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어둡지도 너무 밝지도 않은 실내를 가로질러
무대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이번엔 마주 보는 자리가 아니라 옆으로 나란히.
무대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라이브밴드의 연주 소리가
내 마음을 살짝 들뜨게 한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hard rock cafe의 그 어떤 화려한 조명보다 더 빛나 보인다.
나란히 그것도 가까이 앉다보니
자연스레 서로의 한쪽 팔과 다리가 살짝 붙게 되었다.
팔과 다리에서 작은 불꽃이 튀는 것 같고
그 불꽃이 가슴 속에서 뜨거운 불기둥이 되어 솟아 오르는 느낌이 들 무렵
마침 주문했던 맥주가 나왔다.
시원한 맥주가 짜릿하게 목을 타고 내려간다.
가슴 깊은 곳까지 내려가서 이 타버릴 것 같은 마음의 불을 꺼다오.
그렇게 맥주를 반 병쯤 마셨을 때
그녀가 물었다.
"옵하, 결혼하셨어요?"
"아니! 아직..."
"그럼 여친은요?"
"없어"
"에이~진짜요?"
"응. 진짜"
"왜요?"
"그냥...혼자인게 편해서..."
"아...."
"그리고 지금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어서 누굴 사귀기도 그렇고..."
"그럼, 여친 사귈 생각은 없으신거에요?"
"글쎄...운명이라면 언젠가 만나겠지. 넌 운명이라는거 믿니?"
"네? 어떤...?"
"과거에 잠깐 스쳐 지나간 남녀가 2년만에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 그런거 말야ㅎㅎ"
"어머~옵하 ㅎㅎ"
순간 붉은색 조명이 비추었던걸까? 그녀의 얼굴이 살짝 발그레해 보인다.
You are my fire
The one desire
Believe when I say
I want it that way
Am I your fire?
Your one desire
Yes I know it's too late
But I want it that way
라이브 밴드의 연주가 끝나고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맥주를 각자 서너병쯤 마셨을까?
술기운 때문에 더웠는지 그녀가 손으로 부채질을 하는게 보인다.
"덥니?"
"네. 옵하두요?"
"응. 나도 살짝 덥네"
"아...수영하고 싶당 ㅎㅎ."
"그래? 그럼... 우리 수영하러 갈까?"
"진짜요? 근데 어디서요? 전 지금 수영복도 없는데..."
"아, 그건 걱정말고...진짜 수영하러 가고 싶어? ㅎㅎ"
"네. 좋아요! 옵하~ㅎㅎ"
당시 나는 hard rock hotel에 묵고 있었다.
그녀를 데리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호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수면에 조명이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커다란 수영장이 보이자
와~! 그녀가 짧은 외마디 탄성을 지른다.
수영장을 가로질러 호텔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호텔건물 안에 호텔 로고가 들어간 의류, 기념품 등을 파는
rock shop이 있다.
그 곳에서 그녀는 비키니를 골랐다.
내 방에서 비키니로 갈아 입은 그녀가 수줍은 미소를 띤 채 걸어온다.
오! 흑진주! 흑진주! 나의 흑진주!
진한 핑크색 비키니를 입은 그녀는
비키니의 핑크색에 대비되어
한층 더 섹시해 보이는 초콜렛색 피부에
비키니가 아슬아슬해 보일 정도의 볼륨을 가진
그야말로 핵폭탄 그 자체다.
아................내 심장!!!
용필이 형도 언젠가 지금 나와 같은 심정이었던걸까?
심장이 Bounce Bounce 두근대 들릴까 봐 겁나
You make me Bounce
You make me Bounce
Bounce Bounce
그녀의 지금 모습 그대로 내 눈동자에 새겨넣고 싶다!
수영이고 뭐고 물 속에 들어가기 싫어졌다.
물 속에 들어가면 그녀의 미친 몸매가 안 보일테니...
그 날은 온 세상이 날 위해 돌아가는 날이었을까?
보통은 밤에도 수영하는 투숙객들이 있는데
그날따라 수영장엔 우리 둘 외에 다른 사람들이 없다.
물 속에 들어간 우리는
서로에게 물을 튕기며 장난도 치고
누가 빨리 헤엄치나 시합도 하고
칵테일도 시켜 한 잔씩 하면서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물 속에서
어쩌면 두번 다시 오지 않을것만 같은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쌀쌀하다고 느껴질 때 쯤
그녀가 양팔로 내 목을 감싸 안으며 속삭였다.
"옵하...좋아요...너무..."
지금 이 순간이 좋다는 것인지, 아님 내가 좋다는 것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리 입술은 마치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 당겼다.
지금 이 순간 여기는
우리 둘만의 '블루라군', 너와 나의 '파라다이스'
When I'm with you it's paradise
No place on earth could be so nice
Through the crystal waterfall
I hear you call
Just take my hand it's paradise
You kiss me once
I'll kiss you twice
And as I gaze in to your eyes
I realize it's paradise
우린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물 밖으로 나와
열정의 격랑에 출렁이던 수영장을 뒤로 한 채
방으로 향했다.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맥주를 든 채 창문의 커튼을 열어젖혔다.
줄지어 서 있는 가로등과 주변 상점들이 내뿜는 불빛에
마치 형형색색의 보석이 박힌 목걸이처럼 길게 늘어선 해변이
달빛 아래 출렁이는 검푸른 밤바다를 부드럽게 감싸안고 있다.
마치 지금 내 등에 한쪽 얼굴을 댄 채 두 팔로 내 몸을 감싸안고 있는 그녀처럼...
그녀의 몸이 살짝 떨리는게 느껴진다.
"춥지?"
"네. 옵하~"
난 방안의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서 음악을 한 곡 골라 틀고
따뜻한 물로 가득 채운 욕조에 몸을 담궜다.
그리고 잠시 후
방을 지나 욕실로 흘러드는
척 만지오네 'Feel So Good'의
느긋하면서도 기분좋은
플뤼겔호른 소리와 함께
그녀가 욕조 안으로 들어왔다.
그날 밤
밤새도록 Feel So Good이 내 귓가에 들려왔다.
때론 부드럽게 때론 격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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