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지은 연회장에 모인 하객이 100명쯤 되는 것 같다.
무대에는 노래방 기계와 밴드가 있고 가장자리는
빙 둘러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고 연회장 가운데는
춤을 출 수 있게 비워 놨다.
이 연회장도 호텔 리노베이션의 일환으로 새로 만든 것이다.
오늘은 호텔 리노베이션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호텔 사장인 이모가 마련한 축하자리인 셈.
가족, 친척, 친구, 지인, 지역 유지들, 지역 공무원들, 이모 변호사 등
다양한 사람이 모였고 그 중에 유일한 외국인인 나도 있다.
난 몇 푼 안되지만 투자를 한 투자자인 동시에 가족의 친구 신분이기에
내 자리는 호텔 사장 부부의 옆자리에 마련되어 있다.
호텔에서 공들여 만든 음식들이 즐비하다.
술도 이것저것 많고...
신나게 먹고 마시는 와중에
누군가 술기운이 좀 오르기 시작했는지
앞에 나가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몇 몇은 연회장 중앙 홀에서 브루스를 추기 시작한다.
다들 박수를 치고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난 한 잔 하면서 오늘은 어떤 이쁜 언냐들이 왔나
므흣하게 둘러보고 있는데 이모가 나한테 노래 한 곡
불러 달라고 한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호시탐탐 나를 노리는 이모 친구들이
덩달아 한 곡 해달라며 박수를 쳐 대니 사람들이
다 쳐다 본다. 이거 참, 안 나갈 수도 없고...
춤은 왕년의 실력이 아직 죽지 않은 때였지만서도
노래는 영~아닌디...ㅠㅠ
할 수 없이 앞으로 나갔다.
연회라고 다들 쫙 빼 입고 왔는데
나만 반바지에 티 하나 걸치고 슬리퍼 신고 있었으니
아마 영락없는 걸베이(*거지)처럼 보였으리라...
'누구냐?'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린다.
마침 호텔 사장인 이모가 일어나서 내 소개를 대신 해준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 사업을 하는 한국인 사업가이고 내 친구다.
우리 호텔의 비전을 보고 호텔에 투자를 했고
조만간 옆 건물에 오픈할 스파에도 투자를 했다.
그리고 아직 총각이다. 관심있는 여성분들은 나한테 얘기해라"
이모의 소개가 끝나자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들린다.
오빠~소리도 들리고...
그 자리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을 할 수도 없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걍 놀러 온 관광객일 뿐이었는데
어느새 그렇게 난 본의 아니게 젊고(?) 유능한 글로벌 사업가로
둔갑해 있었다. ㅋㅋㅋ
다행히 노래책에 한국노래가 있었다.
곡명은 기억이 안 나는데 좀 신나는 곡으로 골랐던 것 같다.
형편없는 노래 실력으로 연회를 망치기 싫어서
노래 반, 춤 반, 공기 반, 소리 반 섞어가며 불렀다. 열심히..
연회장이 뒤집어졌다.
내가 춤을 너무 잘 춰서인지,
아님 다들 쫙 빼고 온 연회장에서 혼자만 반바지에 슬리퍼 신은
한국인이 지롤 떠는걸 처음 봐서인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한 곡 더 해달란다.
처음부터 안하면 안했지 일단 시작하면 안 빼는게 우리네 성격 아닌가?
이번엔 팝송으로 간다. 분위기 죽이는 걸로다.
간주 중에 어설픈 태국어로 "감사합니다. 다들 재미있으시죠?" 라고 말하니
와~하면서 다들 놀란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외국인들이 태국으로 관광도 가고
태국에서 장기거주하는 외국인들도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태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은 굉장히 드물기 때문에
외국인이 태국어를 하면 현지인들은 많이 놀라거나 신기해 한다.
여튼 그렇게 난 화려(?)한 안무와 세련(?)된 무대매너 그리고 유창(?)한 현지어를 앞세워
BTS보다 먼저 태국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돌 던지기 없긔 ㅋㅋ)
호텔 리노베이션에는 식당과 카페를 새로 꾸미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리노베이션 후 많이 깔끔해졌다. 직원과 메뉴도 늘었다.
호텔 숙박객과 주변에서 장기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주요 손님들인데
이들이 전부 유럽인들이다. 태국 현지인이나 동양인 손님들은 없다시피하다.
어느 날부터 내가 투자를 한 것을 호텔 직원들도 다 알았는지 나를 자기들 보스로 대우해준다.
문제는 그 날 이후 손님과 영어로 의사소통이 안될 때도, 무슨 문제가 있을 때도
직원들이 나한테 달려온다는거다ㅠㅠㅠㅠㅠㅠ
식당 직원 하나가 급하게 오더니 식당에 난리가 났다며 나보고 빨리 식당으로 와달란다.
무슨 큰 일이 났나 가보니 호텔 장기 투숙객이던 70대 유럽 노인네 한 분이 화가 많이 나서
직원들한테 큰 소리로 뭐라고 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진정하시고 뭘 도와드릴까요?" 라고 물으니 한참 전부터 소스를 달라고 했는데
아무도 안주고 먹던 음식을 방으로 가져다 달라고 얘기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어서 열 받았단다.
'소스'라고 했으면 아마 알아 들었을텐데 이 손님이 소스를 의미하는 dip이라고 얘기하니
직원들이 못 알아 들었고 dip에서부터 꼬이니까 방으로 음식을 가져다 달라는 말까지
덩달아 제대로 못 알아 들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방에 가 계시면 지금 바로 음식과 함께 소스 보내 드리겠습니다.
불편을 드린 점 사과드리는 의미로 커피나 후식이 필요하시면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니 커피 한 잔 부탁한다면서 본인 방으로 돌아간다.
손님들이 죄다 영국 등 유럽에서 온 손님들이다 보니 미국영어가 아니라 영국영어를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국영어와 다른 발음과 어휘 때문에 영어가 되는 사람도
정확히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종종 있다. 태국 직원들은 오죽하겠는가.
젊은 손님들은 참을성이 좀 있고 재치있게 바디 랭귀지라도 하지만 연세가 있는 손님들은
그렇지 않기에 상대하기 훨씬 더 어렵다.
어느 날인가는 카페 여직원 하나가 발발 떨면서 와서 하는 말이
술 취한 남자가 와서 처음엔 계산 안하고 가려고 해서 계산해달라고 하니
자기네를 때릴려고 하고, 지금은 그냥 가라니까 가지도 않고 있다며
빨리 어떻게 좀 해달란다.
아니...카페에 남자 직원들도 있는데 왜 또 나야? ㅠㅠ
가보니 30대쯤 되어 보이는 서양놈이다. 의자에 멍하니 앉아서 뭐라뭐라
혼잣말을 하는데 술 취했다는 여직원의 말과 달리 술냄새가 안난다.
아...약을 한 놈이다. 직감으로 알았다.
아...골 때리네. 약 먹은 놈은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어 난감한데
그래도 직원들은 내가 해결해주기만 바라고 다들 나만 쳐다보고 있으니...
목소리 깔고 "손님, 돈을 안 냈다고 들었는데 계산 해주시죠?" 라고 말하니
돌아오는 말이 돈이 없단다.
"그럼 가지고 있는 것만이라도 내고 가시죠?"라고 말하니
역시 돈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돈이 없는데 배 고파서 그랬다. 미안하다고 말했으면 그냥 보내줄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나오니 나도 모르게 열이 받아서 손님 어깨를 손으로 잡고
호주머니를 까보라고 했다. 그러자 호주머니를 뒤적이더니 꼬깃꼬깃 구겨진
지폐 몇 장을 꺼내서 주더니 다행히 조용히 나간다.
여러분들이 아실지 모르겠으나 태국에 여행 왔다 돈 다 쓰고 빈털털이가 되도
안 돌아가고 불법 체류하면서 구걸로 사는 서양인들도 일부 있다.
또 일부는 마약을 한다. 불법도박을 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끔찍한 일들도 많이 일어나는데
오늘은 얘기가 길어졌으니 이 이야기는 스파개업 얘기와 함께 다음으로 넘겨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