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노래를 바로 소개하기 전,
노래와 관련된 사연이 있어 적어 봅니다 (내용이 많이 길어요)
대학에서 맞는 3번째 여름방학.
강남역 인도에 보도블럭 까는 공사를 참여해 거의 공사가 마무리될 때 즈음
가끔 연락만 하는 친구에게 연락이 옵니다
친구(희수) : 야, 너 지금 알바 하는거 있냐?
나 : 응, 하나 있는데 거의 마무리 단계라 이번 주면 끝나 왜?
친구(희수) : 나 너네 집(이태원) 근처, XX노래방에서 일하고 있는 거 알지?
나 : 그래? 몰랐네.. 근데 왜?
친구(희수) : 내가 다음 주에 여친이랑 놀러 가는데 열흘 정도 나 대신 일 해줄 사람 찾고 있거든
나 : 그래? 다음 주 언제부터? 시급은?
친구(희수) : 시급 3,500원이고 시간은 오후 9시부터 아침 9시까지 콜?
나 : 갔다 오면 쏘주 한잔 사라
친구(희수) : 땡큐, 이번 주 시간 날 때 잠깐 들려, 노래방 사장도 소개해주고 업무인계도 해줄게
며칠 후 친구가 일 하는 노래방에 가서 인수인계를 받고 사장과도 인사했습니다
대충 인수인계가 끝나고 밥을 시켜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다 친구가 이런 이야길 합니다
친구(희수) : 야, 아침 6시나 7시 정도에 꼬맹이 둘 올 거야 근데 걔네들 손님 아니구
갈데없어서 여기 잠깐 와서 쉬다 가는 애들이거든
불쌍한 애들이니까 그냥 놔둬, 귀찮게 안 할 거야 애들 착하거든
나 : 그러다 짭새라도 뜨면 귀찮아지는 거 아닌가?
친구(희수) : 괜찮아, 여기 사장이 파출소 사람들이랑 친해서 단속 안 떠
나 : ..........
다음 주
친구 대신 땜빵 알바를 시작한 첫날
정신없이 일을 하다 아침 시간이 가까워져서야
약간 쉴 틈이 생겨 카운터에 앉아
"의외로 힘든데..." 투덜 되며 멍을 때리고 있었죠
그때, 손님이 들어온다는 신호를 주는 벨이 울리며 자동문이 열립니다
나 : 어서 오세.....?
꼬마숙녀A : 어? 희수오빠 그만뒀어요?
나 : (카운터 의자에 다시 앉으며) 애들 안 받는다 집에 가서 노래 불러라
꼬마숙녀A : 네?.... 뭐야....존나 재수 없어 이 오빠
꼬마숙녀B : 안녕하세요, 혹시 희수오빠 그만뒀나요?
나 : 희수 휴가 갔다, 근데 너흰 누군데 자꾸 희수를 찾아?
꼬마숙녀A : 오빤 누군데 자꾸 희수오빠한테 반말이에요? 그쪽도 무지 어려 보이는데 말야
나 : 너희보단 나이 많다, 귀찮게 하지 말구 애들은 언능 집에 가라
꼬마숙녀A : 정말 얼척없네....야 다른데 가자, 저ㅅㄲ 존나 재수 없다
지가 뭔데 우리보고 자꾸 애들이래
나 : 아! 애들이라 해서 미안, 어쨌든 꼬마들은 여기서 못 논다
꼬마숙녀B : 저기 오빠, 죄송한데 저희 여기서 한시간만 노래 부르다 가면 안돼요?
나 : 응 안돼, 짭새 뜨면 귀찮아져 너희 꼬마들이잖아
꼬마숙녀B : 저희가 근처 모텔에서 사는데 입실시간이 아침 9시부터 거든여...부탁드릴게요
친구의 이야기도 생각났고, 꼬마숙녀 B의 공손함에
비로소 아이들의 모습을 제대로 봅니다
절 잡아먹을 듯 한 눈으로 씩씩거리고 있는 꼬마숙녀 A는
조그만 얼굴 안에 커다란 눈코와 작은 입을 가진 미인형 아이였고
꼬마숙녀 B는 두껍게 화장을 했지만, 어린 티가 팍팍 나는 아이였습니다
둘 다 나이에 맞지 않은 어설픈 화장과
헐렁한 정장 그리고 자신들의 얼굴보다 큰 통굽을 신고 위태위태 하게 서 있더군여
아마도 가출해서 이리저리 떠돌다 어디 술집에서 일을 하나 보는구나...
근데 이런 어린아이들을 술집에서 받아주나? 란 생각이 들며 측은해집니다
나 : 몇 시까지 있을 건데?
꼬마숙녀B : 한시간만 노래 부르다 갈게요 오빠
나 : 너흰 미성년자라서 노래는 안돼, 그냥 여기 소파(손님대기용 소파)에 앉아있다 가
꼬마숙녀B : 정말 그래두 돼요? 오빠 고맙습니다ㅋㅋ
나 : 대신 나 귀찮게 하지 말구 여기서 담배 피우지 마라
꼬마숙녀B : 넵ㅋㅋ
이렇게 아이들과 안면을 트게 되고
그 후 비슷한 시간대에 아이들은 매일매일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들의 나이 때에 맞지 않는 인생사도 듣게 되었죠
꼬마숙녀A는 부산 사람인데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폭력에 못 이겨 초딩 5학년 때 집을 가출했고
서울에 친척이 있어 서울로 왔지만, 친척의 냉대에 못 견뎌 다시 거리를 해매다
벼룩시장 광고지를 보고 한남동의 룸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꼬마숙녀B는 천안 사람이고
할머니와 같이 살았는데
가난한게 너무 싫어
초딩 6학년 때 무작정 집을 나와 서울로 와서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다
어떤 아저씨의 소개로 한남동의 룸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둘은 한남동의 룸에서 만나 친해졌고 둘이 방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무작정 열심히 일을 할 거다 하더군여
나 : 너네가 일 하는 그 룸은 애기들을 일 시키네...어쨌든 너네는 안 힘드냐?
꼬마숙녀A : 아 진짜.. 애기 아니라구
나 : 응 그래, 꼬마숙녀 A야 안 힘들어?
꼬마숙녀A : 존나 힘들지... 나름 술 잘 먹는데도 이러네 그리고 진상들 너무 많아 개짜증 나
꼬마숙녀B : 오빠 꼬마숙녀 A는 진상만 보면 한 성깔 하거든
그래서 지배인 아저씨한테 많이 혼나ㅋㅋ
나 : 혹시 너희를 지명하는 손님들도 있어?
꼬마숙녀A : 당연하지ㅋㅋ 내가 한 미모 하잖아
꼬마숙녀B : 오빠, 우리 지명 손님 중에 XX경찰서 강력반 형사 삼촌도 있어
그 삼촌이 힘든 일 생기면 언제든 이야기하랬어
자기가 해결해준다구ㅋㅋ
하......이제 13살, 14살짜리 애들한테 형사라는 놈이 한다는 소리가.......
세상이 아무리 미쳐 돌아간데도 이건 아닌데....
정말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여
땜빵 알바 마지막 날, 아이들은 역시 찾아왔고 양손 가득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있더군여
꼬마숙녀B : 오빠, 오늘 오빠 일하는 마지막 날이라 우리가 한턱 쏜다ㅋㅋ
꼬마숙녀A : 우리 아무한테나 안 쏘거든, 영광인 줄 알아 (투덜투덜)
나 : ㅎㅎ 고맙다, 뭔데?
꼬마숙녀B : 떡볶이랑 튀김 사 왔지용~
우리는
노래방 카운터 한쪽에서 셋이서 신나게 먹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다 전 하나 제안을 했죠
나 : 너네 방 얻으려면 돈 얼마나 더 모아야 해?
꼬마숙녀A : 왜? 오빠가 돈 해주게ㅋㅋ
나 : 나도 거지인데 무슨ㅎㅎ
꼬마숙녀B : 글쎄... 아마 몇 달은 더 모아야 될 거야
나 : 그럼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나도 이제 곧 방학도 끝나고 일도 계속해야 해서 바쁘거든..
어쨌든 내가 아침 일찍 나가서 집이 비어
그러니 너흰 일 끝나고 애매한 1~2시간을 다른 데서 보내지 말고
내 집에서 쉬었다가 가, 어때?
꼬마숙녀B : 정말 그래두 돼요?
나 : 대신 내 집에서 술 담배는 절대 안 되고, 화장실 사용하고 나면 청소 깨끗하게 콜?
꼬마숙녀B : 넹~
전 그렇게 미리 복사해둔 집 키를 넘겨줬고, 일상으로 돌아갔죠
처음에는 이게 잘한 짓인가...? 라는 의문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가끔 아이들이 왔던 흔적 (청소흔적)과
왔다 갈 때마다 남기는 자신들의 안부와 고마움을 기록한 쪽지를 보며
내가 잘한 거 맞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날은 제 생일인걸 어떻게 기억을 했는지
침대 옆에 남성 스킨과 로션 세트 선물과 생일 축하 카드를 남겨뒀고
부엌에는 즉석 미역국으로 끓인 미역국과
반찬가게에서 파는 반찬 몇 가지를 그릇에 담아놓고 갔더군요
많이....아주 많이 고마웠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몇 개월 흘러 노란 은행잎이 거리를 예쁘게 해 주던 11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들은 쪽지를 남겨두고 갔더군여
"오빠 덕분에 우리가 돈을 빨리 모을 수 있던 거 같아요, 저희 집 계약했어요ㅋㅋ"
당시 이 내용을 보고 진심으로 기뻐했고
아이들을 불러 근처 태국 식당에 데려가
파티를 해줬죠
제 기억으로는 그 날 셋 다 신나게 웃으며 보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이후 아이들은 저의 집에 오지 않았고
각자가 바쁜 나날들을 보내며 서로를 잊어갔습니다
전 대학 졸업 후 군대에 입대를 했고 열심히 군 생활을 하던 시기
연휴가 낀 외박을 나와
오랜만에 이태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약속시간을 기다리며
이태원 버거킹 앞 계단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음악을 듣고 있었죠
그런데 누가 제 어깨를 탁 칩니다
뒤돌아 보니
모자를 쓰고 트레이닝복을 입은 어떤 아가씨가
놀란 토끼눈을 뜨며 절 보고 있습니다
아가씨 : XX오빠 맞죠?
나 : 누구....?
아가씨 : 오빠맞구나ㅜㅜ , 저 꼬마숙녀 B 에요
나 : 응? 아.....야 왜 이리 예뻐진 거야ㅎㅎ 몰라보겠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둘은, 버거킹 앞에서 호들갑을 떨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나 : 그래, 지금은 어떻게 지내, 잘 지내는 거지?
꼬마숙녀B : 저 지금은 강남에서 일해요, 돈도 제법 벌고 있지용ㅋㅋ
나 : 그래...너 아직 미성년자잖아 그런데도 받아주나 보네ㅎㅎ
꼬마숙녀B : 오빠, 난 이제 거기서 중견이에요, 나 보다 어린애들 많아요ㅋㅋ
나 : 그래, 그나저나 꼬마숙녀 A도 잘 지내지? 요즘은 같이 안 다니나 보네?
꼬마숙녀B : ......... 그 년 죽었어요
나 : 응?
꼬마숙녀B : 약 쳐먹고 자.살했어요
나 : 응?
꼬마숙녀B : 어떤 삼촌한테 일수 잘못 썼다가 빚 엄청 졌고 그것 때문에 무리하게 2차 나가다
우울증 생겨서 맛이 가버렸어요.......힘들다고 노랠 부르더니....ㅁㅊ년
이후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며 간단히 이야기하다, 서로의 바뀐 연락처를 교환 후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날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죠
꼬마숙녀B는 평범하게 살고 있다면 지금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겠네요
오늘 올리는 이 노래를 들으면
불후한 환경으로 인해 날개를 피지 못한 아이들이 생각납니다
날개를 피려 노력하다 악마들의 손에 의해 날개가 뜯겨 추락한 꼬마숙녀 A
날개를 피기 위해 많은 상처를 안고 극복하며 살아갔을 꼬마숙녀 B
꼬마숙녀A는 날개를 끝내 못 폈지만 꼬마숙녀 B는 날개를 폈기를 바랍니다
매년 11월이 되면
방을 얻어 너무나 행복하다던
그 아이들의 순수하고 맑았던 표정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