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어떻게 나오는 지는 튀니지전과 베트남전에서의 한국의 플레이, 그리고
이강인을 플레이메이커로 안쓰던 클린스만 초반 경기들 + 벤투의 월드컵에서의 한국 플레이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이강인이 플레이 메이커로 뛰는 경기에선 유독 선수끼리 짧게 주고 들어가서 받고 다시 주는 식의 짧은 패스가 끊임 없이 나와요. 그리고 그 패스 동선에는 반드시 어딘가에 이강인 손흥민이 있습니다.
이번 두 경기를 통해서 클린스만은 왼쪽 황희찬 오른쪽 이강인을 고정으로 두고 손흥민은 프리롤 공격수, 조규성을 타겟으로 세울 것 같습니다.
황희찬은 오랜 한국 전통의 윙어 스타일입니다. 이른바 "치달"에 특화 되어 있고 몸싸움 잘하고 전투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매우 직선적입니다. 왼쪽 끝까지 파고 들면서 센터링 하거나 꺾고 컷백 내주는 것이 황희찬 스타일이죠.
그런데 이강인은 왼발잡이이기 때문에 황희찬처럼 코너킥 차는 근처까지 가지 않고 그 전에 항상 꺾고 들어옵니다. 오른쪽 윙이기는 해도 코너를 활용하지 않고 꺾는 구간이 꼭 있죠. 그래서 지금 한국은 중앙 공격도 가능하면서 센터링을 통한 뚝배기 공격도 되는 팀이고 공격 루트가 대단히 다채로울 수 있는거죠.
이렇게 왼쪽 오른쪽 윙어 스타일이 다르니까 손흥민과 조규성 둘을 다 써야 되는겁니다.
이강인이 손흥민과 계속 주고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강인을 활용한 공격을 할 때는 조규성보다 손흥민이 훨씬 잘 맞죠. 주고 받고 달려 들어가서 다시 받는 것이 되니까요. 이 과정에서 조규성은 버텨주거나 받아서 넘겨주는 역할을 할 수 있구요.
그리고 황희찬은 손흥민 보다는 조규성과 합이 더 잘 맞습니다. 황희찬이 직진으로 올라가서 센터링을 할 경우엔 100% 손흥민이 아니라 조규성을 향해 올리는 것일테니까요. 그리고 황희찬이 꺾고 들어올 때는 손흥민이 가운데서 받아 줘야 합니다. 손흥민이 프리롤이기는 해도 파이널 써드까지 갔을 때는 항상 조규성이 오른쪽 손흥민이 왼쪽에 위치하더라구요. 그러니까 황희찬이 꺾고 들어올 때 파트너는 조규성이 아니라 손흥민인거죠.
즉 황희찬 이강인을 윙어로 쓰면 대단히 직선적인 황희찬과 대단히 곡선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이강인을 동시에 사용하면서 엄청난 공격 옵션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벤투는 이강인을 쓰지 않았죠. 왜냐하면 벤투의 축구는 변수를 만드는 축구가 아니라 최대한 실수를 줄이고 골 넣는 매뉴얼을 최대한 따르는 축구였으니까요. 골키퍼가 센터백에게 볼을 넘기고 중앙 미들을 거쳐 왼쪽/ 오른쪽으로 볼을 돌리고 틈이 보이면 전진, 그게 아니면 다시 중앙으로. 뭐 이런 기본 메카니즘을 깔아두고 각자가 충실히 자기 구역에서 정해진 롤을 수행하는 류의 축구이다 보니, 이강인처럼 변수를 만들면서 축구하는 선수는 딱히 의미가 없었던 거죠.
즉 이 축구로 벤투는 어쨌거나 16강까지 올라갔으니 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축구는 딱 거기까지인 축구인 겁니다. 딱 짜여진 멤버로 딱 짜여진 매뉴얼을 달달 외워서 딱 그대로라는 공식만 가지고 축구를 하다 보니, 어떤 변수가 발생했을 때 거기에 대처가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매뉴얼에 의하면 저 선수는 이렇게 압박을 하면 저쪽으로 공을 돌려야 약속된 다른 선수가 그쪽을 막고 하는데, 브라질 같은 팀을 만났을때 문제가 생기는거죠. 박살이 났잖아요. 브라질은 변수를 만들면서 축구를 하는 팀이니 예측이 안되고 예측이 안되니 메카니즘이 성립이 안되는겁니다. 그러니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는 물론이고 창의적인 미드필더를 보유한 팀을 상대로는 쪽도 못쓰고 고장난 로보트처럼 공만 빙빙 돌리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클린스만이 전술이 없다고 욕 많이들 하지만, 이번 두 경기 보면 선수들끼리 약속된 플레이 하는 거 자주 보입니다. 이강인이 손흥민에게 공을 주면 어디로 가서 받고, 그 사이에 조규성은 어디로 움직이고 이재성은 어디로 움직여서 공을 받거나 다시 내주는지 연습한 티 많이 나던데요?
이게 다 사실 세부전술이기도 하고 벤투와는 또 다른 축구 스타일 아닐까요?
저는 벤투때보다 지금 한국 축구가 훨씬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콘테시절이랑 포스테코글루 시절이 달라진 건 크게 보면 딱 하납니다. 메디슨이 있느냐 없느냐.
벤투때랑 지금이랑 한국 국대 멤버도 딱히 달라지지 않았어요. 이강인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게임 내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강인이라는 선수가 딱 그런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황인범 이재성 정우영 다 좋은 선수들이지만 플레이 메이커들은 아니죠.
그래서 이강인이라는 선수를 쓸 줄 몰랐던 벤투는 절대 좋은 감독이라고 인정할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