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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1-10 09:44
[잡담] 한국이 유럽같이 될 수 없는 이유
 글쓴이 : 어미새
조회 : 1,328  

유럽에 가본 분들은 아마도 느낀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세 달 동안 유럽을 떠돌아 다니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아, 이래서 유럽이 전체적으로 축구를 잘하는구나 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느낀 이유는 단순해요. 할 것이 없습니다. 

일단 유럽 사람들은 뭘 하고 노는지 우리와 비교해 보죠. 
우리 어린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뭐 태권도부터 컴퓨터에 무용에 농구에 발레에... 
뭔가 시대의 트렌드라는 것이 있어서 부모들은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자식에게 뭔가를 가르칩니다. 
어렸을 때 태권도 학원 안 가본 사람이 몇이나 되고 외국 여행 안가본 아이가, 노래방 안가보고 PC방 안 가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중학교 이후로는 점점 유흥문화에 대한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20살 이후가 되어 봉인 해제가 되고 나면 지구에서 도대체 여기보다 유흥거리가 많은 곳이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한국, 특히 서울에는 즐길거리가 많습니다. 

그에 비해서 유럽 도시에 가보면 의외로 할 것이 축구 말고는 없다시피 합니다. 
그나마 대도시, 런던이나 파리같은 곳에는 유흥문화가 발달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조차도 파티나 클럽, 맥주 마시는 곳 같이 뻔한 수준이지 한국처럼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이 튀어 나오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지독하게 보수적인 유럽의 분위기도 한 몫 하겠죠. 
사회가 잘 바뀌지도 않고 굳이 바꾸려고 하지도 않아요. 
그저 오래 전부터 유지되고 있는 형태를 2020년대에도 그대로 이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하루가 시작하면 주어진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일이 끝나는 6시쯤 되면 시골동네에서는 집에서 가족들과 조용히 시간을 보내거나 정원이나 가꾸고 도시라면 10시 정도까지 친구들을 만나서 맥주를 한 잔 하다 집에 들어가서 책이나 보고 와인 한 잔 하면서 대화하다 잠들고, 그 지루한 일상을 5일 보내고 나서 주말에는 클럽에서 주 중에 쌓인 지루함을 털어내려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몸을 흔들거나, 축구장에 가서 소리지르고 상대방을 모욕하고 술을 처붓고 웃통을 까고 그렇게 작은 일탈을 즐기고 다시 한 주를 맞이하는 것이 아주 평범한 대다수의 유럽인들(지역이나 국가를 가리지 않고 공통적인)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러니 축구 산업이 이렇게 클 수 밖에 없겠죠. 
사람들의 모든 에너지와 돈이 쏠리는 몇 안되는 유흥문화이다 보니 축구 선수를 꿈꾸는 어린이들이 많을 수 밖에 없고 좋은 축구장이 필요하고 멋진 유니폼이 필요하고 좋은 선수들이 필요한 겁니다. 

유럽 여행을 가서 돌아다니다 보면 공원이 유독 많고 10대 20대 젊은애들이 서너명씩 그저 벤치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거나 축구공 가지고 노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한국애들처럼 최신 유행도 알아보고 옷도 사고 신발도 사고, 꾸미고 홍대든 성수동이든 가서 커피 마시고 쇼핑을 하거나 맛집 찾아다니고 인생네컷 찍고 노래방 가고, 온갖 덕질에 취미를 붙이고 시간을 보낼 컨텐츠 자체가 없어요.  
 
할 것이 없으니 맨날 하는게 공원에서 수다떨거나 책 보는 일이고 활동적인 사람이라면 공 가지고 노는 것 혹은 스포츠밖에 할 것이 없는 겁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살다 보니 당연히 자기 동네 축구팀 경기를 보면서 컸고 축구를 하면서 자랐고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축구 유니폼 사고 축구장 가는데 돈 쓰는 걸 보고 따라다녔으니 어렸을 때부터 고향팀을 응원할 수 밖에 없으며 주말에 할 것이 축구장 가서 술마시고 욕하는 것 밖에 없으니 축구 문화가 견고해질 수 밖에 없겠죠. 

물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 유럽의 이런 오랜 전통과 문화가 부러울 수도 있고 우리도 저런 축구문화가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싶겠지만 한국은 일단 이사도 자주 다니고 어렸을 때 축구 말고도 할 것이 넘쳐나는데다 새로운 것이 계속 튀어나오고 크면 클수록 세상 보는 눈이 점점 더 넓어지는데 이게 가능할까요? 

물론 프로야구라는 아주 좋은 성공사례가 있습니다. 
뭐 그럼 야구는 엄청 특별해서 성공했냐? 라고 할 수도 있습지만, 야구와 축구는 근본적으로 결이 다릅니다.  

야구는 스포츠라기 보다는 레포츠에 가깝게 접근이 가능한 운동이라는 거죠.  

일단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됩니다. 
게다가 야구는 중간에 텀이 계속 발생합니다. 
1회초가 끝나고 쉬었다가 1회말이 시작되고 이게 9회초까지 17번이나 발생하죠. 그 사이에 음식을 사러 가도 되고 담배를 피워도 되고 그저 평범한 주제로 다른 얘기를 하면서 경기를 봐도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마치 한강 시민공원 가서 치맥하듯, 탁 트인 시원한 풀밭을 보면서 두런두런 얘기나 하고 사람 구경 하면서 즐길 수가 있어요. 그래서 가족이 놀이동산 가듯이 가서 먹고 즐길 수가 있는 스포츠입니다. 

하지만 축구는 하프타임 15분을 제외하면 한 순간도 공 뿐 아니라 오프더볼 상황에서의 선수들 움직임까지 눈을 계속 굴리면서 집중해서 봐야 하는 대단히 타이트한 스포츠입니다. 즉 축구장을 간다는 의미는 놀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팀이 이기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하고 승리를 만끽하겠다는데 있습니다. 한화나 롯데같이 맨날 지는 팀 팬이어도 다같이 봉다리 뒤집어 쓰거나 배 튕기면서 노래 부르고 치킨 뜯는 맛으로 즐겨도 그걸로 충분한 레포츠가 아니라 상대방 찢어 죽이는 맛을 보러 가는 곳이라는 거죠.

그러니 기본적으로 축구는 우리팀과 상대팀에 대한 명확한 구별이 존재해야 하는데, 한국이란 나라가 뭐 그리 지역감정이 대단하다고 상대방에 대한 경멸이나 자기팀에 대한 충성심이 있겠습니까. 
수원이나 부천이나 나 뭐 그리 서로 미워할 일이 있고 이겨야 하는 동기부여가 있겠냐 이거죠. 

그래서 프로축구엔 영 관심도가 떨어지는 사람이어도 한일전 같이 동기부여가 명확한 경기에는 전투력이 급상승하는 거라 봅니다. 유럽 축구는 자기 팀의 매 경기가 한일전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왜 그렇게 한경기 한경기에 목숨을 거는지 이해가 갈 법도 하죠. 만약에 매 주 한일전을 시즌제로 운영한다면 매 경기 경기장이 미어 터지지 않을까요? 저라면 아주 자주 갈 것 같은데요. 

그런 이유로, 저는 유럽 축구가 부럽기도 하고 멋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왜 그럴 수 밖에 없는 지를 생각해보고 나면, 한국이 나은 것 같습니다. 
할 게 축구밖에 없고 즐길게 축구밖에 없어서 매 주 축구장 가는 낙으로 5 일을 변하지 않는 느려 터진 곳에서 지루하게 살면서 평생을 보내고 싶진 않거든요. 

한국 사람들, 변덕스럽고 까탈스러울 뿐 아니라 지기 싫어하고 지 잘난 줄 압니다. 
그래서 맨날 정치얘기로 멱살 잡고 싸우고 허구헌날 일본이랑, 중국이랑 비교하면서 어떻게든 이기려고 지지고 볶으면서 살고 있고 감정 기복도 심해서 나라 전체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정신이 없습니다만, 이 정신없는 한국 특유의 다이나믹함이 저는 좋습니다. 그래서 웃었다 울었다 화났다 슬펐다 하루하루의 이벤트들을 따라가기도 바쁜 여기에서 살면서 여유가 필요하면 그 지루한 동네 놀러 가서 축구 경기 보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네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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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점수는요 24-01-10 10:26
   
어느정도 일리 있는 의견이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면

모태신앙처럼 아이들을 축구장으로 이끄는 가족문화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국도 스포츠 산업이 발달하려면 부모세대가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하는 문화가 커지면 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은 과외 시키기 바쁘죠.

우리세대만 해도 태권도, 미술, 웅변, 피아노, 바이올린 등 많은 것들이 활성화 되었었지만.
우봉 24-01-10 11:38
   
오죽했으면 영국 국민을 크게 둘로 나누면
축구를 하는 사람 아니면 축구를 보는 사람
두 부류라고 할까요
노림수왕 24-01-10 13:15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동남아가 축구 인기가 많은것도
남자들이 일자리도 없고 낮에 할 일이 없으니 대낮부터 펍에서 맥주 마시며 해외축구 보다가 팬이 되었죠
할 게 없어서 유일한 즐길거리 축구가 인기 많아지는게 대부분 축구가 인기있는 나라의 공통점이긴 합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특이한게
현재 k리그 흥행을 봐도 손흥민의 대활약으로 유툽 등으로 해축을 접한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손흥민팬, 이강인팬이 되면서 국내 축구선수 팬으로 이어지면서 흥하는 게 크다고 봅니다
방송으로 축구예능 하면서 말 그대로 유행처럼 인기가 올라온거죠

그래서 국대경기 현장에 젊은 여성팬이 과반을 넘는 신기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거죠
마치 아이돌 팬질하는 거랑 비슷한데 이게 좋은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다른나라와 다르다는건 확실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