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눈을 감으면, 더욱 선명해집니다.
"갈게요."라는 그 한마디가
그녀는 울면서 떠났고, 사랑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이유도 영문도 모른채...
차거운 방바닥에 누워 삼일을 보냈습니다.
왜냐고 물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입이 얼어붙어서...
폐인이 된 제게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손길과 웃는 얼굴의 온기만 남아 있었죠.
그녀의 전화를 받은 건 3개월 후였습니다.
"너무 힘들어요."
그 말에 저는 대구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망쳐버렸기 때문입니다.
집착과 광기로 일년을 보냈습니다.
그녀의 몸과 마음을 학대했습니다.
미쳤었죠.
결국 해서는 안될 말까지 하게 됩니다.
"넌 결코 날 떠날 수 없어. 마음은 떠나더라도 네 몸은 내거야. 내가 원하면 언제든 달려와야 해!"
(신이 있다면, 용서해주세요)
그녀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알았어요. 그럴게요."
사육과 탐닉의 시간을 보내고, 그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녀를 보내줘야 한다는 것을...
이별을 비켜갈 수 없다는 것을...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1년 후, 그녀로부터 소포를 받았습니다.
매일 쓴 그녀의 일기였습니다.
눈물로 읽었고, 그것이 진짜 끝이란 걸 알았습니다.
일기의 마지막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엄마를 이길 자신이 없어요. 훗날 엄마가 돌아가시면 오빠한테 돌아갈게요. 그때는 내가 할머니가 되어 있을 거에요. 할머니가 되어도 받아줄 거죠?"
그리고 세월은 이십년이 흘렀습니다.
잊어버릴 법도 한데 이 놈의 기억은 망령처럼 되살아납니다.
잃어버린 기억이란 다만 잃어버렸을뿐, 없어진 건 아니니까요.
이제 20년 정도 남았네요.
그녀가 할머니가 되려면...20년 그까짓거 후딱 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