 전화 안 받아도 되잖아. 때때로 경우가 아닌 질문을 하는 기자도 있다. 그런데 통화를 하면 거기에도 답을 해줘야 한다. 그러면 엉뚱한 기사가 나간다. 대표팀 감독은 언론과 거리를 둬야 산다. 그런데 거리를 두면 가만 안 둔다. 그 현실도 슬프다. 언젠가는 3주 동안 매일 기자들과 술을 마셨다. 이틀 내내 축구협회에서 인터뷰를 했다.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더라. 나중에 보니까 십이지장에 염증이 생겼을 정도다. 일산에 있는 국립암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고 4주치 약을 받아왔다. 재검을 받으라고 했는데 봉동에 오니까 자연 치유가 됐다.
- 대표팀에서의 1년 6개월은 최강희 감독에게 잊고 싶은 기억인가?
잃어버린 1년 6개월이지만 나를 되돌아 보고 전북에 대한 애정과 생각이 훨씬 강해졌다. 작년에 복귀해서 나를 더 채찍질 했다.
대표팀 시절 마지막에는 힘들고 괴로웠지만 돌아갈 곳이 있고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됐다. 이제 대표팀은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난 그냥 여기서 수원, 서울, 포항 잡을 고민이나 하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겠다.
내용이 길어서..
대충 요약...홍명보와 의리 논란에 대한것은 삭제....
궁금하시면 기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