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주제로 여기보다 훨씬 더 시니컬한 반응이 많은 다른 사이트 글 보다가 답글로 썼던거 그대로 가져와 봅니다. 답글인데, 쓰다보니 길어져서 아까운 것도 있고 더 쓸 얘기도 많지만 귀찮아서요. ㅎㅎ
허정무를 너무 과소 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선수보는 눈, 어린선수 키우기는 자타공인 우리나라에선 역대급이고.. 우리 나라 감독 중에선 최초로 지역방어에 기반한 플랫3백을 시도하고 정착시킨 사람입니다. 그 기반을 히딩크가 이어받은거죠. 차범근을 포함한 그 이전에는 플랫3백이 아닌 맨투맨+스위퍼 시스템이었거든요.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수비수들은 실력이 떨어지고 해본적도 없어서 (적어도) 대표팀 수준에서 지역방어는 못한다고들 했었어요.
원정 16강을 선수빨이라 하지만, 바로 그 직전 B+(A-)급 외국인 감독이랄 수 있는 아드보카트는 16강 실패했었죠. (10 남아공 허정무 때보다 06 독일 아드보카트 때가 박지성, 설기현, 이영표, 김남일, 안정환 5명의 몸 상태는 훨씬 더 좋았습니다.)
K리그에서도 풀타임 주전이라고 보기엔 모자랐던 20~21세의 기성용, 이청용을 대표팀에 안착시키고 , 19세였던 구자철을 대표팀에 데뷔 시킨 것도 허정무 입니다.
올림픽 대표팀 감독 시절 무려 4살어린 이천수, 박지성 뽑아서 쓰고(덕분에 이천수는 그 다음 올림픽때도 와일드카드가 아니라 본래 나이 멤버로 나갔죠. 박지성은 여러가지 이유로 못 나갔지만요. 신태용도 올림픽 때 이승우는 못 뽑았죠. 똑같은 4살차인데 말입니다.), 맨날 청대출신 스타선수 이관우 대신 투박한 듣보잡 선수 김남일을 출전시켰다고 욕 먹고, 둔하고 갑갑했던 설기현을 올림픽팀은 물론 대표팀에서도 중용해줬던 사람이 허정무죠. (조금만 기억을 더듬어봐도 욕이 어마어마 했습니다.)
아래는 허정무가 10대 때 국대 데뷔시킨 선수들이라고 합니다.(퍼옴)
이천수 18세 270일, 구자철 18세 355일, 최태욱 19세 25일, 박지성 19세 39일, 기성용 19세 225일, 이청용 19세 334일...
적어도 선수선발에 있어서 만큼은 허정무는 나이에 비해 보수적이거나 편협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축협은 고대라인이라는 의혹을 많이 받는데, 허정무는 연대 출신이죠..
허정무라면, 다들 비교적 최근의 전남, 인천 감독할 때만 떠올리는데 오히려 저는 그 이전에 포항 감독할 때가 더 떠오릅니다. 94 미국 월드컵 후유증(단언컨데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욕 많이 먹은 사람은 당시의 황선홍) 및 부상 등으로 맛 갔던 황선홍 부활시킨데는 허정무의 역할이 아주 컸었거든요.
이번 최종예선 중국전 패배와 달리 2010년 동아시안컵 중국전 (최초의) 패배는 해외파 없이 국내파였고, 서브멤버 테스트 성향이 짙은 선발 라인업이었습니다. 그나마도 월드컵을 100여일 앞두고 일부러 체력훈련 하면서 신체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만들면서 했던 경기였습니다. 당시에 경기를 10번도 넘게 돌려봤지만 3골 다 평소 같으면 먹힐만한 골이 아니었죠.
당시 중국은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짓고 준비하던 우리나라, 일본과 달리 몸 안사리고 거칠게 나왔었습니다. 당시로부터 불과 12년 전, 98 프랑스 월드컵 직전 중국과 평가전하다가 다리가 아작났던 황선홍의 악몽이 채 사라지기 전이었기에, 저도 속으로 져도 좋으니까 부상만 당하지 말라고 빌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어쨋든 허정무가 훌륭하고 위대한 감독은 아닐지 몰라도, 무조건 깍아 내릴만한 감독도 아닙니다.
본격적으로 축구 본지 30년이 조금 넘는 붉은악마 창단 멤버인 제가 보기에 감독으로서의 허정무는 차범근보다 비교 우위이며, 히딩크를 제외한 역대 대표팀 감독 누구보다 우위입니다. (브라질 A대표팀에게 승리한 유일한 아시아 국가가 대한민국이고, 당시 임시감독으로 선수 선발하고 이끌었던 것도 허정무입니다. 요즘 신태용 감독이 좋은 의미에서 땜빵감독이라고들 하지만, 그 원조는 허정무였습니다. 나이도 비슷했었고, 여러모로 둘이 비슷한 점이 많아요.)
쓰고보니, 무슨 허정무 대변인 같네요. (그런거 아닙니다. ㅡㅡ;)
현재의 시점에서 현실적인 바램이라면, 만약 허정무가 감독을 맡을 경우 최종예선까지만 하면 좋겠습니다. 허정무가 아니라면 신태용이 최선이겠죠. 외국인 감독이라면, 협회의 재정여건 등을 고려할 때.. 가능하기만 하다면, 파리아스 정도가 좋을듯 합니다.(요즘 포체티노 감독 볼 때마다 전술적으로나 선수 대하는 느낌에서 파리아스가 자꾸 겹쳐 보여서 말이죠.)
물론, 본선행 확정 짓고 난 이후라면 협회 재정규모로도 꽤 유명한 감독 불러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선수나 감독이나 월드컵은 나가고 싶어하니까요. 다만 그럴 경우 월드컵 본선 결과가 좋은면 좋은데로, 나쁘면 나쁜데로 감독은 또 바뀔 수 밖에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