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중국 관영 CCTV의 보도에 의하면 아주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시 주석은 박근혜대통령에게 <항일전쟁기념식>을 공동으로 주최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두 정상이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토대로 공동"항일"의 정신적 연맹을 맺으려는 것 같은데 역사의 진상은 그렇지 않다. 한 마디로, 한국은 "항일"이라고 말할 자격은 있나?
한국의 근대사는 2차대전당시 프랑스가 겪었던 변화와 매수 흡사하다. 즉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했는데도 불구하고 위키로 수도를 옮긴 페탱정부가 여전히 프랑스의 합법적인 정부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드골을 비롯한 사람들이 런던에서 “자유프랑스인”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맹군이 주축국들을 저항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맨 처음에는 망명정부라고도 할 수 없고 정치적 주장만 내세울 수 있었던 그들의 세력은 국세가 역전됨과 함께 프랑스의 합법적인 정부로 탈바꾸게 되었다.
원래 중국의 속국이였던 대한제국도 마찬가지이었다. 1910년에 일본과 조약을 체결해 일본과 하나의 나라가되었다. 대한황실들도 일본황실에 병합되었다. 그때부터 한반도는 일본제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지위는 일본제국과 똑같았다. 그 후부터 1937년에 벌어진 지나(중국)에 대한 선언없는 전쟁이든 1941년에 진주만 미군에 대한 공격이든 한국관민들은 세금을 내거나 태평양전쟁을 지지하려고 군대에 가입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전쟁을 위한 군대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중 최고급의 한국사람은 중장이었다(이은, 홍사익등). 또한 1948년부터 1969년까지의 20년간 한국육군참모장은 모두 일본군관출신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그중의 하나이었다. 그래서 이차 대전 당시의 한국에 있어서는 일본이 합법적 정부이었다. 그럼 “항일”전쟁을 기념할 명분은 있을까?
일부 한국 민족주의자들은 1919년에 상하이에서 소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설립하였으며 1938년에는 “조선의용대”가 우한에서 성립되었다. 조선의용대는 중국국민당중앙위원회의 소속이고 자금과 식량지원도 거기서 받았다. 1940년에는 당시 총칭정부의 지원으로 “한국광복군”이 설립되었고 직접 국민당군사위원회에 속하였다. 이차 대전 이후 한국정부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드디어 독립되었다. 이렇듯 언제나 미국과 일본의 지배를 받아온 한국은 자신의 역사를 정의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한국은 역사에 속은 유일한 “소중화”가 아니다. 대만당권자들도 오늘 중산기념당에서 “영광은 언제나 철혈의 전사에게 있으며 불사의 항일정신은 길이길이 빛난다”를 주제로 한 “칠칠항일전쟁승리 및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