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제가 편의점 알바를 했을 때였습니다.
야간알바였는데. 야간에 정신 나간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해보신 분들 다 아실겁니다.
여튼 알바하다가 그때가 새벽 2시쯤이었는데 앳되어 보이는 애들 몇이 들어오더군요. 소주를 산다고 하는데 당연히 전 민증까보라고 했습니다.
뭐라더라, 민증 가져오는 걸 까먹었다고, 자기 여기 단골인데 한번만 넘어가달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워낙 앳되보이는 얼굴들이라 팔지를 않았죠.
그러다가 또 한명 들어오는데 먼저 들어온 애들에 비해 선배인 듯 했죠.
서로 뭐라고 쏙닥거리더니 선배가 이거면 되겠냐고 짜증스러운 얼굴로 민증을 내밀었죠. 음.... 고3에 바로 며칠 전 생일 지난.... 그런 민증이었습니다.
뭐,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몇몇 애들이 좀 뭉쳐있어서 무섭기도 했고 생일이 지났다면 팔아도 될 거 같아서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냉큼 소주 몇병을 들고 왔죠. 그리고 계산이 끝나고 나서.
"그럼 이건 이제 우리거네?"
이러더니 선배라는 애가 소주 한병을 후배들 중 한명에게 주었고 그 순간, 그걸 바닥에 던져서 깨뜨려버렸죠.
겁이 나서 어쩔 줄 몰라했는데 갑자기 그 애들이 절 한쪽에 있는 테이블에 강제로 앉히더니만.
"아저씨, 인생 그렇게 살지 마. 좋게 좋게 넘어가줬으면 얼마나 좋아? 엉? 그냥 가려고 했는데 아저씨 불쌍해서 내가 한마디 좀 할게."
이렇게 장장 2시간에 걸쳐 전 고딩들에게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억지 논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4시 넘어서까지 손님들이 한명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건 어떻게 보면 기적이었죠.
그리고 4시 쯤 그녀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다음에 보면 서로 웃으면서 보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편의점을 떠났습니다.
전....... 그제야 소주병 깨진 걸 치우고 소주 쏟아진걸 닦으며.....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꼈죠.
그 와중에 삥은 뜯기지 않아서....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