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친목 게시판
 
작성일 : 19-11-28 01:05
잡썰
 글쓴이 : 귀요미지훈
조회 : 474  

점심시간
늘 그렇듯 은퇴 후 이 곳에서 장기체류하는 유럽출신 아재들과 할배들로 
오늘도 호텔 식당 안은 왁자지껄하다.
이 유럽에서 온 아재들과 할배들은 매일 점심 이 곳에 모여서 
식사도 하고 커피고 마시고 수다도 떨면서 2~3시간을 보내는게 일상이다.
난 호텔 풀장 옆에서 맥주 한 병을 홀짝이면서
오늘은 비키니 입고 수영하는 언냐들 안 오나...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며 빈둥거리고 있었다.
그 때 호텔 식당에서 서빙보는 친구 하나가 나한테 오더니 
식당 앞에 이상한 할배 한 명이 계속 얼쩡거린다고 한다.


그래서..왜? 
왜 또 나한테 그려? 엉? 어쩌라구? 
내가 보안요원이야? 경비야? 기도야? 
나도 호텔손님이야! 이거 왜 이래? 
내가 마..너거 총지배인이랑 밥도 묵고 마..엉! 
와인도 마시고 마, 엉!
사우나.......아..사우나는 안했구나.
우이씨~
이렇게 투덜거리면서 어쨋든 현장에 가봤다.


60대로 보이는 남루한 차림의 서양 할배 한 명이
호텔 식당 손님들 식사하는 곳 근처에 서서 안절부절하며 
얼빠진 사람처럼 혼잣말로 뭔가 중얼중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왜 저러고 있을까?
순간 불쌍한 마음도 들고 궁금하기도 해서
다가가서 무슨 일이냐고 영어로 물어보았다.
뭐라고 대답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독일어 같았다.
기억나는 유일한 독일어인 ich liebe dich라고 말할 수도 없공...
어쩌지?


오...마침 호텔식당에 스위스에서 온 할배들이 모여서 식사 후
열심히 수다를 떨고 있는게 보였다.
저 양반들도 독일어로 대화를 하니 말이 통하겄지.
스위스 할배들이 모여 식사하는 테이블로 갔다.
저 앞에 할배 한 명이 무슨 사정이 있는거 같은데 
독일어를 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니 무슨 사정인지 
대신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내 부탁을 받고 스위스 할배 2명이 가서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스위스 할배 2명이 돌아와서 내게 하는 말이...
저 할배가 지갑도 여행가방도 여권도 다 잃어버리고
돈 한푼도 없는데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내게 이 말을 전해주고 스위스 할배들은 태연히 테이블에 다시 앉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식당 앞에 서 있는 할배를 다시 한 번 보니 
씻지도 못한거 같고
옷도 지저분해 보이는 것이 
몇 일 노숙한거 같은 느낌도 들고
밥도 못 먹었는지 바들바들 대는 것이 제대로 서 있을 힘도 없어 보였다.
음...안되겠다...
말은 안 통하니 서 있던 할배 팔을 잡고
호텔 식당 안으로 데려와서 우선 빈 테이블에 앉혔다.
식당 메뉴 중에 소화 잘되고 유럽인 입맛에 부담없을 만한 메뉴를
두어개 고른 후 식당 종업원애들한테 돈은 내가 낼테니 
이 양반한테 좀 갖다 주라고 했다. 커피랑 음료수와 함께.
할배가 식사를 하는 동안 무슨 일인지 좀 자세하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말이 안 통하는 관계로다 허겁지겁 먹는 모습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할배가 식사를 하는 동안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만약 내가 외국에서 돈도 여권도 다 잃어버렸는데
도와주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면....?
정말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다시 스위스 할배들이 모여있는 테이블로 가서
내가 말하는 걸 쪽지에 독일어로 적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노숙자 할배가 식사를 마쳤을 때
쪽지와 함께 교통비와 이틀 정도 숙식을 할 수 있는 
약간의 돈을 쥐어 주었다.
쪽지에는 "여기는 당신을 고향으로 보내 줄 영사관이나 대사관이 
없으니 수도인 OO시로 간 후 영사관이나 대사관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세요"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호텔 앞에 상시 대기하고 있는 오토바이 택시 중 하나를 불러서
이 할배를 OO시로 가는 버스터미널에 데려다 주라고 했다.
그렇게 그 할배를 떠나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쯤 후
식당 종업원 하나가 내게 와서 말하길
어제 밤 로컬TV 뉴스에서 봤는데
그 노숙자 할배가 근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죽은채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순간 멍~해지는 것이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느낌상 한 30분은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던거 같다.
30분쯤 지나니 정신이 좀 들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궁금증과 함께
죄책감과 자책감이 마구 밀려 들었다.


당시 그렇게 보냈던게 최선이었을까?
차라리 그렇게 보내지 말고 경찰서에 데리고 갔더라면 
적어도 이런 일까진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집에 가고 싶다던 할배는 왜 OO시로 가지 않았을까?
짐작가는 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 곳은 불나방처럼 전 세계에서 별의별 관광객이 다 몰려들고
매일매일 온갖 천태만상이 펼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온갖 생각과 감정으로 복잡해진 심정을 달래려
밖에 나가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태양이 뜨겁다!
여기저기 화려한 옷차림에 
즐거운 웃음을 흘리며 걷고 있는 관광객들을 보니
괜시리 인생의 허무함과 씁쓸함이 느껴졌다.
기분 탓이겠지?
아니면...
알베르 까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한 말처럼
이 모든건 태양 탓이고 
정녕 인생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일까?



- 끝 -




EIcgJGgXYAcBFyN.jpg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진빠 19-11-28 01:20
   
어휴...

갑자기 저두 집에 가구 싶어욤...

홈씩의 계절이 온것인감..ㅎㅎ
     
귀요미지훈 19-11-28 01:31
   
공감이 많이 되삼

타지에 있으면 와이프랑 자식이랑 같이 있어도

잘 살다가도 가끔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거 같삼.

엄니가 해주시는 밥도 묵고 싶공...
          
진빠 19-11-28 01:35
   
여름보다 겨울에 더 그런듯 하삼.. ㅎㅎ

오늘.. 비 예보도 있는 추수감사절 이브이삼..

퇴근할때 소주하나 사와야겠삼 ㅎㅎ
               
러키가이 19-11-28 04:13
   
남자들이 가을 타는 이유가 밝혀졌다.

남자들이 가을을 타는 이유가 공개됐다. ‘가을을 탄다’는 것은 보통 계절의 변화에 따라 2주 이상 우울증과 무기력증이 지속되고 잠이 많아지거나 달콤한 당성분이 다량 함유된 음식이 끌리면 ‘계절성 기분 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남자들이 가을 타는 이유는 계절성 기분 장애의 원인을 보면 알 수 있다. 계절성 기분 장애는 가을이 되면 일조량이 감소하면서 우리 몸에서 정상적으로 분비되던 세로토닌 분비가 줄어들어 생기는 현상이다. 

낮에 충분한 햇볕을 쬐지 못하면 밤에 멜라토닌 분비가 감소된 탓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일조량 감소에 따라 햇빛을 통해 만들어지는 비타민 D의 생성도 자연스레 줄어든다.

특히 비타민 D는 남성 호르몬을 관장하고 있어 남성 호르몬 분비의 감소로도 이어지고, 이는 남자들이 가을 타는 이유다.

https://search.daum.net/search?w=tot&DA=25A&rtmaxcoll=NNS&q=%EA%B0%80%EC%9D%84+%ED%83%80%EB%8A%94+%EB%82%A8%EC%9E%90+%ED%98%B8%EB%A5%B4%EB%AA%AC
               
귀요미지훈 19-11-28 20:39
   
다음엔 쏘맥 먹방으로?  ㅎㅎ
물망초 19-11-28 02:00
   
자책 하지 마세요
그리고 얼굴은 잘생긴거 알고 있는데
마음씨는 더 잘생겼네요
     
귀요미지훈 19-11-28 20:39
   
망초삼촌 잘 생긴 얼굴도 봐야하는디...
flowerday 19-11-28 07:19
   
선의가 감사가 아니라 다른것으로 돌아왔네요.
저도 저런상황을 겪었으면..
     
귀요미지훈 19-11-28 20:40
   
내 인생에서 가장 황당한 일 중 하나였어유~
아이유짱 19-11-28 08:38
   
헐...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밝혀진 거 없구요?
울 지훈아빠 신사셨네
     
귀요미지훈 19-11-28 20:42
   
뒷 얘기가 조금 있긴 있는데...
경찰들이 하는 얘기는 다 추정일 뿐이고
목격자도 없고...
정확하게 뭐가 어떻게 된건지는 알 수가 없었어유~
신의한숨 19-11-28 09:30
   
한 인생의 마직막 가는길 노잣돈을 주셨으니
큰 복 받으실겁니다.

제 머릿속엔 사우나를 정말 같이 안갔을까...라는 생각이 맴돕니다만...
     
보미왔니 19-11-28 17:24
   
마지막 가는길 노잣돈~~

뭔가 슬프다... ㅠㅠ 

노잣돈이 밥먹을때 쓰라고 주는 돈이죠.. 아마..  그런듯
     
귀요미지훈 19-11-28 20:43
   
마지막 노잣돈....
증말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네유.
사우나....는 증말 안했어유~ㅎㅎ
치즈랑 19-11-28 17:29
   
타협하지 않은 뫼르소도...태양 탓만은 한건지도요.
(어...그러고 보니 뫼르소가 우리 말로는 모르소였던가..ㅇ.ㅇ .)

지훈 엉아가`마음이 아팠겠네요`
우리에게는 때때로 의도치 않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중단하면`공허함만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지훈 엉아 다운 일을 한 것 같네요`
냉철하지만`가슴은 언제나 사막을 뛰게 하는 사나이`
     
귀요미지훈 19-11-28 20:46
   
역시 치즈엉아는 뫼르소의 의미를 알고 계시는...

맞아유...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중단하면 공허함이..
 
 
Total 52,62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친목게시판 유저에게 해당되는 제재 사항 (10) 객님 11-09 96451
공지 회원 간 자극하는 글은 삼가주십시오 (15) 관리A팀 03-05 148210
공지 친목 게시판 이용수칙! (26) 관리A팀 08-22 98292
52570 봄.여름.가을.겨울 -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1) 가비야운 08-25 18217
52569 내가 이래서 차칸 잡게생활을 할 수가 업뜸... (2) 한주먹형 08-15 17834
52568 돼룡이가 자꾸 내 보낼라고 한다.. 한주먹형 08-15 17406
52567 독거노총각 쥐 처음인가? 잡게 하다 보면 쥐도 묵고 그러는거지 한주먹형 08-14 17259
52566 출첵개근 4,500일 올려봅니다. (5) IceMan 08-11 17185
52565 생존신고.. (5) 치즈랑 07-30 18217
52564 정은지 - 그 중에 그대를 만나 (Lyric Video + MV) (3) 가비야운 07-02 22186
52563 Duggy - 그 때 그 날들 (Instrumental) (1) 가비야운 07-02 18925
52562 추억이 되지 않게 (1) 오스트리아 06-21 18480
52561 정은지 - 소녀의 소년 (Live FanCam + Lyrics) (3) 가비야운 05-14 21479
52560 [MV] Bon Jovi - Keep The Faith (1) 가비야운 05-14 16931
52559 Ryo Yoshimata - The Whole Nine Yards (Instrumental) (1) 가비야운 05-14 15822
52558 마지막 눈물 (1) 오스트리아 05-10 14366
52557 출첵 개근 4,400일 올려봅니다. (9) IceMan 05-04 14426
52556 정은지×10cm - 같이 걸어요 (Special Clip) (3) 가비야운 04-13 17091
52555 Halie Loren - Blue Holiday (1) 가비야운 04-13 15078
52554 Lune - Lime Tree (Instrumental) (1) 가비야운 04-13 14210
52553 한번 사는 인생 오스트리아 04-01 15084
52552 정은지 - 너란 봄 (MV + FanCam) (1) 가비야운 03-30 11944
52551 Big Dream - Morning Coffee (Instrumental) (1) 가비야운 03-30 9433
52550 그냥 좀 조용히 지낼려구요 (4) ChocoFactory 03-10 10273
52549 언니네 이발관- 아름다운 것 (커버: ideadead) 차분하고 매력적인 … (1) 보리스진 03-07 7456
52548 날고 싶어라 오스트리아 02-25 5897
52547 정은지 - Easy On Me (비긴어게인) (3) 가비야운 02-16 8129
52546 입장 ! (3) 퇴겔이황 01-28 6222
 1  2  3  4  5  6  7  8  9  10  >