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의 라이벌?
왜구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벽처럼 느껴질꺼야.
아니 실제로 벽이었다. 뛰어넘을 수 없는 벽. 최소한 축구에 있어서는 늘 그런 존재였다.
왜구에게 우리는.
그래서 왜구 언론들이 궁여지책으로 숙명의 라이벌이란 표현을 쓰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의 무식한 기레기들이 그걸 그냥 막 베껴쓰는 바람에
이상하게 왜국과 라이벌로 엮여버렸지만
따지고 보면 라이벌은 아니야.
공한증은 중국에게만 있는 게 아니야.
공한증은 왜국 애들이 더 심할 걸.
존심 때문에 말은 안해도.
역대 전적을 봐.
보면 라이벌이란 개소리가 쑥 들어가지.
1954년 3월 7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대일본전 기억하냐?
그 해 민족의 상잔이 끝난지 1년 도 안됐다.
전 국토가 불바다가 되었다.
살아남은 몇몇이 모여서 월드컵 나가보겠다고 아등바등.
어찌어찌 최종예선까지 올라갔는데 하필 상대가 한국전쟁때 꿀 빨아서
살이 피둥피둥 오른 일본이야.
당시에도 피파가 규정한 국제경기 룰은 홈 앤 어웨이 방식이었다.
그러면 경기를 한국에서 한 번 일본에서 한 번 해야 하는데,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 반대한 거야.
한국 땅에서 기미가요가 울려퍼져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그래서 당시 감독이었던 김용식 선생이, 지면 현해탄을 건너지 않겠다는 맹세의 말을 남기고
일본으로 건너간 일화는 전설이 됐다. (그놈의 축구가 뭐시라고)
그래서 일본에서 두 경기를 했는데.
첫번째 경기에서는 5대1로 승리
두번째 경기에서는 2대2로 비겼다.
생각해봐라.
전쟁이 끝난지 몇 달 되지도 않았다.
뭐가 제대로 된 게 하나라도 남아 있었겠냐.
그래서 적국에서 두 경기 했고
이겼다.
그 이후로도 왜국은 우리에게 늘 밥이었다.
1980년대까지는 그랬다.
최정민, 이회택, 차범근, 최순호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스트라이커들에게
왜국은 잘 차려지 밥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니네들은 밥상한테 라이벌이란 표현을 쓰냐?
밥상은 그냥 밥상일뿐.
맛나게 먹어주면 그 뿐.
다음에 시간이 나면, 식민지 시대때 종로의 한 동네 축구단이 전일본을 휩쓸어버린 얘기도 해줄께.
이 얘기 졸라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