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역시 중국리그로 가서 수준 낮아진 홍정호 때문에 화가 납니다.
하지만 이 문제로 슈틸리케 감독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국대 감독으로 부임한 후 그동안 좋은 결과를 남겨 왔는데,
그 와중에 마치 옥의티처럼 여겨지던 부분, 언론과 팬들에게 가장 자주 듣던 비판이
매 경기 마다 선수를 너무 많이 바꾸는 것 아니냐? 라는 비판이었습니다.
특히 수비진은 오랜시간 같은 선수 구성으로 발을 맞춰야 수비조직력이 갖춰지는데,
포백 선수를 특정 선수들로 고정시켜 수비조직력을 다지지 않고
도대체 언제까지 선수들을 바꿔가며 실험을 할 것이냐?
라는 비판이 많았죠.
저는 그런 비판을 볼 때마다, 약팀과 붙은 아시아2차예선에서 여러 수비수들을 실험해 보는 것이 옳다. 라고 슈틸리케 감독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최종예선이 다가오면 서서히 수비수들이 고정되며 조직력을 다지기 시작할 것이다. 라고 예측했죠.
그리고 실제로 최종예선이 다가올 무렵 수비 스쿼드가 고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박주호 자리와 김진수 자리는 거의 결정된 상태에서 오른쪽풀백 자리, 중앙수비수 두 자리가 끝까지 슈틸리케 감독의 고민이었는데,
장현수 - 홍정호 - 곽태휘(김기희) - 김진수 이 넷이 아마 슈틸리케 감독이 낙점한 포백이었을 겁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 포백진을 고정하여 수비조직력을 다져서 월드컵 본선을 대비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 믿고 있던 박주호 김진수가 이탈해 버리고
가장 믿었던 홍정호가 중국에 가버린 것이 슈틸리케 감독의 책임입니까?
슈틸리케 감독으로서는 리빌딩을 완성해 가야하는 시점에서 악재에 악재가 겹쳐서 날벼락을 맞은 꼴입니다.
여러분이 슈틸리케 감독을 비난하며 말하는 여러가지 얘기들,
전북의 중앙수비수 둘을 함께 써보자(김형일이 부상이라 지금은 쓸 수 없죠.)
짱개리그에 간 선수들을 모두 배제해 버리자.
이런 고민들 여러분은 쉽게 말하지만
슈틸리케 감독 입장에서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쉽게 말해보고 해 봤는데 안되면 그냥 숨어 버리면 그만이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슈틸리케 감독이 처음 한국 감독을 맡았을 때 미래 한국축구의 이상적인 청사진을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슈틸리케 감독이 한 말을 정확히 토씨 하나 하나를 다 기억하지는 못해도 이런 취지의 말을 했었죠.
장차 한국 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케이리그가 지금 보다 훨씬 발전하여, 케이리그 최고의 팀의 멤버가 국대에 최대한 많이 포함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슈틸리케 감독이 틈만 나면 케이리그 경기 관중수를 언급하며 케이리그를 보러 와 달라고 부탁을 했었던 것이죠.
슈틸리케 감독도 케이리그 최고의 팀의 수비조직, 혹은 공격조직을 그대로 국대에 이식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이미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단 지금 케이리그는 전북의 수비수들이 오랜 시간 발을 맞춰서 전북에서 좋은 수비능력을 보이는 것이지 선수 개개인의 능력치가 국대 클래스인지, 전북에서 떼어와 국대에 이식 했을 때 제대로 가동 될지는 모험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 모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되면, 슈틸리케 감독이 아마 할 겁니다. 이란 전이 끝난 다음에요.
최소한 지금 시점은 슈틸리케 감독을 비난할 시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한국 축구를 위해 젊은 감독 보다도 더 부지런히 일하며 없는 자원을 쥐어짜서 리빌딩을 하고, 리빌딩을 해 놨더니 어처구니 없게 선수가 중국으로 가거나 은퇴후 인생설계를 하고 있거나 등으로 망가져서 다시 고민을 해야 하는 슈틸리케 감독을 그 어느 때 보다도 응원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