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
이제 막 도착한 것인지 이미 자신보다 먼저 와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쿄에게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다만 의외였다. 자신보다 먼저 야가미와는 구면이었다손 쳐도 그가 굳이 야가미 이오리란 사내의 죽음을 애써 위로하기 위해 찾아올 정도로 야가미 가문과 좋은 관계가 아님은 아들인 쿄 자신도 알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언제나와 같이 변함 없는 복장으로 자신보다 박대 받았으면 더 박대 받았지 결코 이 장소에서 환영받을 인물을 되지 못할 아버지란 남자를 마주본 쿄는 드물게도 차분한 투로 먼저 운을 떼었다.
"나야 여기 당주였던 놈만 제외하면 딱히 박대하는 사람이 없어서 대놓고 와도 별반 문제는 없지만 아버지는 얘기가 다르지 않수?
어릴 때 봤던 코찔찔이 꼬마놈 죽은게 공연히 슬퍼서 찾아올 정도로 감수성 풍부한 분도 아닐게 당연한데 어쩐 일로 여기까지 왔어요?"
"...나도 알고 싶다. 무슨 생각으로 여길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정신 차리고보니 여기더라. 게다가 네 녀석 보다 더 먼저왔어도 별 박대 안받았으니 너만 박대 받지 않는다는 착각은 관둬. 그 코찔찔이 꼬맹이 아비란 자식 외엔 나도 이 가문 사람들에게 딱히 면식도 없고 문전박대 당할 만큼 악연이 깊은건 없으니까. 희한하게 당주끼리 외엔 가문 사람들은 서로 감정이 없는건 양가 모두 마찬가지더군. 선대 때는 가문 사람들끼리 우연히라도 마주치면 못볼거 봤다는 듯 피하던지 싸우던지 했다는데 이젠 그런것조차 없어질 정도로 오로치나 삼신기에 대한 것들이 희석되었다는 건지 모르겠구나. 야가미 당주가 죽었으니 딱히 대를 이을 후계가 없다면 정말 이제 삼신기는 신화로만 존재하는 것들이 되겠지. 야타 일족에겐 여러모로 안된 일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카구라 쪽 사정까지 챙기는걸 보니 아들한테 떠넘겼다곤 해도 쿠사나기 정통 후계는 맞나 보네요. 그딴거 다 상관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보단 그래도 충실하게 살았다고 자부한다, 녀석아. 그나저나 '그' 야가미가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는군. 제 아들이 죽었는데도 얼굴하나 안 비치는 그 자식도 그렇고 참 알 수 없는 일족이야."
"...그러는 아버지는 내가 죽으면 슬퍼할거유? 보니까 야가미 가문에서 당주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이라곤 동생이라는 여자 뿐이던데. 동생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수다. 안닮은게 다행이긴 해도 친동생이라면서 너무 안닮아서 어이가 없었더랬지."
"저들대로 슬퍼할지 모르지만 너무 정적이긴 하다. 가문 특유의 내력일지도 모르지만 여하간 네녀석이 나보다 먼저 죽는다면 적어도 고얀 마음에는 울어줄테니 걱정 마. 읏차-"
여전히 곱게 말하는 법이라곤 쥐뿔도 모르는 아들에게로 괘씸해서라도 절대 안울어줄거라는 말도 안돼는 다짐을 하며 아버지는 아들을 등지고 먼저 걸음을 떼었다.
세상 일에 관심이 없는 만큼 세상의 눈에 띄는것도, 그들에게 간섭 받는 것도 싫어하는 야가미 일족의 특성 때문인지 본가부터가 인적도 드문 산속에 위치한지라 드높은 계단을 쉼 없이 밟고 밟아야 함에 부자는 치를 떨었다.
계단의 끝이 바로 산의 끝자락임을 모르는 바가 아님에 객이라곤 존재조차 하지 않을 듯한 이곳에 자신들을 제외한 객이 방문하고 있음은 나름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을런지 모른다.
더구나 그 객이 젊은 여자와 어린 아이라면 더더욱.
저 아래에서 아직 너댓살 정도 밖에 되 보이지 않는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부지런히도 계단을 오르고 있는 젊은 여인의 모습에 부자는 도무지 야가미 가문과는 인연조차 닿을 듯 보이지 않는 두 방문객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허나 이오리만큼은 아니더라도 남 일에 별반 관심이 없는 쿄는 이내 곧 두 사람에게서 관심을 거두며 지겹도록 이어진 계단의 끝에 다다를 즈음 다시 이곳에 찾아올 일이 있을까에 대한 혼자만의 생각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녀, 카구라가 정말 기적과도 같은 확률로 방계 출신 야가미 일족을 후계로 앉히기 위해 이곳을 찾아오면서 자신에게 끈덕지게 연락을 하지 않는 이상에야 스스로 다시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 일은 없으리라.
정말로 이대로 야가미의 대가 끊길지 아니면 카구라의 집념으로 삼신기의 명맥이 유지될지 미지수이나 어느 쪽이든 아마도 야가미 이오리란 남자가 삼신기로서 존재했을 때만큼의 일을 해낼 삼신기는 이후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제 아무리 부정하고 무관심하다 말했으나 누구보다도 삼신기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던 인물이 야가미 이오리였으니까.
지독히도 무관심하려 했으나 피와 운명이 이끄는대로 순응하던 그는 그 자신을 끝으로 어쩌면 일족의 저주가 끊기길 바랐던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만큼 피의 폭주를 심하게 일으켰던 선대가 없다고 했을 정도로 그가 일으킨 폭주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자아를 붕괴시키고도 남을 정도였건만 그런 그가 그나마도 보통의 극소수라고 말하기도 힘들 정도의 인간들과 그 나름의 방식으로 어울리며 지내온것이 기적 그 자체였으니까.
아마 자신이라면 버티기는 커녕 가문을 저주하며 xx했을지언정 절대 그리 살진 못했을것이라 장담하는 쿄 였다.
저주를 물려받아 폭주를 일으키는 피로 하여금 그에게 고통과 쿠사나기 가문에 대한 증오 외엔 아무것도 남을 것이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마도 그는 쿠사나기 쿄라는 사내를 제 손으로 죽여서 그리도 원하던 염원을 이루지 못할 바엔 차라리 자신이 끌어 안고 있던 일족의 저주의 사슬이라도 끊고 싶어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