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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3-20 06:32
[잡담] 차범근이 AC밀란을 못갔던 이유...
 글쓴이 : 이멜다
조회 : 1,900  

1980년대 분데스리가에는 큰 재정적 위기가 찾아왔고 많은 대형 선수들이 해외로 이적하기에 이른다. 프랑크푸르트 역시 이런 재정적 위기를 피해 가지 못하고 차범근을 비롯한 주력 선수들을 매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특히 차범근의 이적은 당시 분데스리가에서도 상당한 이목이 집중되던 사안이었다. 독일의 대표적인 축구 전문지였던 키커에서도 '차범근이 없는 프랑크푸르트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타이틀을 내걸며 차범근의 이적에 따른 프랑크푸르트의 전력 손실과 그로 인한 영향에 대해 다루는 특집 기사를 쓰기도 했으며 '숨바꼭질하는 차범근, 모두를 안달 나게 하다'라는 타이틀과 함께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차범근에게 오퍼를 넣었던 함부르크 SVFC 바이에른 뮌헨1. FC 뉘른베르크바이어 04 레버쿠젠VfB 슈투트가르트를 비롯하여 세리에 A의 SSC 나폴리AC 밀란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등 각 구단들의 조건들을 비교하며 뚜렷한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던 차범근의 이적 향방을 다루기도 했다.

기사에 따르면 이외에도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 등 다른 나라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여러 구단 중 가장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팀은 AC 밀란으로 이탈리아 생활에 필요한 집과 차는 물론 자녀들의 학비를 지원해 줄 뿐 아니라 프랑크푸르트에서 받던 연봉을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국가에 내는 연봉의 세금을 구단에서 전액 부담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Cha Bum-kun is willing to help his old friend Jurgen Klinsmann < Asia <  NEWS < 기사본문 - 풋볼아시안





차범근 역시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의 우승국이었던 이탈리아에서 뛰고 싶은 의중을 비췄다고 하는데 사실 차범근은 이 당시 부동산 사기로 인해 자금적인 문제가 크게 온 상황이었어서 당시 막대한 자본으로 세계 유수의 선수들을 모으던 이탈리아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상황인즉, 차범근은 1980년 재계약을 맺은 뒤 프랑크푸르트의 부회장이자 건축업자였던 볼프강 젠커( Wolfgang Zenker)에게 약 90만 마르크(당시 약 2억 7천만 원 상당) 금액으로 바트필벨(Bad Vilbel)에 위치한 저택을 매입했는데 알고 보니 원래 부동산 가격의 2배를 더 주고 매입한 것이었다. 이는 당시 차범근의 회계 담당이었던 홀게르 클레머(Holger Klemme)에 의해 밝혀졌는데 매입할 때 구입 금액의 50만 마르크를 융자 받아 매년 4만 5천 마르크의 이자를 내고 있던 차범근은 젠커 부회장에게 강하게 항의하며 이자 납부를 중지하게 된다. 하지만 법에 저촉되지 않게 미리 조치를 해놓았던 젠커 부회장은 오히려 이것을 꼬투리 잡아 법적 절차를 통해 차범근의 급료를 압류처분하는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였다. 부동산 사기의 피해자였던 차범근은 융자금을 낼 수도, 집을 팔수도 없는 와중에 급료까지 압류당하는 상황에 처해버린 것인데 결국 해당 사안이 수면 위로 올라와 팬들을 비롯한 서독 사회의 맹렬한 비난을 받으며 젠커 부회장은 파면되었고 프랑크푸르트 이사회 자체가 와해되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들과는 별개로 여전히 부동산을 처분해야 했던 차범근은 당면한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풍족한 조건을 제시하던 이탈리아로 이적을 타진했는데 하필 이 시점에 법적인 문제가 있는 선수는 그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해외로의 이적이 불가하도록 분데스리가 이적 관련 법이 바뀌어버려서 합의 직전까지 갔던 이탈리아 진출은 무산되고 분데스리가 내에서 이적 팀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부동산 사기를 비롯해 당면한 상황에 진절머리가 난 차범근은 때마침 슈퍼리그의 대우 축구단에서 적극적으로 오퍼가 들어와 유럽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할지 고민했고 실제로 한국에 한동안 체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좀 더 유럽 무대를 경험하고 싶다는 일념 하에 서독에 머물기로 한 차범근은 상황을 주시하며 기회를 엿보던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프랑크푸르트의 재정악화와 부동산 문제로 인해 당시 고 연봉자였던 차범근은 83/84 시즌 레버쿠젠으로 이적하게 된다. 바이엘 주식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던 바이어 04 레버쿠젠은 프랑크푸르트에 이적료 100만 마르크(당시 약 3억 2천만 원 상당)를 지급하였고 차범근과 연봉 52만 마르크(당시 1억 5천6백만 원 상당)에 계약했는데, 이는 당시 레버쿠젠 구단 최고 연봉 및 분데스리가에서 6번째에 해당하는 수준이었으며, 구단 역사상 최초의 비유럽인 및 아시아 선수이자 세 번째 외국인 선수 영입에 해당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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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끽 23-03-20 08:26
   
부회장이 사기를 침 ㅋㅋ
정말 웃기는 새끼들이네
galivee 23-03-20 10:54
   
프랑크푸르트 이 개셰퀴들은 이번에 나폴리에 와서 깽판치더니 조카튼 역사를 가진 구단이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