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 감독은 사실 전술이 없는 감독이라서 슈틸리케의 전술에 대해 말 할 것도 사실 없습니다. 하지만 슈틸리케호의 성향에 대해서 말할 수는 있겠죠.
슈틸리케 감독의 장점은 딱 한 가지가 있었는데, 여러 경기장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실전 경기를 하는 선수들의 컨디션을 체크해서 현 시점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선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국대 경기를 할 때마다 선수가 매번 많이 바뀌었죠. 왜냐면 그 시점에서 컨디션이 제일 좋은 선수가 계속 달랐으니까요.
이, '현시점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선발한다.'는 방법이 부임 초기에는 경기력 상승효과를 가져왔고 그래서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하는 등 초반 분위기가 좋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슈틸리케가 갖고 있는 것은 '현시점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선발한다.' 이것 하나 밖에 없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전략 전술이 전혀 없었고 따라서 수비조직력을 단단하게 다지는 리빌딩의 기본조차 3년이 지나도 안 되었습니다. 3년이 지나도 수비조직력이 갖춰지지 않자, 왜 매번 수비수들이 바뀌냐? 라는 비판이 등장하게 되고 그 결과 '현시점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선발한다'라는 슈틸리케의 유일한 장점마저 사라지며 슈틸리케호는 최악의 경기력으로 침몰합니다.
슈틸리케에게 철학이 있다면, "우리가 최대한 공을 오래가지고 있으면 상대팀이 공을 갖고 있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고 그럼 우리에게 실점할 위험이 그만큼 줄어든다." 이걸 겁니다. 그래서 점유율을 중요시하였죠.
벤투는 슈틸리케와는 정반대의 성향의 감독입니다.
벤투는 점유를 중요시 하지만, 그게 오랜 시간 점유하기 위해서 점유를 중요시 하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최전방으로 공을 올리기 위해 점유를 중요시하는 축구입니다.
비유하자면, 고속도로를 달리기 위해선, 고속도로로 접어드는 길로 들어가야하는데, 고속도로로 접어드는 길로 들어가기 위해선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공을 점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벤투가 생각하는 고속도로는 바로 측면입니다.
골키퍼 --> 수비수 --> 수비형미드필더 --> 전진해있는 측면수비수
이 루트를 통해 전방으로 빠르게 올라가는 것이 벤투호의 첫번째 미션입니다.
이게 일리가 있는 것이, 한국선수들이 기량이 어느정도만 되면 강팀 선수들을 상대로도 측면은 공을 우리 소유로 만들기 좋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상대 선수가 우리선수의 측면을 통한 전진을 저지할 경우 많은 경우 터치라인 밖으로 공이 나가며 우리의 드로잉 공격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한국축구가 해왔던 전진 방식은 골키퍼가 롱킥으로 뻥 차서 전방에서 경합시는 방법이었는데, 이 방법을 대체할 방법으로 후방빌드업을 통해 한국이 공격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빠르게 앞으로 공을 전진시키는 것이 벤투가 우리게 제시한 새로운 전술인 것이죠.
물론 이게 현재 잘 안 되고 있어서 뭔가 자꾸 백패스 횡패스만 많이하는 느린 점유율 축구와 구분이 잘 안될 지경에 이르렀는데, 저는 그 이유가 기성용의 국대은퇴가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골키퍼 --> 수비수 --> 수미 ---> 전진해있는 풀백 이루트에서 바로 수미(기성용) 위치에 문제가 발생해서 벤투의 전술이 구현이 안되고 있는 것이죠. 마치 고속도로 길 중앙에 차 사고가 나서 사고차량(황인범 같은)이 길을 막고 있는 상황과 같습니다.
원래는 기성용이 대전분기점이고 이용은 전라선, 홍철은 경부선 양쪽 고속도로가 있어서 대전분기점에서 전라선으로 달렸다가 막히면 다시 분기점으로 돌아와 경부선으로 달리고, 경부선이 막히면 다시 분기점으로 돌아와 전라선으로 달려서 이 좌우 측면 전환을 빠르게 해서 상대 수비를 흔들어 중앙 공격수들과 측면 풀백들의 연계플레이로 상대 수비를 공략하는 것이 벤투 축구입니다.
슈틸은 전술이 없는 감독이었기 때문에 전술에 대해 할 말이 없는 방면, 벤투는 유심히 경기를 분석해보면, 세세한 곳에서 '이걸 하려고 했는데 잘 안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아주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완전 천양지차의 감독인데 슈틸과 벤투의 차이를 모르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한 말씀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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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다 써 놓고 보니 뭔가 벤투를 크게 쉴드치는 글이 되었는데,
사실 저도 벤투에 대한 기대가 처음 같지는 않군요. 아는 게 많고 최신 축구를 아는 감독이기는 한데, 아는 것을 현실 한국국대에 잘 입히는 능력은 부족한 감독이 아닌가... 하고 좀 실망하고 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우리가 쓸 수 있는 돈 한계 내에서는 벤투 정도가 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고
어찌 생각하면 한국축구에 딱 맞는 감독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어찌 생각하면 학범슨한테 맡기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도 하고
요즘 한국축구가 속시원하지 못한 모습을 보면 정말 복잡한 생각이 드는군요.
분명한 건 기성용이 국대은퇴한 것이 결정적 타격이라는 생각인데요. 또한 기성용을 도와줄 이청용이 국대에서 제 기능을 못하는 것도 설상가상입니다. 후방에서 기술 좋은 선수들이 등장하거나 컨디션을 회복해야 국대가 제대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주세종, 이청용 같은 선수들이 제 컨디션을 찾거나 백승호 같은 어린 선수들이 제 역할을 해주거나 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