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동래군 일광면 좌천리에서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2대 국회의원을 지낸 아버지 최원봉과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백호라는 이름은 아버지 최원봉의 스승이자 동양철학자였던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중령 범부 김정설 선생이 지어준 이름이다.
1973년부터 1976년까지 대한민국 육군 사병으로 군 복무하였으며, 1976년 제대 후 부산 음악살롱 무대를 전전하던 중 하수영과의 인연으로 서울로 상경하여 가수로 데뷔하였다. 데뷔곡인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는 3개월 만에 6,000장이 판매돼 가요계에 최백호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78년에는 독특한 창법으로 연이은 히트를 하여 정식 데뷔 1년여 만에 톱 가수 반열에 올랐다. 가요제가 한창 무르익을 1979년에는 인기 포크 록 그룹 산울림, 사랑과 평화, 인기 가수 김만준, 전영 등과 함께 대학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가요계를 휩쓸며 주류를 이루던 트로트 가요를 밀어내고 새바람을 일으켰다.
데뷔와 동시에 전성기를 누비던 최백호는 1980년 당시 국민배우 김자옥과 결혼하였고 《영일만 친구》라는 곡으로 TBC 방송가요대상 남자가수상을 수상하였다. 1983년에는 《고독》이라는 곡으로 MBC 10대 가수상, KBS 가요대상 남자가수상을 수상하여 정상에 올랐다.
김자옥과 이혼한 후 시련을 겪다 1984년 재혼한 후 복귀하였다. 1987년에는 삼각산 경국사에 들어가 가수로서의 마지막 승부를 걸고 작곡에 전념하였지만 1년 후 《시인과 촌장》을 끝으로 1989년 1월 미국으로 이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잠시 한인방송 라디오코리아 DJ로 활동하였다.
그 후 1990년 2월에 다시 귀국하였고 공연 관련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1996년 삶의 허무와 지나간 시간에 대한 미련을 담은 《낭만에 대하여》라는 곡이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 삽입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일본 주류 업체인 산토리에서 만들어진 "도리스 위스키"(Torys Whisky)[1]가 미군 배급품들 사이에 섞여 우리 나라에 처음 소개되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고, 이것이 밀수가 성행하면서 많은 사회적 부작용을 낳자 부산시 서구 토성동에 있던 '국제양조장'이 일본에서 수입한 위스키 향료와 색소, 주정을 배합하여 1956년 5월 일본 도리스 위스키의 이름을 도용한 모조 위스키를 내놓게 되었다.
공연 하면서 진짜 노래 잘 부른다고 감탄하는 경우 별로 없는데, 이분은 공연 할 때마다 감탄에 감탄을 하게 만들어요.
마이크 체크 하면서 몇마디 하살 때 조차 우와~ 하게 만드신다는..;;;;;
그냥 목소리 자체가 페이소스..
제가 가억하는 최백호옹의 대표곡은 내 마음 갈곳을 잃어 이거이고, 낭만에 대하여는 사실 어렸을 때에는 “그냥 탱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나이를 먹을 수록 가사의 깊이가 다르게 느껴지는것 같습니다. 지금은 제 최애픽 중 하나..ㅋ
최백호옹 목소리 좋아 하신다면 이 곡도 한번 들어 보세요.
재즈가수인 말로, 기타리스트 박주원과 함께한 배호의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람 입니다.
진짜 노래의 깊이감, 노년의 회한이 고스란히 느껴져요.
말로도 국내 최상급 가수중 한명인데, 최백호옹이 그냥 압도 해버림...
아.. 링크좀 올리려고 했더니 너튜브 1분 듣기밖에 없네요.ㅠㅠ
맛보기로 들어 보시고 더 관심 가시면 앨범구매 ㄱㄱ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