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사전적 의미에선 수입산 주류를 양주라고 하지만
토속주 인 소주 맥주 막걸리와 각종 곡주 외를 말하고자 한다.
제일 처음으로 양주를 접한건 중3 겨울방학때 친구집으로 놀러갔는데
거긴 파라다이스였었다고 기억에 강인하게 남아있다.
친구네 엄마는 속칭 복부인이고 아버진 외교관으로 해외에 출장이 잦아낮 시간대엔
거의 빈집이나 다름없었고 집안일을 해주시는 아주머니는 거의 마주칠 시간이 없었기에
연합고사를 치루고 난후의 우리에겐 남는것은 시간뿐이엿고 아지트가 되기엔 아주 적절했다.
하루는 집안의 장식장에 진열된 휘황찬란한 양주들이 눈에 들어왔고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친구놈을 쳐다봤을때 이미 눈치를 챈 친구는 주방에서 스트레이트 잔과 치즈를 손에 들고
우리에게 왔고 우리의 사냥은 시작되었다.
여러가지 술을 한잔씩 맛보는데 처음 마셔본 양주와의 첫만남의 기억은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입속을 들어가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데 마치 입에서 위까지의 고속도로가 뻥 뚫린듯함과
마신후의 확 퍼지는 알콜의 느낌 그리고 뒤이어 퍼지는 황홀한 향까지...
며칠을 두고 한병당 한잔씩 먹다 보니 이름 모를 양주들이 어느새 다마셔 봤을때 즈음엔
각자가 잘맞는 술이 생겼고 나는 그중에서도 올드파가 가장 좋았었다
다른 친구들은 조니워커나 잭다니엘을골랐지만 올드파가 좋았던건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하며
목넘김이 정말로 좋았었고 여타의 위스키 처럼 목넘김의 강렬함이 없어서 좋았다.
방과 후엔 출출해서 각종 분식이나 간식으로 한창때의 속을 채우곤 했었는데
지금은 짬뽕 짜장면이 보통 6000에서 8000원정도 하지만
내가 중학교 때는 짜장면이300원이고 짬뽕은 400원정도 했었다
간만에 큰맘먹고 짬뽕을 시켜 먹을때 배달하는 형이 몰래 마셔보라고 빼갈(고량주)을 줬는데
고량주는 당시 우리가 먹기엔 너무 쇼킹 했었던 맛으로 기억이된다.
그냥 맛이고 뭐고를 느낄새가 없이 훅 쳐들어오는 알콜의 짜릿함에 모두 얼어붙었던 기억이 있다.
꼬냑에 눈을 뜨다.
꼬냑을 처음으로 맛본게 신혼여행으로 사이판과 괌으로 여행을 떠나는 공항면쇄점에서
멋모르고 고른 헤네시 1lm 였다.
사이판으로가는 비행기가 저녁8시에 뜨는데 도착했을 시간이 거기 시간으로 아마 자정이 다되는
시간이였고 도착하자마자 피곤해서 잠을 청하고자 사온 술을 마시는데 집사람은 한잔을 마시고는
피곤한지 들어가서 자고 선배들의 전언으로 겁을 먹어서 안주는 냉장고 속의 얼음으로 마셨다.
그때 처음으로 맛본 촌놈의 꼬냑의 맛은 신세계였다.
첫모금을 입에 넣었더니 혀 깊숙히 뿌리부터 감겨오는 달달한맛과 진한 향이 나를 꼬냑의 세계로 인도했다.
신혼여행 내내 꼬냑을 마셨고 가이드와 사진기사와 함께 마시는데 사진기사가 허겁지겁 마셔대는데
나는 정말로 꼬냑을 좋아하나보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가이드가 귓뜸해준 말이
"사진기사는 조선족인데 저 촌놈들이 사장님이 아니면 어디서 먹어보겠어요"
나는 유창한 한국말에 조선족이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당시의 조선족 기사가 하는말이 사이판에 조선족 아가씨들이 많이 와서 봉제공장에서 일하는데
저녁이 되면 시내로 나가서 한국인들 상대로 몸을 판다는 소릴 들었다.
신혼여행으로온 나에겐 그림의 떡이였다. ㅎㅎㅎ
대체적으로 느꼈던 그 사진기사는 한국인들에게 호의적이였으며 아주 작은 베품에도 고마워했었던
순진한 동포구나 했었고 짜장들에게 매우 불만이 많았고 차별받았던 이야기를 했었던기억이 난다.
그리곤 레미마텡 까뮤 헤네시 등등의 꼬냑을 찾아 모으는 수집이 취미가 되었었다.
물론 완전히 수집이 목적이 아니고 마시는게 목적이였고 또 그게 소문이 나면서
아는 지인들로부터 선물을 받으며 나름 많은 종류와 등급별로 모았었다.
특히 내가 꼭 선물을 해야할 상대에게도 꼬냑을 선물리스트에 주가 되었다.
그간 모아왔었던 술들은 내가 뇌졸증으로 쓰러지고 난후에 친척 지인들에게 선물로 나눠주고
지금은 한병도 없는데 어찌보면 가끔씩은 한잔 생각이 날때와 커피에 꼬냑 한방울 타서 먹고싶을때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괜찮다라고는 의사가 말하지만 안보이면 안마시겠지....
지금은 그저 아름다운 추억으로 술에 대한 기억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