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는 대부분 애국자다.
자기 나라의 국가를 이토록 자주 부르는 남자들은 없을 거시다.
1절 부르다 끝나는 가련한 놈도 있지만 어쨌든 그 놈도 애국자다.
4절은 늘 고비다.
남산위에 저 소나무...으으, 담이 뭐더라?
그래. 생각났어. 철갑을 두른 듯
철갑아. 내 몸을 감싸다오!
내가 철갑소환술을 부릴 때, 그녀는 암표범처럼 울부짖으며 날 할퀴었다.
캬웅.
화려하게 보이는 직업. 모델.
나는 그녀에게서 모델일의 애환을 들었다.
톱급이 아니면 행사도우미나 도찐개찐이라는 거시다.
게다가 쇼하고 있으면 밑에서 치마속에 카메라 들이대는 진상도 많다는 것.
"뭐라고 하루 개고생하고 10만원 받는다고? 내가 18만원 책정해줬는데?"
"업체에서 가져가자나."
"그렇다고 8만원이나 떼니?"
"그렇긴한데 거절할 수 없어. 담에 일을 안주거든."
"심하네."
"놀면 뭐해? 그거라도 해야지."
사실 뜨끔했다. 인당 행사페이를 후려친게 나니까
당장 매니저 놈에게 전화를 했다.
"야, 찡을 8만원이나 떼고 모델들한테 10만원 주냐. 이 양아치세꺄."
"아오. 형님. 시현이는 많이 주는거에요. 7만원만 줘도 행사 뛰겠다는 애들이
쎄발렸어요."
나보다 나이도 많은 놈이 형님은 개뿔!
"야, 담 행사 인당 페이 25만원으로 올려줄테니 시현이한테는 1원도 떼지마라."
"와따 우리 형님 기마에가 나이스데쓰네. 시현이가 작업 제대로 들어갔나보네요?
전 좋은데요 형님. 여자애들 너무 믿지 마세요. 충성충성!"
작업? 왕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나?
판때가리에 앉아서 30분간 호구가 보이지 않으면 그날의 호구는 나다.
라는 명언이 떠올랐다.
그래도 난 그녀가 좋았다.
놈의 말이 사실이라도 난 호구가 되어줄 용의가 기꺼이 있었다.
이미 그녀는 나의 뇌를 타고 앉아 있었으니까.
젠장.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지...
난 내 등에 닿은 그녀의 가느다란 손.
그 손의 신비로운 감촉만 음미했다.
데이트를 하며 그녀를 짓누르고 있던 우울의 무게는 점차 덜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밝아졌고, 내 우스운 농담에 목젖이 보이도록 웃었다.
아름다운 북한강 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는데(운전은 그녀가 했다)
전화가 왔다. 공교롭게도 얼마전 헤어진 전여친이었다.
난 받지 않으려 했다.
"오빠, 핸즈프리 샀어. 이렇게 받으면 돼."
그녀는 핸즈프리에 핸드폰을 꽂고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어떻게 말릴새도 없이...
수화기너머로 들리는 소리.
"오빠가. 내다. 오늘 집으로 올 수 있겠나. 마이 힘들다. 늦어도 괘안타. 먼저 자고 있을게.
늦어도 꼭 오래이."
오, 신이시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받지 않아어야 했다.
핸드폰을 차창밖으로 던져버렸어야 했다.
차안에는 지옥 같은 침묵이 흘렀다.
햇살에 비친 그녀의 눈동자는 너무도 슬프게 빛났다.
무주리조트 행사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진행 되었다.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매니저 놈에게 물었다.
"시현이가 안보이네?"
"갸 이 일 그만 뒀습니다."
"왜?"
"모르죠. 그런 일 허다합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요즘 애들은 직업의식이 없다니깐요. 형님. 조 잡아놨으니까. 이따 숙소로 올라오십시오. 왕게임이나 하게요."
"아냐. 오늘은 좀 쉴게."
폭설이 내렸다.
무주의 밤은 깊어갔고, 밤의 밑바닥은 하애졌다.
나는 북쪽의 경계를 지키는 수비대원처럼 밤을 지켰다.
어둠 저편에 있는 언데드들로부터 그녀를 지키는 심정으로
하얀 눈발을 뚫고 그녀가 올 것 같았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후로 쭉 그녀를 보지 못했다.
.
.
.
너무 길어질까봐 여기서 졸속 마무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제현 여러분.
담에는 <대리점 미쓰김> 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