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근처에서 미터기를 찾는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수업 시작할텐데...
라디오에선 신곡 Everything but the Girl의 Missing 이 흘러나온다.
(여기부터는 BGM과 함께 감상~ ㅋㅋㅋ)
오... 노래 좋은데?
있다 타워레코드에 가서 시디 사야지.
이렇게 생각하며 미터기 자리가 생기길 기다리고 있는데
바로 앞에 택시가 섰다.
오? 우리반 여자애네?
키는 작지만 얼굴이 작아 이쁘장한 유학생이다.
개미허리에 모든게 쁘띠뜨해 귀염상이다.
긴 염색 생머리, 진한 아웃라인 립스틱, 태닝한 구리빛 피부, 배꼽티에 힙합바지.
유행하는 그모습 그대로다.ㅋ
뭐야? 쟈는 택시 타고 학교 댕기는 거임?
겨우 주차를 하고 수업에 늦게나마 들어갔다.
교수가 ㅈㄹ한다.
너 며칠동안 수업도 안 나오더니 한번 나오는 날은 늦냐고.
짱나...
그 여자애가 키득거린다.
제스쳐드로잉 시간이다.
3시간동안 모델만 그리는 시간이다.
그것도 10초, 30초, 1분, 5분 이렇게 돌아가며.
딴 친구들은 싫어하는데 난 이 시간이 가장 좋다.
그 여자아이가 다가온다.
"나 너 주말에 봤어".
어? 유학생인데 영어도 잘 하네?
"날 주말에 봤다고?"
"응. 거기 갔었어"
난 그때 작은 인디밴드에서 노래를 하며 용돈을 벌고 있었다.
크고 작은 이벤트에 오프닝을 하거나
보통주말엔 빠나 클럽에서 공연을 했다.
그래서 연습하거나 늦게 공연이 있으면 자주 수업을 빼먹었다.
"왜 그렇게 수업에 안 오나 했더니 거기 있더군. ㅎㅎㅎ"
그녀가 웃었다.
"ㅋㅋㅋㅋ" 나도 웃었다.
"오늘 뭐해? 있다 술한잔 할래?"
한번도 말해본적 없는 아이가 갑자기 술을 먹자고 한다.
"어...."
머뭇거리자 그아이가 말한다.
"내가 살께 가자".
자존심이 상한다...
근데 난 거지다...
술도 먹고 싶다...
근데 순진한 나는 첨 얘기하는 여자랑 단둘이 술을 마신다는 게 두렸웠다...
....는 뻥이고 이미지 관리 해야하는데 학교에 이상하게 소문나는 게 싫었다.
"어... 그럼 우리 마이키(가명)도 댈고 가도되?"
같은반 교포 남학생 마이키를 댈고 가기로 했다.
수업 끝나고 내 차로 가자고 했다.
대학교 입학 하자마자 그동안 모아둔 3000불로 산 9년된 중고차다.
중고지만 그래도 잘나가는 나의 애마.
"어머 이건 언제적 차야?"
자존심이 또 상한다...
35가에 있는 락카페에 가기로 했다.
초인종을 누르면 기도가 나와 정문을 열어준다.
계단을 올라가 문을 몇개 지나면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
웨이터가 우리를 테이블로 안내한다.
맨하탄 32가는 코리아타운이다.
지금은 한류니 K-pop이니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
모든 인종이 바글거리는 힙한 거리가 됐지만
그때만 해도 타인종은 잘 오지도 않는 탈도 많고 일도 많은 곳이였다.
32가가 중심이라면 33가 34가 30가 등등으로 좀 불법스러운 술집들이 많이 있었다.
맨하탄은 새 주류 라이센스를 받는 게 거의 불가능하고 가능해도 엄청 비싸기 때문에
이런식으로 불법술집을 만들어 단속이 나올 때 까지 신나게 땡기고
단속 먹으면 닫고 또 다른 곳에 오픈하고 하는 곳이 많았다.
단기간 동안 거하게 땡겨야 하니 인테리어나 설비를 빵빵하게 한다.
그런 이유로 많이 비싸서 교포들보다는 유학생들이 많이 간다.
그때는 IMF 터지기 전이라 유학생들은 돈쓰기를 물쓰듯이 했다.
그 아이는 웨이터들도 다 아는 듯했다.
뭐라 뭐라 하더니 웨이터가 술을 갖고 온다.
레미마틴 XO다.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니지만 그때는 나에게 고급술.
헐...
매날 쿠어스 마시던 난
또 자존심이 상한다.
그녀가 자기 이야기를 한다.
알만한 기업가문의 딸내미란다.
회장의 딸은 아니고 사촌인가의 딸인가 그랬다.
그때 난 상당히 어메리칸(ㅋㅋㅋ)해서 별 감흥이 없었다.
난 술을 많이 못 마신다.
미국식으로 깨작깨작 마시는 건 좋아하는데 한국식은 모르던 때.
계속 원샷을 드리부으며.
중간중간 마이크 달라고 해서 노래도 하고
댄스타임엔 나가서 춤도 췄다.
춤을 추다 테이블을 보니 마이키는 소파에 누워 뻗었다.
그녀가 내게 등을 대며 춤을 춘다.
부비부비란 걸 처음 해봤다.
내 손을 잡고 자기 허리에 두른다.
배꼽티라 가는 허리의 맨살의 감촉이 그대로 느껴지고
땀에 미끈 거린다.
셋이서 그렇게 두병을 마시고 개처럼 취했다.
그 아이가 다같이 자기집으로 가자고 한다.
집은 20몇가였던걸로 기억한다.
첼시라는 지역이다.
마이키를 소파에 눕히고 나도 거실 바닥에 누우려는데
나는 자기방 침대에서 자라고 한다.
어 그래도 되나 라고 생각하기보단 아 피곤하다란 생각 밖에 없다.
침실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는데...
뜨억!
천장이 투명유리다....
그리고 그 위는 무려.... 풀장이다...
풀장의 물 위로 맨하탄의 야경이 반짝인다.
헐...
대에박...
... 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얼굴 앞에 그아이 얼굴이 다가온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빠개진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 아이는 벌써 일어나 화장하며 아침 수업갈 준비를 하고
"배고프지? 테이블 위에 돈 있으니까 마이키랑 아침 사먹어".
라고 하고 택시를 잡아 학교에 간다.
테이블 위에 100불짜리 지폐가 있다.
자존심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