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굴러다니다 태국의 어느 해안가 호텔에 짐을 풀었다.
호텔이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규모이다.
동남아에서 5성급에 큰 규모의 호텔들은 주로 외국계 호텔이다.
로컬 호텔들은 중간급 이하가 많다. 태국도 마찬가지.
체크인을 하는데 리셉션 아가씨에게 영어로 질문을 하니
웃기만 할 뿐 대답을 못한다.
순간 근처에 있던 누군가가 잽싸게 온다.
자그마한 체구에 흰 피부를 가진 단발머리의 그녀는
아주 환하게 웃으며 유창한 영어로 내 질문에 친절하게 답을 해준다.
누구냐는 내 질문에 호텔 총지배인이라고 본인 소개를 한다.
이 순간이 내가 태국에 처음으로 투자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될줄이야
이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짐을 풀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호텔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호텔 내부에 있는게 아니라 길가 쪽에 오픈형으로 되어 있다.
큰 호텔이 아니다보니 호텔 손님들 뿐만 아니라 외부 손님들도 유치하기 위한
전략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지라 식당에 손님은 나 혼자 뿐인거 같은데
내 옆 테이블에서 누군가 서류를 보면서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게 보인다.
아까 그 총지배인이다.
날 보더니 반가운 얼굴을 하며
미리 정한 메뉴가 없다면 매콤한 태국식 스파게티와 라오스 맥주가
맛있다며 먹어보라고 권해준다. 말린 태국 고추와 매운 향신료가 들어간
태국식 스파게티는 매콤한게 먹을만 하다. 무엇보다 라오스 맥주가
내 맘을 사로 잡는다. 이걸 왜 여태 몰랐던걸까 싶을 정도로...
추천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한국인이시죠?"
"네"
"한국인들은 주로 5성급 최고 비싼 호텔들에 묵는지라
우리 호텔에 한국손님은 처음이에요 호호"
(*이 땐 몰랐지만 나중에 직접 경험을 통해 또 현지 호텔업계 지인들을 통해
당시 그녀가 한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요? ㅎㅎㅎ"
"태국엔 여행 오신거에요? 아님 출장?"
"출장은 아니고 그냥 여기저기 여행삼아 돌아다니고 있어요"
"어머, 부러워요 홍홍홍"
이렇게 시작된 그녀와의 대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그녀에 대해서도 조금 알게 되었다.
태국에서 ABAC 대학(*영어로 수업을 하며 태국 상류층 자녀들이 다니는 대학)을 나왔고
타이항공 본사와 외국계 항공사에서 근무를 했었고
지금은 이모의 부탁으로 이모 호텔인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동남아를 돌아다니는 동안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가 유창한
현지인을 만난건 그녀가 처음이었다.
당시 태국은 비수기라 바쁜 시즌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그녀의 영어가 유창해서 말이 잘 통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어쨋든 그녀와 매일 대화를 하는 기회가 생기면서
우린 점차 총지배인과 손님의 관계를 넘어
점점 더 친해지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