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을 먹으며 TV를 틀어보니
아시아헌터라는 프로에서 '캄보디아 오토바이 보부상들' 얘기가 나오데유
여러가지 생활용품을 낡은 오토바이에 가득 싣고 시골마을, 오지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파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인데유.
이 양반들이 주로 시골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댕기다보니 편지 심부름도 해주고 그러나봐유
오토바이 보부상 아저씨가 어느 시골마을에 도착한 후
늙은 아주머니를 찾아가서 편지를 건네주니
그 아주머니는 본인이 글을 못 읽는다면서 좀 읽어달라고 해서 읽어주는데
아들이 보낸 편지더만유. 엄니 잘 지내시쥬? 보고 싶어유~ 담달에 갈께유~
뭐 이런 내용...
편지를 읽어주고 이제 다시 길을 떠나려는데 그 아주머니가 보부상에게 고맙다며
바나나 한덩어리를 주더만유
그 동네를 보아하니 전화도 없을거 같고, 전기도 안 들어올거 같은 시골 오지마을이던데
항상 그립고 보고싶은 사랑하는 아들 편지를 가져와서 읽어주기까지 하니 얼마나 고마웠을까유?
동남아 시골에 흔한게 바나나라지만 그 바나나는 아마도 시골 오지마을에서 살고 있는
아주머니가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만유
제가 어릴 때 아버지 고향에서 잠시 (국민)학교를 다닌 적이 있어유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만나는.. 평지라고는 거의 없고 주위 사방팔방이 죄다 산인
경북의 어느 산골마을인데 제가 평생 가 본 곳들 중 사람사는 곳 중에선 제일 산골이에유
그 일대 수십킬로 내에 사는 사람들 대다수의 생업이
사과, 복숭아 과수원과 인삼인지라 산이고 길가고 간에 죄다 과수원 아니면 인삼밭이에유.
작은 과수원이 아니라 과수원 하나가 거의 산 하나 전체, 이런 과수원을 2개 3개 이상
하는 집들이 많아유
우리집도 사과 과수원, 니네 집도 사과 과수원, 개똥이네 소똥이네 집도 마찬가지
그니까 널린게 사과라는 얘기쥬. 그 일대에선 어디서든 손만 뻗으면 가질 수 있는게 사과에유
어느 날, 같은 반 친구집에 놀러 갔어유.
그 친구 집은 제 친할아버지 댁보다 더 산골, 진짜 신선이 나올것만 같은 깊은 산속에 있더만유
주위에 다른 집들도 없고 딸랑 그 친구집 하나 밖에 없었어유~
제가 친구집에 도착하자마자 친구 엄니께서 너무 반갑게 맞아 주시며
먹으라고 사과를 갖다 주시던데 표정이 왠지 좀 미안한 얼굴이시더라구유
저도 어린 맘에 좀 당황하긴 했어유....
엇, 우리 할아부지도 사과 과수원 하시는디...매일 질리게 먹는게 사과인디
어쨋든 친구 엄니께서 주신 사과를 먹으며 놀다가 이제 집에 갈 시간이 되서
나서려는데 친구 엄니께서 큰 비닐 봉다리 하나를 주시면서 줄 건 없고 이거라도 가지고 가라고 하시데유
친구집을 나와 걸으면서 비닐 봉다리를 열어보니 큼지막한 사과가 여러개 들어 있는거에유
친구집이 있는 산을 내려와 짧은 신작로를 지나 다시 산길로 한 시간을 넘게 걸어
할아부지댁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이런 생각이 들더만유.
우리집도 과수원을 한다는 걸 친구 엄니도 잘 아실텐데 왜 자꾸 사과만 주시는걸까?
돌아오는 내내 생각을 해봐도 당시 어린 저로선 이해가 안되더라구유.
신선이 나올것만 같이 깊은 산속 외딴 집에 아들이 친구를 데려왔는데
안 물어봐도 이 아이도 과수원집 자식이라는 건 뻔히 알지만서두
줄 수 있는게 사과 밖에 없었던 친구 엄니의 마음이 어땠을까?
아들의 편지를 가져와서 읽어준 보부상에게 바나나 한덩이를 준
캄보디아 시골마을 아주머니 마음과 어쩌면 비슷하지 않았을까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은 친구 얼굴도, 친구 엄니 얼굴도 생각이 나지 않지만
어릴 적 추억 속 친구 엄니의 따뜻하면서도 안쓰러웠을 그 마음은
여지껏 잊혀지지 않네유~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