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벤투가 한국국대 감독을 맡은 뒤 하려는 축구가 뭘까요?
벤투가 한국국가대표 감독이 된지 3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벤투가 무슨 축구를 하려는 건지 이해 못하고 계신 분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김판곤위원장이 벤투축구를 설명하는 영상이 유투부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 영상 찾아서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자, 일단 제가 벤투 축구를 설명드리겠습니다.
벤투는 한국이 오래전부터 해오던 축구를 180도 반대로 바꾸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이 잘하던 부분을 강화하고 안 되던 부분을 보완하자는 것이 벤투가 한국축구에 제시한 것입니다.
여기서 한국이 원래부터 잘하던 부분은 '숏카운터'입니다.
그리고 한국이 잘 안되던 부분은 '빌드업'입니다.
즉, 벤투는 한국축구가 원래부터 잘하던 '숏카운터'는 강화하고 잘 안되던 '빌드업'은 보완하자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벤투 축구를 '빌드업축구'라고 오해하시는데, 황희찬의 말처럼 빌드업은 축구의 기본이라 빌드업축구라는 말 자체가 이상한 말이고 빌드업을 안하는 축구는 없죠.
그래도 편의상 '빌드업축구'라는 말을 사용하자면, 벤투는 '빌드업축구'를 하자는 것이 아니고, 한국축구가 빌드업에 매우 큰 약점이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빌드업이 향상된 축구를 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한국 축구선수들 수준에 맞는, 한국 선수들이 할 수 잇을 법한 빌드업 기술을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있는 것이죠.
그럼 한국이 원래부터 잘하는 '숏카운터'는 뭐냐?
숏카운터는 상대팀이 공을 갖고 막 공격을 나오려는 때 한국팀이 전방압박을 통해 높은 위치에서 공을 빼앗아서 역습하는 것이 숏카운터입니다.
손흥민이 푸스카스상을 받은 번리전 골은 숏카운터 골이 아닙니다. 우리팀 수비지역에서 부터 긴 역습을 통해서 골을 넣는 방식은 한국팀의 장기가 아닙니다. 물론 그런 긴 역습골을 독일전 손흥민의 골처럼 한국팀이 종종 넣기는 하지만, 한국팀이 A매치 경기에서 넣는 골의 대부분은 긴 역습골이 아니고, 높은 위치에서 공격 나오는 상대팀 공을 빼앗아 짧은 역습으로 골을 넣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상대팀 입장에서는 공격하러 나오다가 공을 빼앗기기 때문에 미쳐 수비가 갖춰지지 않는 혼란한 상황이되고 그 때를 노려 한국팀이 골을 넣는 것이죠.
보통 이런 골은 마치 개싸움을 하는 와중에 우연히 공이 한국선수의 발에 걸려 우당탕탕 하는 느낌을 골이 들어가기 때문에, 마치 실력으로 골을 넣은 것이 아니고 우연히 골을 넣은 우당탕탕 골 처럼 느껴지는데, 이건 운이 아니고 실력으로 넣는 골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한국이 오래전부터 전방압박을 잘하고 숏카운터로 넣는 장기가 있는 팀이라는 것이죠. 한국축구의 특색입니다.
보통 외국 감독들이 한국 축구를 평가할 때 기동력이 있고 많이 뛴다라고 얘기하는데, 바로 숏카운터를 잘하기 위해선, 많이 뛰는 선수, 기동력이 있는 선수, 순발력이 있는 선수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한국축구는 기술 좋고 공을 예쁘게 차는데 체력이 부족하고 활동량이 부족하고 순발력이 부족한 선수들은 국가대표로 뽑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장, 현재도 이강인이 바로 그런 선수죠. 공을 예쁘게 차지만 활동량과 순발력이 부족해서 벤투가 이강인을 뽑지 않는 겁니다.
왜냐면, 벤투는 한국 축구의 장점인 숏카운터 축구의 전통을 살려 현재도 숏카운터를 주무기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전방에 활동량이 많고 체력이 좋고 순발력이 좋은 선수들을 국대로 뽑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럼 벤투 이전과 벤투 이후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졌는가.
벤투 축구가 뭐가 달라졌는지 쓰려면 너무나 쓸 게 많아서 글이 엄청 길어집니다.
예를 들어 벤투 이전에는 풀백이 상대 마크를 받으면서 크로스를 했으나, 벤투는 약속된 플레이를 통해 풀백이 상대팀 선수의 마크가 없는 상태에서 크로스를 올릴 수 잇게 된 점처럼. 벤투는 약속된 부분전술이 많다는 점에서 기존 한국감독들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지니까 벤투 축구에 대해서 상세한 부분은 다 생략하고
한국축구는 벤투 이전에 어떤 축구를 했냐면,
숏카운터를 하기 위해선 일단 전제 조건이 공 소유권이 상대팀에게 있어야 합니다.
숏카운터라는 것 자체가 상대팀이 공 소유권을 갖고 공격해 올라오는 것을 달려들어 공을 빼앗아서 짧은 역습으로 골을 넣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 숏카운터 방법은 상대 수비가 흐트러진 순간을 노려 골을 넣는 것이기 때문에 골을 넣을 확률은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면 숏카운터를 하기 위해선 공 소유권을 상대팀에게 넘겨주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공 소유권이 상대팀에게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한국선수들은 상대팀 공격에 수동적으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럼 주도권을 갖고 공격하는 쪽보다 끌려다니는 쪽이 빨리 지칩니다.
그래서 '체력 문제'가 발생합니다.
벤투가 한국축구에 부임하기 전에 한국 축구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체력 문제였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예전에 비해 한국축구선수들이 체력이 약해졌다느니, 깡이 약해졌다느지, 정신력이 약해졌다느니 비판했지만, 사실은 한국선수들이 다른 나라 선수들에 비해 체력이 약하거나 정신력이 약해서가 아니고 경기 주도권을 내주는 축구를 하다 보니 빨리 지치는 축구를 해왔던 겁니다. 그런 축구가 점차 (체력의) 한계에 부딪친 것이고요.
그래서 벤투가 제시한 것은 한국팀이 주도권을 갖는 시간을 늘리는 축구입니다. 물론, 한국이 주도권을 갖는 축구를 하는 것이 체력 때문만은 아니지만, 체력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말씀이죠.
벤투가 한국국대 감독이 된 후 단 한국 축구는 체력 부족 문제가 사라졌습니다. 그건 한국선수들이 갑자기 체력이 좋아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한국이 주도권을 갖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에 그만큼 경기 중 체력이 세이브 되어서 체력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자, 정리해봅시다.
벤투가 하려는 축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공 소유권을 갖고 있을 때 예전처럼 골키퍼가 전방으로 멀리 뻥 차서 쉽게 상대팀에게 공 소유권을 넘겨주는 것이 아니고,
최대한 우리가 공 소유권을 갖고 주도하는 축구를 합니다.
물론 이게 느린 패스를 통한 지공을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벤투가 의도하는 것은 공을 우리가 갖고 주도하되, 왼쪽, 오른쪽으로 방향전환을 빠르게 해서 상대팀을 왼쪽으로 몰았다가 오른쪽으로 몰았다가 마치 양떼를 몰아치는 것처럼 좌우로 흔들다 보면, 상대 수비에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을 공략해 골을 넣는 것이 우리가 공을 갖고 있을 때의 공격 목표입니다.
물론 상대 팀이 수비를 갖추기 전에 롱킥으로 상대팀 배후를 한방에 찌르는 역습도 기회가 있으면 합니다. 틈이 있으면 틈을 찌르고 틈이 없으면 좌우로 흔들어서 틈을 만든다. 이게 한국이 공을 갖고 있을 때 공격 방법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하프스페이스'를 공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자, 이런 목적을 가지고 공격을 하다가 보면 어느 순간에는 공을 빼앗겨 공 소유권을 상대에게 넘겨 주겠죠.
그러면 전방에서 부터 체력 좋고 활동량 많고 순발력 좋은 선수들, 조규성, 황희찬, 손흥민, 이재성, 황인범 이런 선수들이 상대진영부터 달려들어서 공을 빼앗아 숏카운터를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득점 루트 중 하나입니다. 이건 그리고 원래 한국이 오래전부터 잘했던 전통적으로 잘했던 한국축구의 특장기입니다.
전방압박을 통해 공을 탈취하지 못하더라도, 전방압박을 통해 상대팀 공격이 나오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가 공격하는 속도를 늦추는 데 성공하면 그 틈을 타서 한국은 수비블럭을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벤투가 이런 축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이 좋고 골을 잘넣더라도 '체력' '활동량' '순발력'이 안 좋은 선수는 왠만하면 국대로 안 뽑는 것이죠.
즉, 벤투는 원래 한국이 잘하던 숏카운터는 계속한다.
원래 못하던 빌드업 부분, 경기를 주도하는 부분을 강화해서 한국팀이 경기를 주도하는 시간을 늘려서 1.체력 문제를 해결하고, 2.숏카운터가 아닌 다른 루트로 골을 만드는 루트를 늘린다.
이게 벤투 축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